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원과 내 나라6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6
정병진
김상구씨가 또 다른 근거로 제시한 이광수의 <동아일보> 연재글 '젊은 조선인의 소원'과 <도산 안창호 전기>에는 문화강국론, 도덕과 평화사상 등 일부 사상의 흐름은 유사하나 '나의 소원'의 내용과 빼닮은 대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의 소원'은 백범이 국한문 혼용으로 기록한 초판본에는 없고 1947년판 <국사본 백범일지>부터 나온다. 이 글은 간결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기록돼 명문으로 손꼽힌다. 글쓴이가 누구이든 한글 문장 사용에 숙달한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인다.
춘원 이광수는 그의 수필집 <돌베개>의 서문에서 '이 책에 수록한 글들은 1946년 9월부터 1948년 2월까지 쓴 글들을 묶은 것'임을 밝힌다. 그의 책은 <국사본 백범일지>보다 약 1년 늦게 출간됐다.
도진순 교수 "이광수가 개입했다면... '나의 소원'이 가능성 제일 크다"도진순 교수는 '나의 소원'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지난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나의 소원'을) 이광수가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원본이 나왔는데도 <백범일지>를 이광수가 썼다는 주장도 있다, 백범이 써놓은 본문이 있기 때문에 그 주장은 틀렸다"라면서 "이광수는 본문을 윤문하는 정도였지 그가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있는 글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광수가 손을 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소원' 같은 부분"이라면서 "나는 '나의 소원'을 명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백범이라는 권위에 눌려 '나의 소원'을 높이 평가하는 건 평소 백범 관련 강의를 할 때도 많이 언급한다"라고 덧붙였다.
도 교수는 '나의 소원'에 나오는 '아름다운 나라' 관련 대목도 "시대적 한계가 있는, 잘못된 구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고조선 멸망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 역사를 보면 외교·안보로 흥망이 결정 나고 경제가 제일 중요한데, '그냥 대강 살면 되고 평화를 사랑하면 된다'라니, 이런 건 환상론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문화적으로 다 잘사는 건 아니지만, 문화적인 풍요라고 하는 게 경제적인 것과 별개로 나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백범의 글, 필자 겹친 경우 있기도"도 교수에 따르면 백범이 <백범일지>를 쓸 수 있었던 시기는 "아이러니하지만 임시정부가 안 돌아갈 때, 할 일 없을 때"였다. 그래서 그는 "(<백범일지>) 상권이 제일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고 재미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해방정국 3년은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였다, 특히 1947년 (<백범일지>를) 출간 할 때는 정치가 하루하루가 다를 때이고, 백범이 쓸 수 있는, 쪽 글도 굉장히 시간 내기가 힘들 때다, 그래서 백범의 긴 글 중에는 필자가 겹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례로 1945년 12월 크리스마스에 백범 이름으로 발표된 순국선열 추념문을 들었다. 도 교수는 "그 글은 명문장가가 쓴 글이지 백범 실력으로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근데 백범 이름으로 발표가 됐다"라면서 "나중에 그 추념문 전문이 정인보 전집 2권에 수록돼 있음을 발견했다"라고 밝혔다.
"'아름다운 나라 부국강병' 벤치마킹했을 수도"도 교수는 '나의 소원' 속 문화강국론(문화입국론)을 대중이 높이 평가하는 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광수는 책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만약 이광수의 입장이 많이 들어갔다면, '나의 소원'이 그 가능성이 큰 글"이라면서 "'나의 소원'을 조목조목 해체해보면 몇 군데를 빼고는 백범 평생의 투쟁 경력이 녹아 있는 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백범에 대해 "문화에 대해 그렇게 해박한 시각을 갖고 있는 분도 아니고 독립운동, 배운 거 없이 온몸을 던져서 독립운동하기에 바쁜 그런 분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도 교수는 "('나의 소원'에는) 갑자기 '문화 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물론 해방 후에는 독립이 됐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라면서도 "글에 나오는 '아름다운 나라'를 대중이 무비판적으로 이상화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도 교수는 "일본 메이지 시대 때 '아름다운 나라 부국강병하자'는 메이지 유신 개념이 있었는데, 이것이 벤치마킹 돼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근대에 학문이 유입될 때 생겼던 개념이 '나의 소원' 속 '아름다운 나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나의 소원'과 '내 나라' 전문 및 비교 대조 도표(위 도표 이미지 5개)에 대한 도 교수의 의견은 어떨까. 그는 다음과 같이 회신했다.
"물론 주관적일 수 있지만, 제 느낌은 단어와 문장을 형식적으로 비교하면 표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요한 논지의 차원에서 보면 같은 사람의 글이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참고했을 경우 그 근거를 밝혀줘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백범은 학자가 아니고 당시 정치와 민족 일선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백범에게 학자와 같은 엄밀성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인보가 쓴 글도 백범 이름으로 발표됐습니다. 이것은 두 분이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요. '나의 소원'이 백범과 춘원 간 동의 속에서 나온 것인지, 춘원이 집필하고 백범이 감수한 것인지, 춘원의 집필인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백범이 비서가 마련해준 글을 감수하고 처리한 것인지 등은 불분명합니다.물론 ('나의 소원'에는) 당시 중요한 과제로 대중의 공감을 산 부분도 있습니다. 백범이 책을 펴내면서에서 밝힌 '모스크바, 워싱턴을 일방 따르지 말고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백범의 소신과 합치합니다. 이는 신채호 등도 말해왔던 내용입니다. 정리하자면, '나의 소원'에는 백범의 사상과 합치하는 바도 분명 있지만, 춘원 등의 보조도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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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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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나의 소원'에 이광수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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