▲하늘의 별 따기인 유치원 입학. 선택의 폭이 좀 더 넓어진다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현혜영
사실 내가 OOO유치원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일단 나와 상담을 했던 선생님의 인품이 마음에 들었고, 그분이 설명해 주는 내용에 믿음이 생겨서였다. 유아교육의 전문성 뿐만 아니라 진솔함이 느껴졌고 연륜과 경험에서 나오는 느긋함도 있었다.
여기에서라면 내가 원하는 것, 아이가 행복하게, 즐겁게 성장하는 곳으로서의 유치원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사실 그 유치원에 대한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유치원은 벌써 20년이 넘은 탓에 건물도 오래되어 외관상 눈을 끄는 부분도 별로 없었고, 외부 홍보에는 관심이 없는지 홈페이지도 잘 관리되어 있지 않았다.
또 다른 사립유치원들과 달리 원아모집 홍보행사도 진행하지 않고 직접 방문상담을 통해서만 원서를 제공하는 중이었다. 상담차 그 유치원을 방문하기까지 의아한 점이 많은 유치원이었다. 사실 그래서 상담요청을 해 놓고도 조금 망설이다 왠지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가보았던 건데 결과적으론 내가 가장 보내고 싶은 유치원이 된 것이다.
당시 내가 여러 유치원을 알아보면서 바랐던 바람직한 과정은 이런 거였다. 내가 직접 알아보고 판단하고 그래서 나의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유치원을 골라보고 싶은 것. 이러한 선택과정에 있어 돈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지만 이미 마음이 기울어진 유치원을 놓고도 대기1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솔직히 또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자녀가 하나 밖에 없다. 무료라는 무시무시한 혜택을 포기하고 나의 고정된 지갑에서 1년에 3백만원이 훌쩍 뛰어 넘는 돈을 과감히 써버리고자 하는 결정을 조금은 더 쉽게 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고 해야 할까? 만일 자녀가 둘이었다면 내 마음에 다시 흔들림이 있었을까?
만일 그 때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학부모 부담이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그런 조건 하에 비슷하게 놓였을 때 지금과 같은 국공립 입학 전쟁은 어떤 양상으로 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선택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될 것이다. 유치원의 시설 조건과 규모, 교사의 수나 자질, 통학거리,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성 혹은 퀄리티 등. 이런 것들을 고려해 자신의 자녀에게 가장 최적인 곳을 선택해 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모습이 아닐까.
그것이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병설이든 단설이든. 그렇게 되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해지며 다섯, 여섯살 아이 하나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줄을 서고 로또 확률을 기대하며 노심초사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돈보다는 퀄리티에 의한 선택이 가능해지고 그럼으로써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시장 경쟁의 기반 자체가 비슷해진다.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의 수혜자인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이 받게 될 교육 서비스의 질로 소비자는 판단하고 공급자는 경쟁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립유치원 원장의 도덕적 일탈 문제라든가 국공립 유치원 교사들의 매너리즘 문제와 그에 따른 창의 교육의 부재와 같은 엄마들이 걱정하는 일들도 공정한 경쟁 시스템 내에서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는 시스템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끼리 날세우지 말고 서러워하지도 말자그래서 나는 안철수 후보의 대형단설유치원 신설 자체 발언이 나왔을 때 각종 기사에서 다룬 학부모의 분노-단설유치원에 보내고 싶어하는 학부모의 마음도 모르고 한 이야기-와는 다른 방향에 서 있었다.
사립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가 전체 원아의 75%인 상황에서 우선 해결되어야 할 것은 그 75%의 아이들도 나머지 25%의 아이들과 비슷한 지원을 받아야 하고, 그런 점에서 예산이 있다면 그 아이들이 먼저 지원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국공립유치원의 원아들은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원아 1인당 지원금의 5배에 해당되는 금액이 지원된다고 한다. 그 지원되는 금액은 결국 국민 세금이다. 그런데 그 세금 혜택이 불균등하게 배분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대형 단설 유치원의 경우 하나 짓는 데만 100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소요되고 부지확보 역시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시간과 비용 상의 비효율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시간비용의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단설을 늘린다고 단설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열망을 다 담아낼 수도 없다.
얼마 전 단설 유치원에 당첨된 옆집 엄마가 부러워 우는 엄마를 본 적이 있다. 순전히 운인 것을 아는 데도 서럽다는 것이다. 단설유치원은 전체 유치원의 5%도 안 된다. 반대로 괜찮은 사립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도 학비 부담으로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엄마들도 있다. 특히나 아이가 둘, 셋 이상이면 더 그렇다.
그런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해 한다. 그런 감정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누구는 사립유치원은 돈이 되는 엄마나 선택하는 곳이라며 씁쓸히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도 있다.
나 역시 씁쓸했다. 내 지갑 속은 작년이나 올해나 달라진 게 없는 데 내 욕심-내 기준에 부합되는 유치원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때문에 아이를 사립유치원에 보내면서 내 지갑 속의 돈을 쪼개고 나를 위한 지출은 점점 줄여가는 한국형 엄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씁쓸한 감정들을 엄마들끼리, 학부모끼리 보이지 않는 화살 쏘듯 건네지는 않았으면 했다. 문제는 교육 정책에 있고 그런 교육 정책이 만들어놓은 공평하지 않은 구조에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를 비교 구도 속에 떨어뜨려 놓고, 그에 따른 감정의 몫은 우리에게 돌려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만 우리는 이 감정 소모적인 유치원 입학전쟁의 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내 아이가 소중하기에 이제는 불평등한 구조 내에서 좀더 좋은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말릴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서 있는 곳이 정의롭고 평등하며, 그래서 평화롭길 바란다.
국공립 안에 진입한 엄마들과 못한 엄마들로 나뉠 것이 아니라, 또 우리동네 S대처럼 여겨지는 대형단설유치원에 미친 듯이 줄 서고도 서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엄마들의 주관있고 자신있는 선택들이 맞부딪히며 자유로이 경쟁하는 시장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유치원 신설 전략을 표면에 내세우기보다는 학부모의 부담을 경감하고 공평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 보이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책을 읽고 떠오르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글로 씁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공유하기
안철수 유치원 논란, 사립유치원 학부모의 생각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