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듯하지만 전혀 새로운 <기사단장 죽이기>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들

등록 2017.08.30 10:41수정 2017.08.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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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춤한 듯 보였던 '하루키 열풍'이 아직까지도 여전함이 입증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을 넘어 한국 그리고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확고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상실의 시대>로 시작해 <IQ84>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작품들은, 일본색(色)은 최소화하며 현대 사회의 구성원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파편화된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어느 독자에게나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출판되었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나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이전 대표작들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향해서도 흥행 여부에 대한 물음표가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일각의 우려는 책의 출판과 동시에 사그라들었다. 발매 3주 만에 50만부 판매를 돌파하며 책 1, 2권이 대형서점 및 온라인 도서판매 사이트 베스트셀러 랭킹 1, 2위를 나누어 독식해버린 것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등에 따르면 이 같은 판매량과 판매추세는 전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IQ84> 등의 3배에 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이 작품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열광을 이끌어낸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하루키를 사랑하는 이들과 싫어하는 이들 모두가 반응할 만한 '하루키 문학'만의 본질과 변화 모두 짙게 담겨 있다. 그것이 신작에 대한 독자층의 관심도를 여느 때보다 높였고, 증가된 판매량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주제 그러나 새로운 서술방식


문학동네
하루키 문학의 핵심이자 반복되는 주제는 누가 뭐라해도(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의 표지에도 적혀 있듯이) '상실과 구원'이다. 과장을 좀 더 보태 말하자면, 그의 문학 세계는 이 주제를 새로운 소재들을 활용해 끊임없이 바꾸어 선보이는 과정들이었다.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갑작스런 부인의 이혼통보에 주인공(나)은 집을 떠나 유명한 화가인 친구 부친(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서 살게 된다. 이후 도모히코가 남긴 미공개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그는 여러 기묘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생각과 인식은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고, 이는 가족의 재결합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상실의 정서 - 사건 - 구원'으로 이어지는 하루키의 전형적인 서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서술의 방식에서 달라진 점이 존재한다. 바로 이전 작품들에 비해 주제를 전달하는 소재가 보다 현학적인 모습을 띈다는 점이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두 여성들과의 사랑과 그 기억이, <1973년의 핀볼>에서는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추억의 핀볼머신이, 그리고 <색채를 잃은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친구들과의 오해와 그로인한 관계의 단절 등이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친숙하거나 독자들이 한번 경험해볼 만한 존재들로, 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이데아'와 '메타포'(한국판 1, 2권의 부제가 각기 '현현하는 이데아'와 '전이하는 메타포'이다)를 소재로 채택하고 있다. 굉장히 일상과 멀어보이는 것들인데, 이를 전달하는 방식조차 특이하다. 이들은 각기 기사단장이나 긴 얼굴이라는 모습으로 실체화 되어 주인공을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주제의 반복에 싫증을 느끼는 독자들도 존재하지만, 이처럼 일면 새로워진 서술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도 많다. 유사한 주제를 다시 한번 새롭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시도된 이야기 진행방식은 대중의 호평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단계 더 높은 위치로의 문학적 도약

문학동네
<기사단장 죽이기>를 눈여겨 보아야할 이유는 하나 더 존재한다. 출간 전부터 일본에서 강한 반발에 직면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역사의식'의 문제, 정확히는 중일전쟁과 난징 대학살에 대한 서술이 분명하게 담겨있다.

하루키의 대표작은 <상실의 시대>나 <해변의 카프카> 등이지만, 그는 사회 현실을 깊게 반영한 작품을 여러 차례 써내기도 했다. 지하철 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기록한 형식의 <언더그라운드>(1997)와, 그 속편의 형태로서 당시 일본 사회의 주요 이슈이던 옴진리교를 소재로 한 <약속된 장소에서>(1999)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작품들이 <기사단장 죽이기>와 다른 것은, 이들 역시 분명 '사회적'인 문학이지만, 일본 '내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사단장 죽이기>는 일본이 집단적으로 외부 세계에 대해 저질렀던 역사적 범죄를 언급하고 있다. 작품 내의 주요한 소재로 다루고 있다.

가령 기존 하루키 문학에서 '상실과 구원'이 한 개인의 심리상태에 한정된, 굉장히 미시적 범위의 것이었다면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그 범위가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된다. 하루키는 중일전쟁과 세계 2차대전으로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과 삶의 공백기(상실)를 부여받은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주인공을 통해 그 인물이 죽기 직전 이를 마주하고 극복(구원)할 수 있게 돕는다.

일본 극우세력은 이 같은 소재와 스토리라인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며 하루키에 대한 '보이콧', '불매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그는 "상대국이 인정할 만큼 사죄해야 한다"며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새로운 문학적 도약을 세계의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7년 만에 선보인 새로운 장편소설답게 <기사단장 죽이기>는 기존의 하루키와 새로운 하루키 모두를 골고루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작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하루키는 그것에 끊임없이 도전해 나가고 있다.

[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1~2 세트 - 전2권 (리커버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2017


#문학 #서평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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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민기자. 서울대 로스쿨 졸업.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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