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하루키 문학의 핵심이자 반복되는 주제는 누가 뭐라해도(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의 표지에도 적혀 있듯이) '상실과 구원'이다. 과장을 좀 더 보태 말하자면, 그의 문학 세계는 이 주제를 새로운 소재들을 활용해 끊임없이 바꾸어 선보이는 과정들이었다.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갑작스런 부인의 이혼통보에 주인공(나)은 집을 떠나 유명한 화가인 친구 부친(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서 살게 된다. 이후 도모히코가 남긴 미공개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그는 여러 기묘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생각과 인식은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고, 이는 가족의 재결합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상실의 정서 - 사건 - 구원'으로 이어지는 하루키의 전형적인 서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서술의 방식에서 달라진 점이 존재한다. 바로 이전 작품들에 비해 주제를 전달하는 소재가 보다 현학적인 모습을 띈다는 점이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두 여성들과의 사랑과 그 기억이, <1973년의 핀볼>에서는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추억의 핀볼머신이, 그리고 <색채를 잃은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친구들과의 오해와 그로인한 관계의 단절 등이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친숙하거나 독자들이 한번 경험해볼 만한 존재들로, 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이데아'와 '메타포'(한국판 1, 2권의 부제가 각기 '현현하는 이데아'와 '전이하는 메타포'이다)를 소재로 채택하고 있다. 굉장히 일상과 멀어보이는 것들인데, 이를 전달하는 방식조차 특이하다. 이들은 각기 기사단장이나 긴 얼굴이라는 모습으로 실체화 되어 주인공을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주제의 반복에 싫증을 느끼는 독자들도 존재하지만, 이처럼 일면 새로워진 서술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도 많다. 유사한 주제를 다시 한번 새롭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시도된 이야기 진행방식은 대중의 호평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단계 더 높은 위치로의 문학적 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