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형수님"이라 부르던 후배... 공대 여학생의 '일상'

[공모] '수학 좋아한 공대 여학생'에겐 늘 소문이 따라다녔다

등록 2017.11.16 16:16수정 2017.11.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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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교무실로 갔다. 담임선생님이 서류를 보며 말씀하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교무실로 갔다. 담임선생님이 서류를 보며 말씀하셨다.pixabay

30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교무실로 갔다. 담임선생님이 서류를 보며 말씀하셨다.

"너 장래희망에 무기제조업자라고 썼더라."
"네. 핵무기를 없애는 무기를 만들려고요."
"그래도 장래희망에 무기제조업자라고 쓰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나중에 네 시어머니 되실 분이 생활기록부라도 떼 볼 수도 있는데, 무기제조업자라고 쓰여 있으면 시집갈 수 있겠니?"

선생님은 장래희망을 '무기제조업자' 대신에 '사업가'로 바꾸겠다고 하셨다. 그 말이 그 말이라나? 그렇게 말하곤 수업에 들어가 버리셨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장래희망은 과학자였고. 그러던 어느 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의 존재를 알게 된다. 평화를 위해서 과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그러다 핵무기를 무력화시키는, 쉽게 말하면 고장 내는 무기를 만드는 무기제조업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게다.

그런데 고1 담임선생님 때문에 내 장래희망이 지워지고 대체됐다. 미래에 '생기게 될지도 모르는' 시어머니가 혹시 생활기록부를 찾아볼지도 모른다고 했다. 선생님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거다. 생활기록부에 적힌 장래희망 따위에 제자가 좋은 혼처를 놓치게 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겠지.

그런데, 만약 내가 남학생이었더라도 같은 일을 당했을까. 선생님이 나를 불러 예비 장모나 장인 말씀하시며 무기제조업자인 장래희망을 바꾸라고 했을까. 아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 지난 일이다. 물론 나는 무기제조업자가 되지도 않았고, 한때나마 무기제조와 관련 있는 학과로 알고 입학을 희망했던 무기재료학과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장래희망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삭제되고 바뀐 것에 대한 불쾌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내 장래희망을 바꿀 권리가 있는 사람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게다가 미래의 시어머님 때문에 바꾸라니.


"형수님~" 난 '사람'이기 전에 '여자'였다

수학을 좋아했던 나는 2학년이 되어선 고민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대학은 공대에 갔다. 여학생이 적지만, 큰 어려움을 겪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따뜻한 봄날 미팅에 다녀온 남자 동기들이 돈이 없다며 밥을 사달라고 했다. 그날은 내가 미쳤지. 녀석들에게 왜 귀한 식권을 줬을까? 지금도 후회되는 일이다. 밥 먹는 녀석들에게 물었다.


"여자들은 어땠어?"
"예쁘냐고? 야~ 너만 못하더라."

다들 웃었는데,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자리를 떠난 뒤에도 그 말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분명 내가 미팅에 나온 여자애들보다는 예쁘다는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나에 대한 칭찬은 아니었다. 그냥 나는 녀석들이 여자의 미모를 평가하는 기준일 뿐이었다. 나도 너도 다 아는 우리 과 남자아이들의 기준점, 출발점.

그날 이후 나는 내 식권을 함부로 과 동기 남학생에게 주지 않았고 '그 여자 어때?'라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다시는 기분 나쁜 기준점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얼마 뒤 우리는 엠티를 가게 되었다. 과 대표는 엠티 가자며 여학생만 열심히 쫓아다녔다. 남학생은 신경도 안 썼다. 왜냐하면 엠티 참석 여부를 묻는 과 대표의 질문에 남학생들이 "여자 몇 명 가?"란 말로 되물었기 때문이다.

과 대표는 엠티의 성공을 위해 여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려고 애썼다. 덕분에 여학생들 거의 다 엠티에 참석했다.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며 방에서 놀고 있는데 소위 우리 과의 '대표 훈남'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소리를 질렀다.

"옆 방 여대랑 내일 과팅한다."

훈남 옆에는 서 있던 녀석은 얼굴이 벌겋게 흥분이 되어 있었다. 자신이 과팅이 성사되는 역사적 현장을 봤다나 뭐라나? 방에서 자빠져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환호성을 지르며 포옹했다. 그걸 지켜보던 여학생들 황당했다.

"우린 뭐 하라고? 엠티는 멤버십 트레이닝이야! 이럴 거면 엠티 너희끼리 오지. 우린 왜 데려왔는데?"

우리의 목소리는 녀석들의 환호성에 묻히고 말았다. 이런 일 나만 겪은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과거 배우 이광수가 출연한 '공대 아름이' 광고를 보면.

나는 3학년 1학기까지 학교를 다니고, 1년간 휴학했다. 3학년 2학기로 복학했는데 같은 학년에 100명이 넘는 학생 중 여자라곤 나 포함해서 딸랑 셋이었다. 나와 후배 여학생 둘.

나는 공부를 안 한 탓에 학점이 좋지 않았다. 복학 후엔 학점 관리에 신경 썼다. 안 그랬다간 8학기로 졸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수업도 열심히 참여하고 과제도 꼬박꼬박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같은 학년에 동기가 없어 정보가 부족했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 중 마음씨 착한 선배들을 찾아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며 친하게 지냈다. 덕분에 나의 복학은 잘 시작됐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진행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복학한 후배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내 소개를 받은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아~ A형 형수님?"

후배는 반갑다며 얼굴을 활짝 펴며 웃는데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선배가 아니라 형수라고? 그것도 A형 형수? 후배가 말한 선배 A는 내 복학을 도와준 도서관 착한 선배였다. 순간 난 몰랐던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선배 A가 날 좋아한다고 과에 소문이 다 났다는 것.

그리고 내가 선배 A와 사귀는 사이라면, 우리 과 남자들은 날 '형수님' 또는 '제수씨'로 부른다는 것.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과에 소문이 다 나도록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귀띔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과에서 이방인이었다.

 내겐 온갖 소문이 따라다녔다.
내겐 온갖 소문이 따라다녔다. pixabay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가는 졸업장 받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장을 받고 싶으면 선배 A의 애인으로 졸업하거나 아니면 과에선 누구와도 사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선배 A와 사귀다가 내가 차이면 다행이지만 만일 내가 찬다면? 나는 과에서 철저히 매장당할 게 뻔했다. 왜냐하면 그 선배는 착했고 우리 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선배 편인 남자니까.

나는 과에서 형수님이나 제수씨로 불리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과에서 이런 식의 '이류 학생' 대접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대학에 들어올 때도 남자들과 똑같이 내가 딴 성적으로 들어왔고, 등록금도 남학생들과 똑같은 액수를 냈다. 그런데 왜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 식의 대접을 받아야 하나?

내 졸업장은 남자 때문에 포기할 만큼 가볍지 않았다. 나는 선배 A를 이성으로 볼 수 없었다. A와 내가 놓인 지형이 이미 너무 불공평했다. 나는 고마웠던 선배 A와 멀어졌다. 얼마 뒤, 여자 후배 둘이 심각한 표정으로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언니, 언니랑 B랑 과룸에서 뽀뽀했다고 우리 동기들 사이에 소문이 났는데 알고 계세요?"

후배들의 크고 동그란 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후배 B는 남자 후배 중에선 제일 친했던 아이였다. 며칠 전,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서 시험을 한두 시간 앞두고 과룸에 앉아 같이 공부한 적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문제를 B가 알려 줬다. 그때 B가 말했다.

"선배,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한 번 할까?"

당시에 텔레비전에서 유행하던 말이었고, 나는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너 내 손에 죽을래?"

그때 다른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후배가 있었는데, 그 녀석이 소문을 냈나 싶었다. 여자 후배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화가 났다. 버선 속을 까뒤집어서 해명하고 싶었다. 그날 일을 여자 후배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옆에 있던 녀석이 낸 소문이 아닌가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제야 여자 후배들 표정이 밝아졌다.

오해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이렇게 낱낱이 밝혀야만, 해명해야만 학교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내 처지가 서글펐다. 작은 소문 하나에 옹색해지는 내 위치가 답답하고 억울했다. 화가 난 나는 후배 B를 찾아갔다.

"너도 소문 들었어? 그때 옆에서 있던 애가 소문낸 거 아니니?"

내 말을 듣던 B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더니 후배가 말을 꺼냈다.

"선배, 나도 그 소문 들었어. 난 그날 선배랑 뽀뽀하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애들이 뽀뽀했다고 소문낸 거야."

녀석의 웃는 얼굴을 보는데 속에서 천불이 났다. 공대에서 여자 선배 하나 바보 만드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선배인데 어떻게 이렇게 선배를 막대할 수가 있는 건지. 어떻게든 과에 붙어 졸업장 하나 받아보려는 나를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유로, 너희들은 별 악의도 없이 참 사람 쉽게 괴롭히는구나. 그 후로 남자 후배들과 밥을 먹거나, 공부를 하거나, 농담을 나누지 않았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다.

공대 여학생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학과 공부에 대한 열정이 다 사그라졌다. 무엇보다 남자랑 같이 다니면 과에 또 무슨 소문이 날까 두려웠다. 전공 수업은 최소 과목 외에는 더 듣지 않았다. 나머지 학점은 타과 수업으로 채웠다. 다른 과 수업을 듣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이 건물 저 건물 부유하며 나는 졸업을 맞았다.

수학을 좋아하는 이과생과 공대생 여자가 겪는 흔한 일이리라. 다만 그들의 수가 많지 않아 이런 경험이 사회적으로 쌓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동성의 동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더 외롭다. 개인들이 알아서 헤쳐나가며 자기만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어떤 여학생은 남자들과 연애사로 엮이고 싶지 않아서 터프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공대 여학생을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데 지난 일들이 바늘처럼 곤두서 나를 아프게 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가 더 극소수인 공대에서 살아내느라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공대 여학생들을 생각하니 과거 캠퍼스를 홀로 떠돌던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나야 졸업장 하나 받는 걸 목표로 삼아 목표치가 낮았지만, 후배들은 나보다는 훨씬 더 높은 꿈을 가지고 버텼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일들이 사회적 경험으로 쌓이고 새로운 지혜들이 모여 더 넓은 길이 열렸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창비·오마이뉴스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공모 기사입니다. (공모 관련 링크 : https://goo.gl/9xo4zm)
#공대 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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