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공 대피훈련을 한 23일, 대전 둔원초등학교 학생들이 공습 경보가 울리자 지하 강당으로 대피해 안내 방송에 따라 책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낮은 자세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들은 '실제 상황'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고 했다. 사실 담임교사인 나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아이들의 '일리 있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능력도 없다. 당장 한 아이는 적의 공습이 시작되면, 운동장보다 건물 안이 더 안전할 것이라면서 다짜고짜 밖으로 나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따지듯 묻기도 했다.
얼추 20년 가까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학교마다 다양한 실제 재난 상황을 가정한 매뉴얼이 갖춰져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백하건대, 양떼 몰듯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서둘러 나가게 한 것 말고는 다른 행동을 취해본 적인 단 한 번도 없다. 이번처럼 공습경보가 울리든, 지진이나 화재가 발생하든 매번 똑같았다.
"이곳으로 미사일이 날아오는 상황까지 갈 것도 없어요. 당장 지금 학교 건물에 지진이나 화재가 난다고 해도 우리들 중 살아남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걸요."'절대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다'며 코웃음 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또 다른 아이가 말했다. 그도 여태껏 재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수업시간에 배운 기억이 없다면서, 전국에 사이렌을 울려대며 호들갑떨 게 아니라 교육과정에 넣어야 한다며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나아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면 직방이라고 덧붙였다.
'돈보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맨 먼저 깨닫고 실천해야할 곳이 학교일 텐데도, 안전에 관한 한 가장 더디 변하는 것 같다. 참사 직후 교무실에 '안전교육부'와 같은 부서가 생겨날 만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비등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실제 상황'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교육은 이론 위주였고, 훈련은 늘 형식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국가적인 재난 훈련이라도 공부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식이 뿌리 깊다. 누구 말마따나, 아이들에게 '재난'은 멀고 '입시'는 가깝다. 듣자니까, 전국적으로 동시 실시된 이번 훈련에 입시를 앞둔 고3들까지 참여시킨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고 하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대피 훈련은커녕 안내방송조차 틀지 않았다고 한다. 형식적으로 할 바에야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겨선지 몰라도, 아이들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기회조차 박탈당한 셈이다. 수능 듣기평가 때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도 멈추게 하는 나라에서, 애초 '안전' 따위는 '입시'에 상대가 되지 못한다.
재난, 제대로 대비하려면결국 아이들은 시나브로 '똑똑한 바보'가 돼버렸다. 그 어렵다는 미적분 문제는 술술 풀어내도, 정작 재난에 맞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는 기초적인 생존법은 알지 못한다. 적의 공습이든, 지진이든, 실제 재난이 닥치면 그들의 삶은 바람 앞에 촛불일 수밖에 없다.
공습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20분 동안 운동장에서 그들과 나눈 대화가 이를 증명한다. 지진이 나면 아이들은 너나없이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는 것만 들어 알고 있을 뿐이다. 정작 중요한 왜 그래야 하는지의 이유와, 그보다 앞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건물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길이 없고, 그저 귀찮은 일이 되고 만다.
물론, 몇몇 아이들은 질문에 똑 부러지게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실제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런 지식조차 별무소용일 듯싶다. 적어도 수백, 수천 명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에서는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개인별로 대피 요령을 익히도록 하는 것과는 별개로, 전체가 동시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절실하다. 예컨대, 학년별, 학급별로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동선이 정해져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대피 순서까지도 마련되어야 한다. 대피할 곳에는 교실에서처럼 학년, 반 등이 표시되어 있고, 시시각각 상황을 전하는 연락망 등도 필요하다.
실제 상황에 대비하여, 학급 내에서는 교실 앞뒤 문을 즉각 개방하는 학생과, 각종 기자재의 전기 플러그를 뽑는 학생 등도 구체적으로 지정되어야 한다. 하다못해 교실마다 구비되어 있는 소화기 당번도 정해서 동선과 정확한 사용법 등을 숙지시킬 필요가 있다. 모든 교실에 소화기만 비치되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안전이 담보되지는 않는다.
"요즘 아파트의 집집마다 비상용 완강기가 마련돼 있는데, 훈련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요. 분명 있긴 할 텐데, 가정용 소화기도 어디에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고요. 그러고 보면, 시설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재난에 대한 인식의 문제인 것 같아요."'안전 불감증'에 대한 한 아이의 고백은 기성세대를 향해 잔뜩 날이 서 있다. 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부족한 시민의식만 나무랄 게 아니라, 아이들이 그렇듯 '무뎌진' 채로 어른이 되기 전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듯싶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을진대, 진짜 '적폐'란 이런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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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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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식적인 재난 대피 훈련, 굳이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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