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농 혁명 한국농정은, 사회민주적 농민, 사회경제적 농업, 사회생태적 농촌 등 3농 혁신 패러다임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정기석
사회혁신적 '3農공동체'로 농정 패러다임 혁명을오늘날 전국의 농정 현장에는 '3農'이 유행이다. 원조는 다산 정약용이다.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농업 진흥책이야말로 나라를 건지고 백성을 살려내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라고 본 다산은 비실용적인 농업정책을 실용적이고 혁신적으로 전환하는 대안으로 '3農' 해법을 제시했다. 힘들고 고단한 농사일을 편하고 쉽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는 편농(便農), 착취체제의 온갖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해 농업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후농(厚農),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 사회에서 선비 못지않은 신분으로 농민들의 지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상농(上農)이 다산의 '3農정책'이다.
결국 '3농(三農)'이라 함은 농업, 농민, 농촌을 한데 일컫는 말이다. 농업은 '생활소득이 보장되는 농업'이라야 한다. 그래야 '경제공동체마을'을 세울 수 있다. 농민은 '일상생활이 행복한 농민'이라야 한다. 그래야 '생활공동체마을'을 꾸릴 수 있다. 또 농촌은 '농촌다운 농촌'이라야 한다. 그래야 '생태공동체마을'을 이룰 수 있다. '돈 되는 농업'과 '행복한 농민' 이 없이 '농촌다운 농촌'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농촌다운 농촌'은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농민과 지역의 식량주권'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양적인 식량주권 못지 않게 질적인 식량주권도 중요하다. 농민들이 주인인 농협도 '협동조합'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는 농정 재정도 합리적으로 쓰고 농민의 민생도 보살펴야한다. 그래야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의 주권이 주인인 농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다산이 주창했던 이른바 3농 사상은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실현되고 있다. 독일 농민들은 유럽연합과 독일 정부의 농업지원금 이전에 이미 농촌에서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비롯 재해보험, 의료보험, 간병인보험, 노령보험 등 사회보장시스템이 농민들을 농촌에서 떠나지 않도록 지켜준다. 독일 등 선진 유럽의 농정 예산은 '돈 버는 농업' 보다는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해 주로 쓰여지고 있다.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농부 국가자격증까지 취득해야 농사를 지을 있는 정예화된 2%의 독일 농민들조차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을 지켜야 하는 독일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국가에서 직불금으로 먹여살려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일에는 농부들 스스로 욕심을 조절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이 마련돼 있다. 1954년에 만들어져 60년 넘게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녹색계획(Green Plan)이다. 도시보다 농촌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독일의 농업정책은 바로 이 4가지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첫째,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그리고 평균적인 농민들은 이기적으로, 경쟁적으로, 독과점적으로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은 못 벌게', 유기농업이나 지역농업에 충실하게 법이나 조합의 정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공동체, 농업 협업경영체(Gemeinscaft) 동지들 사이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엄중하게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독일 농촌에는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농촌에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는 인구밀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굳이 떠날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정부의 공무원들은 애를 쓰고 있다. 농민들이 살고 있는 농촌의 전통과 경관을 지키려고 들판의,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베지 않는다. 농업소득보다 많은 소득보전 직불금도 다 그런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정책의 성과물이다.
독일을 비롯한 EU회원국가의 농정 당국이 그토록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보호하는 이유가 농업의 10가지 기능 때문이다. 우리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지켜야 한다면 이 10가지 기능을 농정 예산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기준으로 삼아 그대로 반영하면 된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둘, 농업은 우리 국민산업의 기반이 된다. 셋,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넷, 농업은 우리의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다섯, 농업은 마을과 농촌공간을 유지한다. 여섯,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일곱, 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어준다. 여덟, 농업은 값 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아홉,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 한다. 열,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농촌을 둘러보면서 '독일의 농부'의 개념과 정의가 저절로 정립됐다. 여기서 '독일의 농부'란 "문화경관 직불금, 가족농, 농업학교, 농업협동조합, 농업회의소, 유기농업,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고, 국민으로부터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가는 농부"를 뜻한다. 독일이 했다면 한국도 할 수 있다. 단, 농정의 철학을 갖춘 혁명적 농정 지도자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