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황우석 연구논문 조작 사건’ 책임 문제로 부적절한 인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서 회의 시작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권우성
박 본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자신을 향한 비판에 "황우석 사건 당시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아무 말하지 않고 매 맞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했고 그 이후에도 제대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으나 기회를 만들지 못하여 지난 11년간 너무 답답했고 마음의 짐으로 안고 있었다"라며 "그간 여러 번 사과의 글을 썼었으나 어느 곳에도 밝히지 못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박 본부장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황 교수를 적극 지원하도록 이끌었으며 265억 원에 이르는 연구비 지원과 연구 관련 규제 완화 등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후원에 앞장섰다. 또 박 본부장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 <사이언스> 논문에 기여한 것도 없이 공동연구자로 이름을 올리고, 자신도 대학교수 시절 황 전 교수에게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 없는 주제의 연구비 2억5000만 원을 지원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박 본부장은 이 같은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그는 황 교수에게 연구비 지원이 집중된 것과 관련해 "황우석 박사 연구에 액수가 많이 집중돼 보이는데 제가 청와대 있을 때 연구비 설계와 배분 역할은 주어지지 않았다"라며 "그 당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관심들이 많이 반영돼 연구비 수주에 유리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또 "당시 국민 여론이 많이 반영된 결과이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나서 황 교수를 지원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항변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황 교수와 연결하고 적극 지원하도록 이끈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황 교수 연구가 난치병 치료 연구이고 장기적으로 생명과학 발전 분야여서 언론 관심도 높아 정부도 부담스러워 했다"라며 "(황 교수를) 왜 지원하지 않느냐는 기사가 신문 톱에 실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여론이 황 교수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작된 황 교수의 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과 관련해서는 "논문이 나오기 2년 전 논문 기획은 함께 했다, 논문 기획을 함께 해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라며 "황 교수 측이 이름을 올릴 것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동하다 '알았다'고 답한 게 큰 실책"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황 교수 연구 지원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조작된 황 교수의 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도 단순한 '실수'였다는 얘기다.
박 본부장의 이 같은 변명을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조 전 장관은 재판을 받으면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당시에 블랙리스트를 보고 받거나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정무수석에 있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허수아비였다'고 자인한 꼴이었다. 조 전 장관은 이를 호소하며 법정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국회 위증 부분에만 죄를 물었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개괄적'으로 보고받았을 뿐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여러 명의 청와대 관계자들이 보고를 했고, 조 전 장관도 관여를 했다는 증언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 이후 재판부의 판단에 비판이 잇따랐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 판결'이라는 것이다.
박 본부장 역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과학 정책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황 박사 연구 지원에 자신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이 황 교수 연구실을 방문할 때 동행해 함께 사진을 찍고, 황 교수 논문에 이름을 싣고, 황 교수에게 연구비를 받았음에도 '황우석 사태'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당시 여론 때문에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
비례대표 출마할 시간은 있었지만 사과할 시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