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은 휴강입니다" 교수님이 왜 이러실까?

한동일 지음 <라틴어 수업>을 읽고

등록 2017.09.14 10:56수정 2017.09.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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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열풍이 2010년부터 대중에게 끊임없이 불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삶의 밑단을 단단히 메고 있다. 최근에는 철학, 역사, 문학, 미술, 문화 등 인문학과 예능을 결합한 프로그램도 나온다.

이것에 따라 보이는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딱딱하고 난해한 인문학을 알기 쉽게 대중에게 접근한 것이 보기 좋다는 의견과 오히려 상업성과 결합한 인문학의 대중화는 인문학의 사멸을 초래할 것이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인문학을 중요시 하면서 왜 대학은 하루가 멀다하고 문학, 철학, 사학, 예술 등 인문학 관련 학과를 폐지하는 것일까.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27~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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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름출판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출신의 한동일 교수가 지난 2010년 2학기부터 2016년 1학기까지 서강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초급, 중급 라틴어' 수업 내용을 정리한 책 <라틴어 수업>이 올해 출간되었다.

책은 라틴어라는 언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한 로마인들의 숨결에 대해 교수 자신의 삶을 반추하여 독자를 자각시켰다. 라틴어를 왜 배우는가가 아니고 자신의 삶에서 라틴어는 어떤 도구가 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A++짜리 답안은 '데 메아 비타 De mea vita', 즉, 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고 서술한 사람의 가치와 태도였다.

학창 시절 우리의 영어 시험문제를 회고(回顧)해 보면, 오늘날 시사점이 많다. 빽빽하게 쓴 단어 깜지, 수 일치를 위해 명사와 동사에 s가 붙고 안 붙고와 같은 지엽적인 문법 문제에 우리는 밤새 끙끙거리지 않았던가.

언어를 왜 공부해야 하고 나아가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는 가치 공부보다는 당장의 대학 입시에 매몰되어 달달 외워야 할 무언가를 하이에나처럼 찾지 않았던가.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prima schola alva est(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는 말은 한동일 교수가 매학기 첫 수업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평소와 달리 잉여 시간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그냥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생각지도 않게 생긴 이 시간 동안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운동장으로 나가 봄 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는 겁니다. 봄날의 아지랑이는 강한 햇살을 받은 지면으로부터 투명한 불꽃처럼 아른아른 피어오르기 때문에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34p)

잉여 시간이란 다른 말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휴식을 해야 할 때, 우리는 휴식할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을 나열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맞이하는 번 아웃 증후군. 정신과 육체가 탈진하고 나서야 인문학 강의, 힐링의 소통 장소를 찾는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시대 인문학의 주소일지도 모른다.

'만족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사티스파체레satisfacere'는 동사가 있다. '충분히 무언가를 하다'라는 의미로, 충분히 무언가를 하면 거기에 만족감이 따라 온다는 뜻이다.' -222p

내 삶을 투영하지 못할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조건 달리며 휴식하지 않는 삶을 위한 인문학은 허상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절감했다.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흐름출판, 2017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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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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