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의 인터뷰 관련 사진 갈무리
BBC
- 우리나라에서는 '기계적 중립'이라고 해서 '여'를 한 건 다루면 '야'도 한 건 다루는 식이잖아요. 하지만 이게 불편부당성에는 맞지 않는 거죠."그렇죠. BBC는 불편부당성을 우리가 흔히 아는 기계적 중립이나 수학적 균형과 다르다고 규정해 놓고 있어요. 한국 방송 풍토에서 기계적 중립을 강조하는 것은 여야 어느 쪽으로부터도 책잡히지 않겠다는 방어 전략이거든요. 언론의 기능을 저울로 국한시킨 것이죠. 기계적, 형식적으로 저울 기능만 다 하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공정성을 수단화시켜서 저차원적인 것으로 한정했어요.
영국에서 말하는 불편부당성은 상당히 폭이 크죠. 기계적 중립과 수학적 균형이 시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장애가 될 수 있다면 옳지 않다고 오래 전부터 얘기해 왔어요. 주제나 사안에 대한 관심 그리고 시청자들의 기대치 등을 감안해서 균형을 맞춰야 하지 그냥 자로 잰 듯이 5:5는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보완하는 요소로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균형은 양자 간 균형을 말하는 것이지만 다양성은 세상의 갈등이슈가 A와 B라는 당사자, 찬성과 반대에 국한돼 있지는 않잖아요. 좌우, 진보 보수의 문제만 있는 건 아니죠.
BBC에서 흔히 쓰는 비유로 '시소에서 수레바퀴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수레바퀴의 바큇살처럼 360도로 이해관계가 퍼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평소 뉴스에서 배제된 다양한 연령, 계층, 지역, 성향의 시민이 뉴스에 다 많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 그래서 시민 인터뷰가 많나 봐요?"그렇죠. 한국 뉴스에서 시민은 사회부 기자의 영역이지 정치부 기자의 머릿속에는 없거든요. 근데 BBC 뉴스에서는 정치영역 안에 시민이 큰 비중을 차지해요. 정치 엘리트와 함께 시민이 양대 축처럼 설정돼 있어요. 아이템 소재나 의제도 시민의 눈에서 관심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한국은 정책 검증을 해도 각 당의 공약집에 나온 걸 정리해서 각 당을 비교하는 방식인데, BBC 보도를 보면 어느 정당도 말하지 않는 이슈들만 뽑아서 별도로 시리즈 기획을 해요. 심지어 시민이 직접 리포트 하는 고정 코너도 있어요. 그래서 선거 보도에 정치인들이 좀처럼 강조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등장하죠.
이를테면, 탈세하는 기업인들을 잡아넣어야 한다는 서민들의 주장이나, 도로 정비를 간절히 바라는 택시 운전사들의 요구, 돌봄 서비스에 대한 노인들의 생각 같은 것들이 그들의 목소리로 뉴스에서 논의되는 방식입니다. 단순히 시민 인터뷰의 개수가 많은 게 아니라 이처럼 의제의 다양성, 관점의 다양성이 드러나는 거죠."
-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주권이란 말을 하고 헌법에도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정치뉴스의 주인공은 정치인이지 시민은 아니잖아요."그렇죠. 사실 우리가 시민이 중요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우리 뉴스는 그것과 너무나 거리가 멀어져 있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 보려는 노력도 없었다고 봐야죠. 미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갠즈는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을 크게 알려진 사람(Knowns)과 알려지지 않은 사람(Unknowns)으로 구분해 봤을 때 알려진 사람, 즉 '정치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뉴스를 지양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재현과 참여의 기회를 줄 수 있는 다관점 뉴스로 가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제안했어요. 그러려면 좀처럼 뉴스에서 보기 힘들었던 노인, 청소년, 저소득층, 반체제 인사들의 목소리도 폭넓게 반영해야 해요.
우리가 뉴스에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은 아마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하는 즉석 인터뷰일 거예요. 대부분 직장인이거나 적어도 서울 도심을 낮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국한되죠. 그런데 BBC 뉴스를 분석하며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 뉴스에 나오는 시민과 정말 다르다는 겁니다. 우선 시민을 만나는 방식이 길거리 인터뷰에 머물지 않고, 공장, 카센터, 대학교, 노인 요양원, 헬스클럽, 가정집 대문, 어촌, 농촌 등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 많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구를 비슷하게 재현하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죠.
그렇게 등장한 시민들의 인터뷰 내용도 그저 그런 뻔한 것들이 아니라, 자기주장을 펼치거나 현실을 비판하는 적극적인 것들이 많아요. 한국의 공영방송 뉴스에 그런 게 보이냐는 거죠. 우리 뉴스에서 그런 사람들은 사라지고 배제됐어요. 촛불로 인해서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로 많이 발전해 왔는데 여전히 뉴스만 '시민 없는 정치', '시민 없는 선거'라는 구시대적인 관행에 머물러 있죠."
시민 참여 민주주의로 발전한 한국, 여전히 뉴스는 '시민 없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