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다시 국민 품으로!" 기자 81명 제작거부 선언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보도국 기자 81명이 공정보도 보장과 김장겸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제작 거부를 선언하고 있다.
권우성
오늘(11일) 오전, MBC 보도국 취재기자 80여 명이 제작 중단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전 PD수첩 제작진과 카메라 기자들의 제작 중단 소식을 들었는데, 'MBC 구성원들이 방송 정상화를 위해 연이어 큰 결단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MBC 정상화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입맛에 맞춰 찍어내듯 뉴스를 생산해내면서 정작 언론으로서의 '직언'은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MBC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시청률과 뉴스 신뢰도, 지난해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목격한 MBC 취재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야유는 이러한 사실을 뼈아프게 보여주었습니다. '마봉춘'으로 불리던 예전의 MBC와 같은 위치로 돌아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MBC 정상화에 대한 희망을 다시금 가지게 된 것은 올해 5월 말 즈음입니다. 그 무렵 저는 한 명의 성소수자로서 육군의 성소수자 군인 색출 수사와 대선 후보들의 무분별한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인해 심각한 내적 상처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이어진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억측, 혐오성 보도는 저를 비롯한 많은 성소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평등을 곡해하고 차별을 공언하는 보도가 범람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성소수자 당사자는 말 그대로 고통의 순간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연히 MBC PD수첩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정말 MBC가 맞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는 '혐오 방송으로 짜깁기 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MBC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날선 조롱과 비난이 언론을 통해 확장되는 시기, 성소수자에게 있어 MBC는 결코 신뢰할 수 없는 언론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송 당일 걱정을 가득 품은 채 MBC로 채널을 설정하고 PD수첩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품고 있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육군의 성소수자 색출 사건과 군형법 92조6의 문제점, HIV/AIDS에 대한 혐오와 낙인, 차별금지법 제정의 현주소, 다양한 이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의 호소까지. 그동안 성소수자가 목쉬도록 외쳐왔던 간절한 말들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