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종회가 '해종언론 결의문'을 채택하기 직전, 종회 의원들에게 뿌렸다가 수거한 자료
정대희
중앙종회가 '해종언론 결의문'을 채택하기 직전, 종회 의원들에게 뿌렸다가 수거한 자료가 있다. '악성 인터넷 매체의 실체'라는 제목에 '불교닷컴', '불교포커스'라는 부제를 달았다. 결의문 채택 명분인 A4 용지 26쪽 문건이다. 이 자료의 머리말로 쓴 '무분별한 비방 기사, 종단 피멍든다' 제목의 글에는 "상식과 이성이 통용되지 않는 훼불, 해종의 만행이 수년간 방치되면서 전체 승가와 종단 나아가 종도의 가슴에 피멍만 남기고 있다"고 적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두 매체가 그동안 악질적인 기사만 써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문건에 적시한 '해종 기사' 30건의 사례를 살펴봤다. 이중 '자승 원장', '총무원장'이 제목에 등장하는 게 14건으로 절반에 가깝다. 주지가 은처승(부인을 숨겨놓은 승려)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소송을 벌이는 용주사를 다룬 기사가 그 다음으로 많다.
자승 원장에 대한 보도 태도를 해종언론의 기준으로 삼은 것일까? 미심쩍은 부분은 또 있다. 문건의 사례를 보면 제목 아래에 기사 내용, 즉 본문을 실은 게 아니다. 독자 댓글을 채워서 편집한 사례도 많다. 댓글을 방치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비춰진다. 결국 두 매체가 종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자승 원장을 비판한 죗값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희권 대표(이하 '신'으로 표기) : "우린 '해종언론'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언론탄압의 다른 이름이다. 부패하고 비대한 종단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 임무이다. 불교 용어로 '범계행위'라고 하는데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를 비판한 게 죄인가? 총무원 조치는 건강한 언론의 입막음용이다. 그 전에 정정보도나 언론중재 요청을 받아본 적도 없다.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해종언론으로 낙인찍었다. 그 정점에 자승 종권이 있다."- 해종언론 조치를 받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기사는? 신 : "은인표 사건에 대한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적이 있다. 종교계 최고 지도자인 자승 원장이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 혐의로 구속된 은인표를 만나서 돕겠다고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내용이다. 불교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마땅히 보도했어야 했다.
용주사 주지가 '쌍둥이 아빠'라는 의혹은 소송으로 비화됐고 조계종단 내에서 널리 알려졌다. 청정해야 할 불가가 이 일로 불신을 받는데, 주지는 해명도 안하고 뭉개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문제의 주지는 자승 원장 최측근이다."
이 : "저들이 우리에게 물은 죄는 '진실유포죄'다. 자승 원장의 '역린'을 사실 보도한 것에 죄를 물었다. 자승 원장이 은인표를 면회한 사실을 보도했다. 총무원장 선거 때 장주 스님에게 출마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써준 '약속드립니다'라는 각서를 보도했다. 법원도 각서의 필체가 자승 원장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쌍둥이 아빠 의혹을 받는 용주사 주지는 자승 원장이 이사장인 재단법인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상임이사이다.
'해종언론' 문건을 보면 댓글도 문제 삼았다. 하도 황당해서 불교닷컴의 2015년 11월 4일 이전 3년치 댓글을 분석했다. 이중 1261개가 총무원 IP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불교닷컴 댓글에 '자승 총무원장의 첩' 의혹을 제기한 게 있었다. 자승 원장이 종로경찰서에 고소해서 잡은 사람은 자승 원장의 상좌였다. 그는 승적을 박탈당한 채 쫓겨났다. 이렇듯 매체가 직접 단 댓글도 아닌데, 왜 그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나."
- '해종언론'들이 종단과 승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 "촛불이 정권을 교체한 건 태블릿피시에서 촉발됐다. 국정농단의 실체를 확인할 증거를 보도하는 게 왜 부끄럽나. 국정농단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 기사를 문제 삼는 총무원에 하고 싶은 말이다. 또 항상 '무아'(불교 기본 교리로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뜻)를 주장하면서 명예를 찾는 이유를 모르겠다. 명예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파계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알아서 자정하는 것이다."
[취재금지] "자승 원장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거, 안 보이나?"
▲지난 7월 25일 <오마이뉴스>는 불교닷컴 이석만(49), 불교포커스 신희권(50)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정대희
이 : "총무원은 우리에게 보도자료를 보내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보도자료 하단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라고 적었다. 그 이유를 알아 보니 우리가 보도자료를 인용보도하면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걸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최근에는 보도자료 사진도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워터마크를 찍고 있다.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언론사에서 좋아할 리 없다. 워터마크 없는 사진을 요청하면 해당 언론사에 별도로 사진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 : "총무원은 조계종 사찰에 공문을 보내서 행사나 법회 장소에까지 우리를 출입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다. 사찰 행사를 취재하러 갔다가 끌려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총무원 청사에서는 대관 행사도 진행하는데 그것도 취재하지 못한다.
사실 5금 조치 초기에는 불복과 저항의 의미로 여러 취재를 다녔지만, 번번이 제지를 당해 감정이 상했다. 우리를 막는 종무원들은 자주 만났던 사람들인데, 그들의 표정에서도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 : "지난 총선 때 한 행사에 취재하러 갔다. 그 자리에 자승 원장도 있었는데 대부분 아는 사람들 앞에서 질질 끌려나왔다. 한 사람이 '자승 원장 지시다. 자승 원장 눈에 레이저 나오는 거 안 보이냐. 빨리 나가라'라고 말하더라.
조계사에는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최근 기습시위가 벌어져서 조계사에서 영상을 찍다가 쫓겨나왔다. 호법부(종단의 경찰-검찰격) 직원이 옥상에서 나를 보고 고함을 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그는 1층으로 내려와서 '조계사 경계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하도 황당해서 불교단체들이 돈을 들여서 조계사 사유지의 경계를 측량했다. 지금도 조계사 일주문에 가면 양쪽에 붉은 경계 표시를 볼 수 있다."
[광고-후원 금지] "미안합니다, 윗선 지시로 어쩔 수 없어요"
▲지난 7월 25일 <오마이뉴스>는 불교닷컴 이석만(49), 불교포커스 신희권(50)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정대희
신 : "수입의 80% 이상이 배너광고에서 나온다. 큰돈은 아니고 사찰이 십시일반 내던 광고였다. 이번 조치가 결정되기 1년 전부터 총무원 직영사찰이나 수련원의 광고가 떨어져 나갔다. 그때 5000만 원 이상의 손실을 봤기에 수입 기반이 무너졌다. 종회가 (해종언론 조치를) 결의한 뒤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얼마 전 법원에 제출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장에 적은 손해액은 1억 원 정도이다."
이 : "전국 3000개 사찰과 산하기관, 복지시설, 종립학교 등에 일제히 공문을 보냈다. '광고와 후원을 하지 말라', '기 시행하는 광고를 삭제하라'는 내용이다. 호법부 직원들은 불교닷컴, 불교 포커스에 걸린 광고사 사찰에 전화해서 광고를 내리라고 지시했다. 개인업자가 낸 광고도 어쩔 수 없이 내렸다. 5금 조치가 시행되기 전에 한 대학이 부처님 오신 날 광고를 걸었는데, '미안합니다. 윗선 지시로 어쩔 수 없습니다'라면서 50만원을 되돌려 달라고까지 했다. 우린 1억 3천만 원의 손해를 봤다."
[접촉금지] "우리가 간첩인가?"
▲지난 2015년 조계종은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를 '5금(禁) 조치' 했다. 사진은 서울 안국동 조계사 앞에 놓여 있는 피켓
정대희
이 : "스님에 대한 기사가 나가면 호법부 승려들이 스님에게 전화해서 '언론사에 연락해 기사를 내려라'라고 한다. 언제 만나서 인터뷰 했냐고 추궁하고, 칼럼을 쓰는 사람에게도 기사를 내리게 한다. 이와 관련해서 법원에 10여 건의 증거를 제출했다. 한 번은 총무원 직원이 한 방송사 기자와 우리 기자가 조계사 앞 우정국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홍보팀에 전달했다. 총무원은 방송사에 항의해 출입기자를 교체했다.
우리가 간첩인가? 접촉도 하지 못하게. 상황이 이러하니 밤에 일대 일로 만나면 인사하는 스님과 종무원들도 낮에 만나면 외면한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사실 생존권이 달린 광고 문제보다, 이게 더 가슴이 아프다."
신 : "그동안 우리에게 좋은 글을 보내주었던 스님 필진들에게 미안하다. 그 분들은 되레 자기가 미안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먼저 그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배려할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황당한 실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개인적인 친분도 있는데, 그런 만남조차 자기검열이 된다. 우리가 불가촉천민도 아닌데..."
조계종단은 지난 6월 해종언론 한 개를 추가 지정했다. 2012년부터 '불가촉천민'인 불교닷컴과 기사제휴를 해 온 '불교저널'(선학원 기관지)이다. 5금 조치에서 접촉금지 죄에 걸려들었다.
[불가촉천민의 손을 잡은 손] "17세기 야만의 시대로 회귀 막아야"
▲불교닷컴 이석만 대표
정대희
▲불교포커스 신희권 대표
정대희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조계종언론탄압공동대책위'는 지난 6월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계종이 언론탄압을 하고 있다"면서 "해종언론 지정을 조속히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문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그동안 두 언론사는 백양사 도박사건, 적광 스님 폭행사태, 마곡사 금권 선거, 용주사 주지 은처 의혹, 비리로 얼룩진 동국대 사태, 이해할 수 없는 명진 스님 제적 사태 등 수많은 불교계의 적폐를 보도하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600여일 가까이 탄압을 받고 있다.(중략)이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조치이며, 언론의 귀와 입을 막은 채 제 입맛에 맞도록 불교 전체를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유신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일이고, 중세 마녀시대에 있을 법한 작태가 지금 조계종 총무원에 의하여 자행되고 있다." 지난 6월 30일에는 '명진 스님과 함께하는 변호사 모임'이 서울중앙지법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에 대한 조계종단의 조치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민형사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7월 20일에는 국회에서 '조계종 적폐와 청산 방안' 토론회도 열렸다.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명진 스님 제적 철회를 위한 원로모임 등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 이도흠 한양대 교수(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는 발제문에 이렇게 적었다.
"자승 총무원장을 비롯한 지도층 승려들의 범계와 비리, 동국대, 마곡사, 용주사 사태, 종단의 문제점에 대한 보도는 통제되거나 조작되고, 오직 해종언론으로 지목되어 탄압을 받는 <불교닷컴>과 <불교 포커스>만 올바로 보도하고 있다. (중략) 언론사들을 탄압하는 것은 역사를 17세기 이전의 야만의 시대로 퇴행시키는 것이자 헌법을 부정하는 위헌 행위이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과 학교법인 동국대 등이 해종언론 조치가 시행된 뒤 두 언론사에 건 소송사안은 형사 4건, 언론중재위 2건, 민사 2건 등이다. 개별 소송 건수로 치면 10여건도 넘는다.
"기자들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송까지 당하니, 힘듭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34명의 변호인단(명진 스님과 함께하는 변호사 모임)과 언론노조, 재가단체 등이 없었다면 이런 싸움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이석만 대표) [두 언론의 길] 파사현정, 조고각하
▲이석만, 신희권 대표가 서울 안국동 조계사에 발을 내딛었다. 조계종의 '5금(禁) 조치' 후 2년 만이다.
정대희
신 대표는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했다. "드러내야 할 것은 드러내고 불교를 불교답게 만들면서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의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렸다. "사회의 악이 횡행하는 것은 개개인의 양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적 저항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또 "조고각하(照顧脚下. 나의 발밑을 살피라)와 파사현정의 정신으로 범죄 행위는 고발하면서 좋은 스님들이 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불교계 언론 환경의 단면을 보려면 아래 기사를 클릭하면 된다. 2015년 11월, 두 매체가 해종언론으로 낙인찍힌 뒤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이석만 대표 인터뷰 기사이다.
☞승려에게 맞아 이 4개 나가고 피오줌까지4년 전 납치‧폭행사건으로 최근 다시 논란이 되는 적광 스님 동영상 편집본도 있다.
☞적광스님 납치-폭행 장면 동영상(촬영 이석만, 편집 '직지코드' 제작 우광훈 감독)지난 겨울 촛불은 광장을 뜨겁게 달구며 정권을 교체했지만, 조계종단 권력은 그대로이다. 두 언론은 지금도 촛불을 들고 불교 권력과 싸우고 있다. 만질 수도, 만져서도 안 되는 존재였던 '불가촉천민', 이들이 630일 동안 '나홀로' 들었던 촛불은 옮겨 붙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도 이들과 함께 '불교적폐청산' 공동기획을 시작했다. 조계종단이 그토록 강조해온 자비와 광명이 차별 없이 온 누리에 비출 수 있도록.
☞[불교적폐청산①]자승 원장 비판하려다 정신병원 간 스님, 불자들이 나섰다좋은 컨텐츠 후원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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