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한 줄에 '전과자' 낙인,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헌법 쉽게 읽기⑭]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했을 때

등록 2017.05.03 15:07수정 2017.05.0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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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21조 제4항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1986년 작 영화 <미션>에는 모욕죄의 기원이 등장한다.(사진은 영화 <미션> 중 한 장면)
1986년 작 영화 <미션>에는 모욕죄의 기원이 등장한다.(사진은 영화 <미션> 중 한 장면)영화 <미션>

형법 제307조의 죄목은 명예훼손이다. 다른 이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인데 형량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만약 거짓말을 통해 다른 이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면 가중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폭행죄의 형량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고 부모나 조부모를 폭행하는 존속폭행은 형량이 가중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것을 고려해보면 우리 형법은 명예훼손을 폭행에 버금가는 중대 범죄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형법 제311조는 모욕죄를 정의하고 있다. 모욕죄는 명예훼손과 유사한 범죄다. 명예훼손은 자신의 명예에 대한 타인의 평가(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다. 반면 모욕죄는 자신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침해한 행위를 처벌한다. 즉, 명예훼손은 남들에게 나를 망신준 것이고 모욕은 나를 기분 나쁘게 한 것이다. 모욕죄의 형량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두 죄는 법리적으로 엄격히 구분되지만 사회·제도적 논의에서는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남미의 오지로 선교활동을 떠난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 일행의 실화를 다룬 1986년 작 영화 미션(The Mission)에는 모욕죄의 기원이 등장한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악랄한 노예상이었던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와 그의 동생의 결투장면이 등장한다. 멘도자는 어느 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의 동생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고 동생과 결투를 벌인다.

동생은 결국 그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영화의 배경이 된 1750년엔 결투는 합법적 행위였다. 심지어 결투를 통해 상대를 살해하여도 처벌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에게 가브리엘 신부가 함께 원주민 마을로 선교활동을 떠나자는 제안을 하면서 그들의 선교여행은 시작된다.

멘도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사이에 두고 동생과 결투를 벌였다. 하지만 실제 중세시대 결투는 주로 귀족들 간 명예 때문에 발생하고는 했다. 귀족이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지위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고 느꼈을 때 이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다. 결투는 모욕을 당한 귀족이 상대를 응징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모욕한 자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결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상대를 응징하고 자신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다.

결투 장소가 된 법정, 모욕죄의 탄생


하지만 귀족들 간 결투행위가 잦아졌고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빈발하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결투를 금지시키는 대신 국가가 모욕당한 자를 대리하여 응징하는 방법을 택했다. 결투의 장소를 법정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모욕죄의 탄생이다. 모욕을 당했으면 사적으로 응징하지 말고 국가에게 신고하여 처벌하라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는 결투제도를 아예 금지시키고 폭행, 살인죄로 다루었다.

현행 모욕죄(형법 제311조)는 일본 형법 제231조에 기초한 것이다. 일본 형법은 독일 형법(StGB § 185)을 이어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모욕죄는 독일과 독일법을 계수한 일본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형법 제309조)의 형법에서만 관찰되고 있다. 그나마 독일, 일본, 대만에서 모욕죄는 거의 사문화되었다.


심지어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1971년 Cohen판결에서 욕설에 대한 규제 자체를 금지하기까지 했다(박경신. 2011. '모욕죄의 보호법익 및 법원의 현행 적용방식에 대한 헌법적 평가' 참조). 앞서 살펴보았듯 한국에서는 모욕이나 명예훼손죄로 징역형까지 가능한데, 타인을 욕하거나 비방하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그런데 모욕죄를 처음으로 도입한 독일이나 독일의 모욕죄를 계수한 일본과 대만에서 모욕죄가 사문화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본 전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서양의 중세시대 귀족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다.

이에 더해 기사(騎士)라는 무사(武士)집단이 사회의 중요한 구성요소였던 봉건제 사회에서 무사 간 결투는 하나의 관습이었고 무사가 결투 중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귀족이라는 계급 자체가 없어졌다. 특별히 더 보호받아야 할 명예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무력은 경찰이나 군대의 형태로 국가에 독점되었고 개인이 무력을 보유하고 행사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이제 결투는 펜싱과 같은 스포츠의 영역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이 높은 자는 신분이 낮은 자가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을 때 매우 모욕을 느꼈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분에 대한 예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이 높은 자는 신분이 낮은 자가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을 때 매우 모욕을 느꼈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분에 대한 예의는 존재하지 않는다.pixabay

이에 더하여 '표현의 자유'는 모욕죄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신분제 사회의 귀족들은 품위를 지켜야 했고 예의에서 벗어나는 언행은 상대에 대한 크나큰 실례였다. 만약 자신보다 낮은 신분인 자가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매우 모욕적 태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해진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에 대한 예의는 존재하지만 신분에 대한 예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평등한 사회 구성원들은 제한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게 되었고 사회의 방향은 의견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다. 자칫 의사표현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더 이상 현대사회를 규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대한 국제법적·시대적 흐름과 상반되게 한국은 아직도 모욕과 명예훼손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2015년 전 국회의원 강용석은 인터넷 댓글을 통해 자신을 비방하였다며 네티즌 1000여명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이보다 앞서 2011년에는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의혹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의 일종인 허위사실공표죄(공직선거법)이 적용되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기도 했다.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출판에 의한 명예훼손을 규정하고 있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고 만약 침해하였다면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이나 출판에 의한 모욕·명예훼손은 도구(언론·출판)의 파급력을 고려한다면 상대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우려가 크다. 따라서 사인 간 모욕·명예훼손에 비해 민감하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자칫 언론·출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면 사회에 미치는 피해는 명예훼손에 의한 피해 못지 않게 클 수도 있다. 언론은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우려가 있다면 기사 작성 시 해당 기사가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될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검열이다. 이는 결국 언론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며 여론의 매개자로서의 언론의 기능을 고려한다면 민주주의의 퇴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대하여는 언론중재위원회나 반론보도청구권 등 피해자의 권익을 되찾아 줄 수 있는 여러 제도들이 있다. 물론 이들 제도만으로 피해자의 권익이 온전히 회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피해자의 권익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면 정정보도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으로 이어져야지 언론·출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금전전으로 보상받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사에 댓글 한 줄 남긴 것으로 전과자가 되어야 하고 대통령 후보의 의혹을 공개하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하는, 명예훼손과 모욕에 의한 고소가 남발하는 대한민국은 모욕당했다며 칼을 뽑고 결투를 신청했던 중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욕 #명예훼손 #언론의 자유 #신분제사회 #신분에대한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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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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