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떠도는 유령 '보따리 강사' 10만명 시대

[상아탑별곡 ④] 교육적폐 '시간강사 차별', 왜 해결 못하나

등록 2017.06.15 16:30수정 2017.06.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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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이국만리에서 자살한 여성 시간강사의 '비애'

2008년 2월 25일.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시간강사들)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유서를 남긴 채 한 여성 시간 강사가 이국만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을 쓰면 대학에서 전임교수로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논문을 쓰며 다년간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강사와 강의교수 등 비전임이란 딱지를 결코 떼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후 연구와 후진양성을 꿈꾸던 고 한경선 박사는 우리나라 대학가에 뿌리 깊게 내재된 시간강사(비정규교수)에 대한 처우와 이들을 대하는 대학의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처사에 "자신이 마지막이길 바란다"며 현실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바람에 상아탑 내부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많은 시간강사들을 두 번 세 번 울렸다.

[사례 2] 논문대필․교수임용 비리 고발하고 목숨 끊은 시간강사

2010년 5월 25일. 조선대 시간강사의 자살소식이 또 다시 상아탑을 우울하게 했다. 고 서정민 박사는 다년간 시간강사로 지내오면서 강요당한 논문대필과 대학교수 임용비리 등을 고발하고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유서에서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그러나 산다는 핑계로 남편 역할을 하지 못했어.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이 현실을 견뎌낼 수가 없었어"란 말을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 목숨을 끊기로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지 충분히 읽히고 남는다.


더구나 고인은 유서에서 "'교수와 제자 = 종속관계 = 교수 = 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주십시오"라며 "교수 한 자리가 1억5000만, 3억원 이라는데 저는 두 번 제의 받았습니다. 대략 2년 전 전남의 모 대학 '6000만원', 두 달 전 경기도 모 대학 '1억원', (대학이)썩었습니다."란 내용과 함께 지도교수에게 바친 논문 수까지 밝히며 수사를 의뢰해 큰 파장을 남겼다.

'무늬만 교수', 대학에 떠도는 유령 '보따리 강사' 10만명 시대


흔히들 '지성의 전당'이라고 부르는 상아탑 내부에서 이런 비극적 사건은 이전에도 종종 발생했다. 단지 숨겨져 오거나 무관심 속에 쉽게 파묻히곤 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 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수십 년째 고착화돼 대학가의 '적폐'로 등극했다.

앞선 지난 2003년에도 서울에서 한 대학 강사가 열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자 다음해인 2004년 국가인권위회가 나서서 '시간강사들의 차별 지위를 개선하라'고 교육당국에 권고한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근무 조건, 신분보장, 보수 및 그 밖의 물적 급부 등에 있어서의 차별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10여 년 동안 대학의 시간강사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한 법률은 만들어지지 않은 채 빙빙 변두리만 맴돌며 변죽만 울렸다. 오히려 시간강사들과 전임교원들의 처우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다 2006년과 2007년에는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여·야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대학의 강사들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해 세간의 관심을 끄는 듯했다. 그러나 국회 발의에도 불구하고 끝내 불발되고 만다. 당연히 열악한 처우는 개선되지 않은 채 이듬해인 2008년과 2010년 강사들의 극단적 자살 선택이 이어졌다.

이어 강사들의 교원지위 회복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 2011년 12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무관심과 개선의지 빈약으로 이 법은 세 차례나 유예됐다. 2018년 다시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대학가의 비정규교수는 10만 명 시대에 달했다. 정치권은 상아탑 내부에서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거나 약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슈화되면 슬그머니 생색내기만 하곤 한다.

일회성 구호에 그치는 정치권과 남의 일처럼 먼 산만 바라보는 교육당국 그리고 대학의 근본적 의식과 사고가 전환되지 않고는 개선이 요원한 형국이다. 그러면서도 상아탑 교육의 절반을 강사들에게 맡겨 놓은 채 대학의 자율성과 전문성, 교원지위 회복 등을 운운하는 대학과 당국의 주장이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정규교수노조 "55년 묵은 교육적폐 '시간강사법' 당장 폐기하라"

오죽하면 한 학기가 끝나면 강단을 떠나 긴 방학동안 궁핍한 기근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 비정규교수들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들고 일어섰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위원장 임순광, 이하 비정규교수노조)은 지난달 31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해묵은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량 해고와 교원 간 차별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시간강사(법)제도를 폐기하고 연구강의교수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비정규교수노조는 "비정규교수 수만 명을 대량해고 할 '시간강사법' 시행이 2018년 1월 1일로 예정돼 있고, 그에 버금가는 폐해를 가져 올 '2주기 대학평가정책'이 다가오고 있다"며 "시간강사제를 포함한 비정규교수를 위한 종합대책을 국정 로드맵으로 제시할 것"을 새 정부에 촉구했다.

비정규교수노조는 또 지난 11일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간강사법 폐기와 함께 비정규교수들의 교육·연구 활동을 위한 예산배정, 비정규교수들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 교육적폐 중 하나가 대학 시간강사제도"라면서 "1962년 박정희 군부 정권이 교수·연구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55년간 비정규교원들의 고용불안과 저임금이 일상화 되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들 주장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프게 한 대목은 바로 최저 생계에도 못 미치는 처우환경 문제다. 비정규교수노조는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10만 명의 비정규교수에게 일정 금액의 연구보수를 매월 지급하여 무임금 방학이라는 보릿고개를 더이상 겪지 않도록 해 달라"고 주장했다.

전임교수들과 똑같이 가르치고 연구하면서도 연구실은커녕 언감생심 연구보수는 꿈도 꾸지 못한 채 마치 유령처럼 상아탑을 맴도는 비정규교수들도 전임교수들처럼 연구와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무리한 요구일까? 그게 그렇게 비정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들은 퇴직금 관련법의 허점(1주일 15시간 이상 노동, 1년 이상 근무 등)을 악용해 수십 년 간 시간강사의 지식과 노동력를 착취하고도 연금은커녕 퇴직금도 주지 않으며 한 학기 노동자로 매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얼마나 자존심 상했으면 한 비정규교수는 노조의 기자회견장에서 "청춘을 바쳐 일한 선생들을 이렇게 폐품 취급하는 곳이 대학"이라며 "참으로 잔혹한 세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비정규교수노조가 대학교원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든 역대 정부의 대학정책을 '교육계의 구조적 적폐'로 규정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김동애 박사 부부 10년째 풍찬노숙 투쟁... 상아탑 적폐는 여전

이처럼 장기간 교육계의 적폐로 남아 있는 시간강사 차별문제는 박정희 유신정부가 도입한 '대학의 시간강사제도'에서 출발해 지속돼 오다 지난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는 시간강사법과 대학구조개혁정책 등을 통해 비정규교수들의 불안정한 신분과 차별적 처우를 더욱 가속화 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비정규교수노조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정책에 대학교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교수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다면, 교육적폐 청산과 교육 대개혁을 할 의지와 역량이 없다는 증거로 비추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비정규교수 종합대책 국정로드맵 제시', '시간강사제도 폐지', '연구강의 교수제도 도입', '모든 비정규교수에게 연구보수 제공', '전임교원의 강의담당비율 지표 폐기' 등을 주장하며 특히 '대량해고와 교원 간 차별 야기할 시간강사법 폐기'를 즉각 시행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 외에도 '대학강사 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는 국회 앞에서 10년째 풍찬노숙하며 대학강사의 교원지위 확보를 위해 투쟁해 왔다. 투쟁본부를 운영해 온 김영곤·김동애 박사 부부의 눈물겨운 기나긴 투쟁은 그동안 우리나라 상아탑 내부의 불평등과 권위로 찌든 적폐가 얼마나 극심한지 잘 일러준다.

이러한 투쟁의 노력으로 국공립대학 시간강사들이 시간당 받고 있는 강사비가 최근 3-4년 사이에 극히 일부분 인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쥐꼬리만큼 받는 강사비로 강의가 없는 긴 방학까지 생활하기엔 형편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그나마 시간강사 강의료 부담을 덜기 위해 일부 대학가에선 시간강사와 똑같은 비정규교수에 속하면서도 강의료 지급 부담이 이들보다 덜한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로 전환할 것을 장려하는 기막힌 해프닝도 발생하고 있다.

대학이 정의로운 지성과 학문의 전당으로 거듭나려면 오랜 기간 쌓여 온 비정규교수들의 열악한 차별적 처우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선 상아탑 내부에 깊이 고인 적폐의 청산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시간강사제도 #열악한 차별적 처우 #비정규교수노조 #상아탑 적폐 #무늬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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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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