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살펴보았듯, 헌법 제29조 제2항은 군인 등이 다른 법률을 통해 보상을 받을 경우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피해를 입을 예비군들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으므로 그에 따른 배상금 액수 등과는 무관하게 국가를 상대로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유독 군인 등만 국가배상청구권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이 형식에 어긋나면서까지 군인 등의 국가배상을 직접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같은 의문은 헌법 제29조 제2항의 연혁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헌법 제29조 제2항은 1972년, 제8호 헌법에서 처음 도입됐다. 제8호 헌법은 소위 '유신헌법'이라 불린다. 유신헌법은 박정희 정권이 영구집권을 노리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도입해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 없이 선출하도록 규정한 매우 목적성이 강한 헌법이었다. 그리고 197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중요하다. 당시는 1965년부터 시작된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 막바지였다. 한국은 이듬해인 1973년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한국은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원조를 받는 등 경제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한국의 베트남 파병의 결정적 계기가 된 브라운 각서의 주요 내용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베트남전의 상이군인이나 전사자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국은 베트남에 총 32만여 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이중 5000여 명이 전사했고 1만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때문에 이들이 모두 국가배상을 청구한다면 적지 않은 금액의 지출이 예상됐다.
박정희 정권은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시작한 직후인 1967년, 국가배상법을 개정해 군인 등의 국가배상을 제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1971. 6. 22. 선고 70다1010 전원합의체 판결). 헌법재판소가 1988년 개소하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대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맡고 있었다.
대법원의 결정까지 무시할 수 없었던 박정희 정권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곧 묘수를 찾아냈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면 법률 자체를 헌법에 넣어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헌법이 헌법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헌법 제29조 제2항(당시는 제26조 제2항)은 1972년, 유신헌법과 함께 헌법에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헌법 제29조 제2항에는 헌법의 형식 외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미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에서 기존 헌법체계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조항을 헌법에 삽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모든 법률의 규율하고 국가의 정체성의 규정하는 최상위 규범으로 통일된 체계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이미 다른 헌법 조항들과 충돌되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명된 조항을 그대로 헌법에 삽입한다는 것은 헌법 스스로 헌법의 체계성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조항 '헌법 제29조 제2항'... 시작은 '유신'이었다실제로 헌법 제29조 제2항의 위헌성이 문제되기도 했다. 1993년 6월 10일 훈련 중 포탄의 폭발해 예비군 1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강남 예비군 훈련장 사건과 동일한 이유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적정한 배상을 받을 수 없었다.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한 유가족들은 헌법 제29조 제2항가 자신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한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위헌심사의 대상이 되는 규범은 '법률'이며, 여기서 '법률'이라고 함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된 이른바 형식적 의미의 법률을 의미하므로, 헌법의 개별규정 자체는 헌법소원에 의한 위헌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면서 각하했다(헌재 1996. 6. 13. 94헌마118 등).
헌법 제5조 제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한다고 규정한다. 헌법에 따르면 군인은 국가를 지키는 신성한 의무를 수항하는 사람이다. 국가를 위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일 것이다. 국가가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자를 돌보지 않는다면 아무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헌법까지 고쳐가며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에 대한 보상을 막고 있는 것이다. 1972년 유신헌법은 헌법으로써의 정당성을 상실한 헌법이라고 하더라도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인 현행 헌법까지 해당 조항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정상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이 넘도록 개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행 헌법이 개정된다면, 헌법 제29조 제2항은 가장 먼저 삭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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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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