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입'보다 더 나쁜 '김현종의 거짓말'

"한미FTA 미국 측 세부 요구 없었다" 했지만... 협상력 떨어트리는 관료의 정보 차단

등록 2017.09.06 16:22수정 2017.09.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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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8월 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8월 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상범님은 '국회 FTA연구모임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한미FTA 폐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 이후 정부와 언론은 기사를 쏟아낸다.

"(한미 정상간 1일 통화에서) FTA의 'F'자도 꺼낸 적이 없다(9월 3일)"
"한미 FTA 폐기 시 미국 의회 승인 필요(9월 3일)"
"미국, 한미FTA 공동위서 농산물 관세 즉시 철폐 요구(9월 4일)"
"한미 FTA 종료 시 미국 측 손실 더 커(9월 4일)"
"백운규 장관, '한미 FTA 폐기도 가능성에 포함'(9월 5일)"
"美 USTR 대표 '한미 FTA 관련 문제들 다룰 개정협상 희망'(9월 6일)"

한때 국회 상임위 회의장 문이 해머를 맞고,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뿌려졌던 한미FTA였던 만큼, 개정이나 폐기를 둘러싼 관심 역시 여전하다.

통상관료의 밀행주의, 10년 전과 다를 바 없어

여전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통상관료의 거짓말과 감추기도 10년 전과 마찬가지다. 그 시작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다. 지난 8월 2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장면을 보자.

손금주 위원: "그러면 (8월 22일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회의에서) 미국 쪽에서는 자기들이 앞으로 협의하고 싶어 하는 논점에 대해서 제시를 했습니까?"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통상교섭본부장: "아니요, 일방적으로 주장했던 것은 무역……"


손금주 위원: "그러니까 미국 측에서 일방적으로 주장은 했지만……"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통상교섭본부장: "무역 적자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한국이 아이디어 좀 내 줬으면 좋겠다 이 수준이었습니다."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이 8월 22일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회의에서 논의된 주제를 물은 것은 막연한 질의가 아니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7월 12일 산업부에 한미FTA 공동위원회 개최를 제안하는 외교서한에서 "미국의 수출을 위한 한국 시장 접근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 해결을 다루기 위한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또, 같은 날 보도자료에서도 "미국은 이 특별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무역장벽 제거 및 한미FTA 개정 필요사항 검토를 위한 협상 절차를 시작하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현종 본부장은 한미간 협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실무적인 협의는 지금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USTR은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 제기된 이슈들과 관련해 앞으로 수주간 협의를 계속할 것(Discussions will continue over the coming weeks regarding issues raised during the special session of the Joint Committee.)"이라고 말했다. 특별회기에서 이슈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 하에서 손금주 의원은 '위증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회 회의장에서 김현종 본부장에게 '미국이 제시한 세부 쟁점'에 대해 물었다.

불과 9일 뒤에 들통난 통상교섭본부장의 거짓말

하지만 김현종 본부장은 불과 9일 뒤에 들통날 '거짓말'을 했다. 미국이 제시한 세부 논점은 없고, "무역 적자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한국이 아이디어 좀 내줬으면 좋겠다"고만 했다는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의 발언은 미국 통상전문지 <인사이드 US 트레이드>에도 "한국, 미국이 무역적자 감축에 대한 세부사항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해(Korea says U.S. did not offer details on reducing bilateral trade deficit)"라고 25일 대서특필됐다.

이같은 보도에 '세부 쟁점'을 제시했던 USTR은 발끈했다. 9일 뒤인 지난 3일 <인사이드 US 트레이드>는 "미국은 한미간 특별회기에서 한국의 농산물 관세 즉시 철폐를 요구했다(Sources: U.S., in KORUS special session, asked for immediate elimination of Korean agriculture tariffs)"면서, "미국이 한국산 농산물에 부과하는 관세는 한미 FTA에 합의한 철폐 기간을 5~10년 연장해달라"고 보도했다. 관계자의 입을 빌어 미국 측의 요구사항 중 일부를 공개한 것이다.

트럼프의 '입'보다 통상관료의 거짓말이 문제다

미국의 한미FTA 개정 또는 폐기 주장은 그저 지나가는 발언이 아니다.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무역위원회'를 신설하고(2016.12.21) 위원장에 대 중국 강경파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를 임명했다. 올해 1월 23일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의 계획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무역 조사 행정명령 서명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무역 조사 행정명령 서명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CNN

또한 3월 31일 상무부장관 및 USTR에 앞으로 90일 이내에 "대규모 무역적자 심층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명령했으며, 4월 29일에는 교역 대상국과 세계무역기구(WTO)와 맺은 무역협정에 문제가 없는지 전면 재검토할 것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에 의하면, USTR과 상무부는 180일 이내에 무역협정 실적을 검토하고, 무역 남용(trade abuse)을 확인하며, 무역구제(trade remedy) 조치를 취하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단히 치밀하고 정교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미FTA 발효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행평가보고서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준비 부족 상황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거짓말은 치명적이다. 미국이 이미 제시한 '세부 이슈'가 국회에라도 제대로 보고되어야 관련 업계와 이해관계자가 대응논리를 만들 수 있음에도 그럴 기회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진실은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통상관료의 '국내용' 거짓말은 여전하다. 그 거짓말이 우리나라의 협상력을 갉아먹는다. 트럼프의 '입'보다 통상관료의 거짓말에 더 주목하고 경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FTA #김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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