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 철이 미친 영향

[서평] 김서형의 빅히스토리 < Fe 연대기>

등록 2017.06.21 15:35수정 2017.07.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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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스토리(Big history)는 우주의 역사, 자연의 역사, 인류의 역사를 한꺼번에 살펴보고자 하는 새로운 지식교양의 틀이다. 기존에는 우주의 역사를 천문학의 영역, 자연의 역사를 물리학‧화학‧지질학‧생물학 등의 영역, 인류의 역사를 고고학‧역사학의 영역에 두었다. 그러나 빅히스토리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함께 아우르는 종합적인 교양을 제공한다.

기존의 빅히스토리 도서들은 우주의 탄생부터 현대 인류 문명까지 138억 년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대략의 윤곽으로 서술했다. 반면 <김서형의 빅히스토리 Fe 연대기>는 철(Fe)이라는 원소로 우주와 생명, 인간의 역사를 살펴본다. 주제를 특정해 좀더 촘촘하게 새로운 빅히스토리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우주 공간에서 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해지는지, 지구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서 철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철이 인류 문명 발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본다.

케플러가 관측한 초신성, <선조실록>에 더 먼저 관측 기록해

a Fe연대기 김서형의 빅히스토리

Fe연대기 김서형의 빅히스토리 ⓒ 동아시아

빅히스토리는 기존 역사 서술의 틀을 넘어서 크게 바라본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유명한 천문학자 케플러는 1604년 초신성을 발견한다. 초신성이란 질량이 큰 별이 폭발하여 엄청나게 밝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1604년 초신성을 케플러가 발견했다고 해서 '케플러 초신성'이라고 부르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선조실록>에 케플러보다 먼저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은 케플러가 관측을 시작한 1604년 10월 17일보다 나흘 앞선 10월 13일부터 이 객성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객성의 위치나 크기, 색상 등을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오늘날 초신성을 연구하는 데 케플러 연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22쪽) 


이렇게 이 책은 세계 각지의 초신성 관련 기록을 함께 검토하여 유럽 중심 역사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데 철을 주제로 한 책에서 초신성을 살펴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신성이 폭발할 때 철의 동위원소인 '철-60'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철-60'은 지구와 같은 행성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초신성 폭발 때 만들어져서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일부는 지구와 같은 행성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지구에 있는 '철-60'은 어딘가에서 폭발한 초신성에서 날아온 것이다. 초신성 폭발 덕분에 우주 공간에서 물질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고, 지구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물질을 우리가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큰 시야로 바라보면서 '우주사적 의미'를 찾는다.

"초신성 폭발은 17세기의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했다는 인류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우주와 태양계, 지구에서 새롭고 더욱 복잡한 것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했다는 우주사적 의미를 함께 지닙니다."(31쪽)

이뿐 아니다. 광합성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책은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철의 역할을 알아보며, 그와 함께 한반도에 남아 있는 관련 화석을 살펴보기도 한다.

"광합성을 하는 최초의 박테리아는 남세균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인천광역시 웅진군에 위치한 소청도에는 매우 특이한 화석이 있습니다. 바로 남세균이 퇴적층을 이룬 스트로마톨라이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박테리아 화석인 동시에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서 박테리아의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58쪽)

광합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의 화석을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스케일이다. 그러니까 기존에 한국지리로 따로 배우던 것을 빅히스토리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점은 분명 이 책만의 빛나는 부분이다.

연철, 강철, 주철, 내열강... 철을 다루는 과학기술이 역사 이끌어

인류의 역사에 철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인간의 역사를 철기 시대로 구분하지 않던가. 이 책은 특히 철을 다루는 인간의 기술에 초점을 두고 서술해 나간다.

이를테면 이렇다. 중세 말에 십자군 전쟁이 발생했을 때, 이슬람 군대가 사용했던 검을 '다마스쿠스 검'이라고 부른다. 이 검이 당시로서는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제강법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설명한다.

"검을 만들 때 탄소 함유량이 많으면 강도가 높은 대신 탄력성이 떨어지고, 탄소 함유량이 적으면 강도가 낮아지고 검이 무뎌집니다. 그런데 다마스쿠스 검은 탄소 함유량이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이 층상 구조를 이루고 있어 강도도 높고 탄력성 또한 뛰어났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검을 가진 이슬람 군대가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108쪽)

이렇게 역사의 장면마다 철을 다루는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철의 종류가 여러 가지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탄소 함유량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는데 연철, 강철, 주철이 그렇다.

이 책은 다양한 철의 종류에 따른 역사를 알아가는 것은 기본이고, 제련술과 합금 기술, 제철 공업의 발달을 중심으로 역사를 돌아본다. 지난 1‧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인데, 아래는 이 책 서술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탱크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발명되었지만 이때의 탱크가 연강으로 만들어졌던 반면, 제2차 세계대전의 탱크는 고장력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고장력강이란 0.2퍼센트 정도의 탄소를 포함한 탄소강에 망간, 니켈, 구리 등을 합금한 것으로, 고장력강을 사용함으로써 탱크의 크기는 키우고 중량은 감소시킬 수 있었습니다."(185쪽)

이 외 내열 합금 기술 덕분에 비행기와 우주선을 만들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철을 둘러싼 과학기술이 인류 문명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한편 이 책은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간 세계 모두를 관통하는 과학 법칙을 제시하는 섣부른 시도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예를 들어, 빅히스토리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책인 <빅히스토리>(데이비드 크리스천, 밥 베인 지음)는 '복잡성 증가'라는 법칙을 제시해 우주의 탄생부터 근대 혁명까지 한 줄로 꿰려고 한다. 정말이지 무모한 시도로, 이는 이미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관련기사 : '빅히스토리, 우주적 관점에서 과학‧역사를 통합한다?'

그러나 <Fe 연대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는 확실히 기존에 나온 빅히스토리 책들보다 발전한 점이라고 하겠다. 이런 점과 함께 주제별 빅히스토리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빅히스토리가 이제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음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필요 이상으로 거창한 포부, 실질은?

그렇지만 시야가 넓은 것이 장점이지만, 때로 그것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큰 시야를 채울 내용이 부족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쉬운 점이며 앞으로 남은 과제라 하겠다.

이 책은 "빅히스토리의 관점은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고 생존하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전 인류가 함께 공존하고 번영할 길을 모색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11쪽)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큰 포부와는 달리 인류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인류 공존의 정치 외교나 국제 조약, 공존의 윤리 등에 대해 진지하게 살피는 부분은 없다.

대체로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문명의 역사를 살펴보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책임지기 어려운 거창한 구호가 없을 때, 괜찮은 교양서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정말로 역사를 통합적으로 살피고 있는지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과학기술 중심주의가 여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빅히스토리에 과제가 남아 있다. 그렇지만 분명 새로운 성과도 내고 있다. <Fe 연대기>는 확실한 진전을 보여줘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

김서형의 빅히스토리 Fe연대기

김서형 지음,
동아시아, 2017


#빅히스토리 #김서형 #FE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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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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