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간 내 땅이라 믿고 일군 땅. 그렇게 애써 만들어놓은 논을 어느 날 갑자기 국가에서 돈 내고 사라는 거 아니에요." 그는 끝내 삼켜온 눈물을 보였다.
남소연
가분배 받은 땅이 제법 논 모양새를 띠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성씨는 몇몇 공무원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 그의 땅이 국가 소유라는 것이었다. 돈을 주고 땅을 되사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실제 서산 개척단원들에게 가분배된 땅들은 1970년대부터 국유화되고 있었다. 그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개척단에서 준다고 해서 받았고, 내 젊음, 내 평생 다 바쳐 아무데도 못쓰던 땅 논으로 개간해 놨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린가 했지요. 하다못해 품삯이라도 줬간디요. 그 뭐예요... 인건비라도, 땅 개간한 인건비라도 줬느냐구요."억장이 무너졌다. 국가를 상대로 한 집단 소송에도 참여했지만 결과는 패소(2002년)였다. 그 후 2005년부터 부과된 변상금과 임대료를 내가며 농사를 짓던 그는 결국 지난 2013년 20년 상환 1억 6천여만 원에 국가로부터 땅을 샀다. 내가 만든 땅을 사는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그가 씁쓸하게 물었다. 농사 지어 버는 수입만으로는 매년 800만원의 상환금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네 자녀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시종일관 침착했던 그의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맺혔다.
"땅이야 그냥 포기해 버렸으면 차라리 간단하지요. 그치만 내 모든 인생을 다 여기에 투여했잖아요. 여기에만 땀 흘렸고. 애들도 그걸 어려서부터 봐서 아니까 다들 날 도와주려고..."끝내 울음이 터졌다.
"고생만 시키고 애들한테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애들에게 도리어 도움만 받으니까 내 스스로가 참 한심해요. 너무... 한심해요. 평생 일해 논 만든 게 당당하지 못할 일도 아닌데..."그 땅은 그에게 돈 이상의 의미였다. 한참이고 말을 잊지 못하던 그는 마늘 작업이 산더미라며 이제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가 채비를 서둘렀다.
"바람이야 물론 내가 개간한 땅 약속대로 받는 거지만 그게 어디 뭐 잘 되겠어요? 됐으려면 벌써 됐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뭐하러 안달했나... 그냥 이게 내 운명인가 싶기도 해요. 이대로 땅 상환금이나 갚으면서 사는 게요. 앞으로 이런 일 겪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런 시대가 어떻게 또 있겠어요."담담한 그의 목소리에서 무거운 체념이 묻어났다. 손주뻘 되는 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붙이던 그가 언제 탔는지도 모를 따뜻한 믹스커피 한잔을 슥 내밀었다. 그는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상했다. 그는 국가에도, 그리고 언론에도, 더 이상 큰 기대를 하진 않는 것 같았다. 그 막연한 초연함, 혹은 상처난 지혜로움이 더 아렸다.
"바라는 건 없어요. 그냥 억울할 뿐이지요. 스무살도 안 돼 이리 왔는데 지금은 머리가 이렇게 하얗게 셌네요."그는 급히 회관을 떠났다.
다시, 그런 사람들추석께 즈음, 그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지금도 마늘 심느라고 바뻐요. 잘 지내지요? 한 11월까지는 계속 이렇게 일해야 해요. 예예. 벼만으로는 부족해서 마늘이라도 심으면 도움이 돼요. 아이구 바쁠 텐데 뭐하러 또 전화를 하고 그래요."인터뷰 때보단 훨씬 밝고 반가운 목소리였지만 그는 나머지 어르신들과는 달리 기사나 보도 일정에 대해선 하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에겐 어쩌면 이까짓 기사보단 마늘 한 알 한 알이 훨씬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국가도, 언론도, 사람도 그를 속이지만 마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가 일군 땅도, 그가 수확한 벼도, 그가 직접 탄 믹스커피도. 그가 사랑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그래도 마늘은 고생한 대로 나오네요."그런 사람'들'이 있다. 비할 데 없이 압도적인 억울함에 말문이 막힌 사람들. 더 이상 큰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흐르는 눈물만 닦는 사람들. "
뭐하러"가 입에 붙어버린 사람들. 세상살이 헛된 기대보단 마늘을 더 믿는 사람들. 그럼에도,
"저야 마늘만 잘 나와도 감사하지요 뭐. 전화해줘서 고맙네요."도대체 뭐가 그리 감사하시다는 건지, 성씨의 음성이 자꾸 귀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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