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지금쯤이면 모내기 준비에 바빠지는 시골풍경이 그립다. 모심기를 준비하면서 써레질 한 논에 흙탕물이 가득 차있는 모습들이 그려지는 시기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 며칠 지난 23일 세 명의 대통령이 언론에 등장한다.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은 8년 전 23일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였고, 많은 국민들이 추모의 마음을 가지면서 매년 이날 그의 생가와 묘지가 있는 봉하마을을 찾는다.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삼성 등 대기업에서 592억 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 18가지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이날부터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전해졌다. 현직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그동안의 다른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소통과 화합의 행보를 거침없이 보여주면서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오로지 자신의 희생과 진정성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렇다할 세력도 없는 그가, 엄청난 정치자금을 사용하지도 않고, 소외받은 사회적 약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권위주의를 없애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여러 정책들을 시도하였으나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혀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를 지지했던 세력들마저도 등을 돌리는 형국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마치게 되었고, 새로 등장한 대통령은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가혹할 정도의 핍박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막다른 골목에서 최후의 선택을 하도록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었더라면 결코 그렇게 무참히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떻든 노무현 대통령의 희생으로 그의 세력들이 다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취임 전 우려 덜어낸 문재인 대통령 행보23일은 노무현 대통령 8주기였다. 특히 이번 8주기는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한 직후여서 감회가 남다를 것임을 주변의 분위기를 봐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친서민적 행보, 국민의 감성을 자아내는 감성적인 행보, 사회 여러 세력 들을 등용하는 통합적 행보 등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상태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인수위가 없이 곧바로 취임하다 보니 공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걱정, 그가 깊숙이 몸담았던 참여정부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보는 그러한 우려를 덜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가 완벽하게 성공한 정부로 불리지 못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손발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를 옆에서 돕다가 청와대에 입성한 그룹은 정책을 집행하고 실현할 능력이 부족했고, 여러가지 마찰만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언론이나 기득권 세력과 잦은 충돌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확실히 달랐다. 우선적으로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그룹들이 자리를 비켜주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집중력을 발휘할 전기를 마련했다. 실질은 자발적으로 비킨 것인지, 아니면 전략적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떻든 반가운 일이다. 난 이것을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한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속했던 더불어민주당 등의 여러 세력들에 대해 '선거를 도왔다는 이유로 자리를 챙겨달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가능성이다.
또 다른 하나는 측근들이 등용되었을 때 언론 및 상대편에서 과도한 견제와 비판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초반 국정운영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이점을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통합의 정치를 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서 집중력 있는 국정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임기 동안 계획하고 있는 정책운영의 기본적인 방향, 개혁의 걸개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소통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사소한 문제도 언론에 공개를 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권 초반 언론과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엽적이고 세세한 절차적 문제까지 언론에 공개하면 상대편으로부터 과도한 공격을 받게 된다. 사소한 시빗거리를 없애기 위해서도 개략적인 사항만 공개를 하고 나머지는 신속하게 진행해서 결과를 공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소통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정책수행의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은 소통을 위한 소통에 머무는 형국이 될 수도 있게 된다. 개혁은 항상 기득권 층의 반발을 불러오게 되고 그러한 반발은 사소한 부분이라도 발목을 잡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경우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고, 어떠한 비판이라도 묵묵히 견디어내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
선거과정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부분이라고 해도, 국민적 약속을 그대로 지키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 부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있어야 하지만 무리하게 지키려 들면 여러가지 후유증을 낳게 된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대통령, 특히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지역, 세대, 이념성향의 사람들을 위한 대통령도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의 틀 깨지 못해 불행 자초한 박근혜 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