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아빠' 사건으로 본 '똑똑한 기부' 방법

기부 문화 위축 우려... 전문가들 "기부자들 인식전환 필요"

등록 2017.10.12 10:41수정 2017.10.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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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딸 친구 살해·시신 유기 사건의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모 씨가 11일 오전 이씨가 거주했던 중랑구 망우동의 자택 앞에서 열린 현장 검증에서 시신을 담은 가방을 옮겨 차에 싣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중학생 딸 친구 살해·시신 유기 사건의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모 씨가 11일 오전 이씨가 거주했던 중랑구 망우동의 자택 앞에서 열린 현장 검증에서 시신을 담은 가방을 옮겨 차에 싣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금니 아빠' 이아무개(35)씨 사건이 연일 대형 뉴스로 보도되면서 그가 딸(14)의 수술비로 기부받은 후원금을 유용해 풍족한 생활을 해왔음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가뜩이나 기부문화에 인색한 국내 현실에서 각종 기부 및 후원 활동이 얼어붙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이씨는 홈페이지와 카페 등을 개설해 개인 계좌로 기부받은 돈을 자신의 성형수술 및 전신 문신 비용에 쓰는가 하면 외제차 구입 및 개조, 혈통견 분양 등에 소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듯 '호화생활'까진 아니지만 나름대로 풍족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중순엔 128억 원을 모금하고 2억 원만 실제 아동 후원금으로 사용한 후 나머지는 전액 유용한 '새희망씨앗' 사건도 크게 보도돼 공분을 산 바 있다.

문화예술 단체, 공익언론, 인권 및 난민 구호 단체 등은 전체 재정에서 후원에 의지하는 비율이 높지만, 국내에선 소외계층을 돕는 자선·종교단체에 비해 이들 단체에 대한 기부율이 현저히 낮다. 이런 상황에서 기부 관련 비리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기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어금니 아빠' 기사 관련 인터넷 댓글들을 살펴보면 "정말 후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듯" "이래서 불우이웃 못 돕겠다. 나도 못 몰아본 고급차라?" "기부금이 바로 눈먼 돈이었어" "어디에 얼마가 쓰이는지도 모르고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챈다" 등의 부정적 인식이 주를 이룬다.

반면 드물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착해서 돕는 게 아니다. 이런 저런 사람이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기에 돕는 거다. 이런 경우가 있어도 후원은 계속돼야 한다" 등의 의견도 발견할 수 있다.

"'눈물짜내기'식 기부 형태 많아... 이성적·합리적 기부 필요"

이번 '어금니 아빠' 이씨의 경우처럼 개인이 계좌 등을 이용해 모금활동을 벌이는 것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상 위법이다. 그러나 국내 정서에서 지난 11년간 이씨가 유수 언론과 인터뷰하며 기사 말미에 개인 후원 계좌를 게재하거나 외국에 나가 모금활동을 벌여온 것 등의 행위엔 관리 감독이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오득 전 평택대 교수는 이에 대해 "경제질서와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면서 "인가받은 조직을 통해 모금하고 관리토록 해야 한다. 전철 안에서 모금을 하고 사적으로 모금활동을 하는 등의 행위는 시민들을 언짢게 만들고 투명한 운영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자선도 아니고 기부도 아니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올바른 기부를 하기 위해 기부 시 감성에 의지하지 않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부를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한 사회복지사는 "방송국에서 방송에 나올 만한 난치병 환자와 가족을 섭외해 달라고 부탁해서 몇 번 연결해 줬는데 방송이 나가고 나서 환자 가족으로부터 실제 우리 가족의 사연과 다르다, 방송용으로 너무 과장했다는 등의 항의나 볼멘 소리를 좀 들었다"면서 "그 후로 방송국의 요청을 모두 거절해왔다"고 밝혔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히 국내에 '눈물짜내기'식으로 기부받는 형태가 매우 많다"며 "동정심으로 기부하고 나면 그 후에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엔 관심이 적다. 내가 후원한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우선 모금단체가 신뢰할 만한 곳인지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모금단체 재정투명성 중요... 감시 기능 강화해야"


올해 초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 가이드 스타(http://www.guidestar.or.kr)'는 시민의 후원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공익법인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중간 조직이다. 해당 홈피에서 특정 단체의 재정 투명성, 모금 활동내역 등에 관한 평가표를 확인할 수 있다.

사회복지법인은 등록된 지자체에 회계정보를 공시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일반시민은 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이드 스타는 모금 단체가 국세청 홈택스 시스템에 공시한 결산서류를 바탕으로 평가를 내린 후 '등급'을 매기고 있다. 후원을 결정하기 전 가이드 스타를 방문해 해당 단체에 대해 꼼꼼히 알아 볼 수 있다. 

앞서 지난 2014년엔 '한국모금가협회'라는 전문 모금가 협회가 발족했다. 해외에서도 전문적인 모금가 협회가 있어서 전문 모금가를 양성하고 인증을 통해 자격증을 부여한다. 이렇게 양성된 전문 모금가는 단체나 기관에 소속돼 활동을 하고 사적으로 모금 활동을 하지 않는다.

정무성 교수에 따르면 기부 전 단체의 성격도 살필 필요가 있다고 한다. 사회복지법인은 외부감사를 받고 외부이사를 투입하도록 규정돼 있다. 소관부처도 보건복지부다. 최근 문제가 된 새희망씨앗의 경우 '사단법인'으로, 여성가족부 소관이었다. 현행법상 일부 사단법인이 모금활동을 할 수 있지만, 관리 감독이 철저하지 않은 경우도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외부 회계감사 의무대상은 자산 100억 원 이상이다.

개인의 인식 전환뿐 아니라 제도 개선도 필수다. 한국보다 4배 더 기부한다는 미국의 경우 기부금 소득공제가 최대 50%인 반면 한국은 15%에 불과하다. 소득공제를 비롯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또 자선단체는 운영비가 낮을수록 좋다는 인식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낮은 운영비로는 유능한 인재를 고용하거나 필요한 자원에 대해 적절한 투자를 제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엔 편리하고 다양한 기부 방법들이 개발돼 주목받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특정 글을 공유하는 방식, 특정 앱을 다운받아 설치한 후 컨텐츠를 시청하는 것, 앱을 설치하면 일상생활에서 걸은 만큼 기부가 되는 방법(www.bigwalk.co.kr) 등은 금전을 후원하는 방식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기부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격년으로 실시 중인 '기부 문화 확산 방안'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모범적 기부 증대가 33.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기부단체의 자금 운영 투명성 강화(26.5%), 나눔에 대한 인식 개선(20.3%), 소득공제 확대 등 정부지원 강화(10.7%), 기부방법의 편리성 증대(5.5%), 다양한 기부방법 홍보(3.0%)가 뒤를 이었다.

정무성 교수는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반면 기부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키려면 재정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 법·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시민단체들의 감시 기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또 그는 "최근 일련의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기부한 사람도 책임성이 있다"며 "기부자들도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기부 #후원 #어금니 아빠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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