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인간
눈빛출판사
제7의 인간은 1970년대 개발선진국으로 불리던 유럽으로 건너온 개발도상국 이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사진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한국도 외화벌이의 명분으로 독일(당시 서독)에는 광부와 간호사를, 중동국가로는 건설노동자를 수출했다. 제7의 인간은 그 당시 유럽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일곱 명 중 한 명은 이민노동자였던 것에서 따온 말이다.
글쓴이 존 버거는 '산업발전을 일찍 시작한 유럽국가들은 힘들고 고된 노동을 대신할 노동력을 개발도상국가에서 필요로 했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그들의 열악한 일상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은 언제라도 교체할 수 있는 기계 부품 취급을 당한다. 굴욕을 참아내며 버틴 것은 고향을 떠나올 때 가졌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실은 악몽으로 바뀔 만큼 너무도 가혹했다.
존 버거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전 세계의 절반을 빈곤국가로 남겨두는 모순에 대해서 지적한다.
'자본주의 윤리에 따르면 가난이란 개인이든 사회든 기업에 의해서 구제될 수 있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기업은 생산성이라는 척도에 의해서 판단되며, 이 생산성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가치가 된다. 그래서 도망칠 수도 없는 잠겨진 빈곤 상태로서의 저개발이란, 자본주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본주의는 세계의 절반을 그러한 상태에 묶어두고 있다.' - 본문 중에서자본과 생산수단을 가진 국가가 필요한 노동력을 언제라도 쓸 수 있고 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이민노동자 정책이다. 즉, 생산력을 가진 자가 노동력을 소유하는 자본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금이 싼 외국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빈곤 상태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필요했다.
노예제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약소국가를 침탈하여 식민지를 만들었다. 자원과 노동력을 자본에게 제공하던 것이 한 단계 발전하여 국가 간의 노동력 거래를 상호 간의 이익이 되는 호혜정책으로 둔갑시킨 신식민지 정책이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유럽에서 시작된 이민노동자 착취를 통해서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이민노동자를 억압하는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이민노동자 정책을 옹호하는 이들은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주장을 한다. 한 가지 예를 보면, 개발선진국에서 기술을 배워 고국으로 돌아가면 그들 나라의 산업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민노동자에게 기술을 배우고 숙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일정 기간을 채우고 나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작업을 하도록 하는 제도를 유지한다.
그리고,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면 그들의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새로운 인력을 제공받는다. 불법이민노동자가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자본은 필요에 따라서 이것을 묵인하고 방조하면서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 상황에 따라서 단속을 통해 강제추방을 하기도 한다.
1970년대 유럽의 이민노동정책은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를 시작으로 2004년 시작된 고용허가제는 사용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회사를 옮길 수도 떠날 수도 없다. 지난 8월 6일 27살의 네팔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온지 1년 4개월 만에 머나먼 고향에 가족을 남기고 한국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 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 깨서브 스래스터씨의 유서
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눈빛,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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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세계의 절반이 여전히 가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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