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뜨거운' 겨울, 먹고 걷고 사랑하다

[호주 시골 생활 이야기] 누사 헤드, 퀸즐랜드(Noosa Heads, Queensland)

등록 2017.07.10 17:31수정 2017.07.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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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을 찾아 나선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싼샤인 코스트의 누사 헤드(Noosa Heads, Sunshine Coast, Queensland).
태양을 찾아 나선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싼샤인 코스트의 누사 헤드(Noosa Heads, Sunshine Coast, Queensland). 이강진

호주의 겨울이다. 한국에 비하면 겨울이라는 말을 쓰기가 쑥스러울 정도의 따뜻한 날씨다. 특히 우리 동네는 시드니보다 북쪽에 있기에 더 따뜻한 편이다. 그래도 겨울이 되면 철새처럼 추위를 비해 북부 지방으로 떠나는 동네 사람이 많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빌(Bill)과 폴라(Paula) 부부도 캐러밴을 끌고 북쪽 끝에 있는 도시 케인스(Cairns)로 떠났다. 따라서 겨울이 되면 동네가 평소보다 조용해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처럼 몇 달씩 집을 비울 용기가 없다. 그래도 잠시 이웃처럼 철새 흉내를 내기로 했다. 오래 전에 한 번 지나쳤던 누사 헤드(Noosa Heads)라는 바닷가 동네를 목적지로 정했다. 우리 집에서 북쪽으로 800여km 떨어진 곳이라 하루에 다녀오기는 무리다. 중간에 딸이 사는 골드 코스트(Gold Coast)에서 하루 묵었다가 가기로 했다.


집을 떠났다. 자주 다니는 퍼시픽 하이웨이(Pacific Highway)를 따라 달렸다.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한 시간쯤 달리니 '도로 공사 중'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일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 같으면 벌써 끝났을 공사가 몇 년째 진행 중이다. 공휴일과 주말은 쉬고 칼퇴근하며 일을 하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차 마시는 시간과 점심시간도 충분히 가질 것이다. 호주에 오기 전에 들었던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오래 운전했다. 강가에 있는 우드번(Woodburn)이라는 동네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이곳은 많은 여행객이 간단한 다과와 차를 마시며 쉬는 강가에 있는 동네다. 따라서 카페도 많고 강가에는 두툼한 나무로 만든 식탁도 있다. 부모와 함께하는 꼬마 여행객을 위한 어린이 놀이터까지 있다.

아내가 커피를 사 오겠다면서 길 건너에 있는 카페로 갔다. 며칠 전 내린 폭우 때문에 갈색으로 변한 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기다렸다. 아내가 한참 지나서야 커피를 가지고 왔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많은 카페가 문을 닫아 줄이 길었다고 한다. 주말은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젖은 호주 사람,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도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골드 코스트에서 들어섰다. 오랜만에 만난 손녀들이 반겼다. 그러나 하룻밤만 지내고 다시 길을 떠난다. 돌아가는 길에 들려 며칠 지내다 갈 계획이다.

이곳에서 목적지까지는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여유 있게 운전하며 바닷가 다른 동네도 구경하면서 누사 헤드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태양에 몸을 그을리는 호주 사람들 

 서퍼들로 붐비는 산책로
서퍼들로 붐비는 산책로 이강진

일단 관광 정보 센터로 향했다. 센터를 찾아 시내 한복판에 들어서니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주차할 자리도 없다. 포기하고 주차장에서 나오는데 차 한 대가 빠져 나왔다. 행운이다. 어렵게 주차하고 관광 지도를 비롯해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한 후 바로 옆에 있는 해변에 가봤다.


해변에도 사람으로 넘쳐났다. 시드니는 겨울이지만 이곳은 한여름이다. 수상 안전요원이 세워 놓은 깃발 아래에는 남녀노소가 물놀이하느라 바빴다. 모래사장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누워있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상반신을 드러내고 일광욕을 하는 여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민망했지만, 요즘에는 자주 봐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보인다.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해변 근처에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보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가한 오후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신발을 손에 들고 파도를 밟으며 해변을 걸어봤다. 해안을 따라 3, 4층 정도 되는 리조트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리조트 베란다에서 맥주를 손에 들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보였다.

바닷가 옆은 누사 국립공원(Noosa National Park)이다. 국립공원을 따라 바닷가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잠시 걸어 봤다. 산책로에도 사람이 많았다. 서프보드를 옆에 끼고 높은 파도를 찾아 나서는 사람, 친구끼리 쉴 새 없이 떠들며 걷는 젊은이, 아버지는 유모차를 밀고 엄마는 아이를 손에 잡고 걷는 부부, 그리고 우리처럼 나이든 부부 등….

조금 걸으니 바다가 발 아래 펼쳐지는 전망대가 나왔다. 바다에서 서핑하는 사람이 물개처럼 보였다. 멀리까지 펼쳐진 백사장과 해안이 아름다웠다. 서핑하는 사람들과 끝 없이 펼쳐진 풍경이 잘어울렸다. 관광지로 이름이 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책길을 끝까지 걷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다음 날 하루를 잡아 산책하기로 하고 자동차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주차장 근처에 고급스럽게 보이는 선물 가게와 식당이 줄지어 있었다. 식당은 테이블을 정리하며 저녁 손님을 맞으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가게를 기웃거렸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싼샤인 비치(Sunshine Beach) 바로 옆에 있는 숙소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파도가 높은 황량한 해변이다. 짐을 풀고 동네 산책길을 걸었다. 집을 떠나 외지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낯선 곳은 아무리 좋아도 집보다는 불편하다. 이러한 생활을 며칠간 해야 한다. 

사람은 여행을 왜 할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선조들의 대부분은 여행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즈음은 너도나도 여행을 떠난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행복에 대한 강의를 본 적이 있다. 먹고, 걷고, 추억을 만들 때 행복감이 증진된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고 한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낯선 곳에서 행복을 생각한다.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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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바닷가 도시 골드 코스트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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