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2화: 중국을 놀라게 한 조선 천재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국경을 초월해 우정을 나눈 조선-명나라 천재 문사들1450년(세종 32) 한림원 시강 예겸(倪謙)은 명(明) 경태제(景泰帝)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조선에 입국했다.
예겸이 명나라 사절단의 정사(正使)로 선발된 것은 그가 자국의 사대부들로부터 당대 최고의 '문학지사(文學之士)'로 인정 받았을뿐만 아니라, 관직이 황제의 시종신인 한림원시강(翰林院侍講)에 이르러 조명외교(朝明外交)를 잘 중재할 수 있는 인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예겸 이전 조선으로 입국한 명(明)사신들은 주로 조선계 중국인 환관들이었는데, 이들은 체류내내 갖은 횡포를 부리며 조선정부를 괴롭혔기 때문에, 예겸과 같이 학식과 덕망을 겸비(兼備)한 엘리트 문신의 출사 소식은 조선을 들뜨게 했고, 일류의 문학지사를 맞이하기 위해 집현전 학사(集賢殿 學士)출신인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을 파견했던 것이다.
정사(正使) 예겸은 35세였고 접반사 정인지는 55세, 신숙주는 32세, 성삼문은 31세였다. 이들의 만남은 공자묘(孔子廟)를 배알하기 위해 예겸이 성균관으로 들어온 시점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양자 사이에 기회가 있을때마다 여러차례 창수(唱酬)를 진행하게 된다.
처음엔 긴장된 분위기 속에 시문(詩文)의 경쟁이 이루어 졌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자 서로간의 마음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예겸은 조선 학사들의 고전(古典)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겸손한 인품에 반하여 접반사 정인지를 두고는 "정상공(鄭相公)과의 하룻밤 대화는 10년 동안 책을 읽은 것보다 낫다."라고 품평할 정도로 감탄했으며 신숙주와 성삼문을 두고는 "동방의 거벽(巨擘)"이라고 극찬하기를 마지 않았다.
게다가 비슷한 연배였던 신숙주와 성삼문을 사랑하여, 형제의 의(義)를 맺기까지 했다고 성현의 '용재총화(慵載叢話)'에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조명(朝明)간 문화외교는 명나라 입장에선 조선이 중국 못지 않은 문명국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훗날 임진왜란이 발발했을땐 중화문명을 공유하는 '동반자'라는 시각에서 명나라의 참전 명분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봉사조선창화시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