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떠나는 날 분 억센 바람
"우리 아들, 가기 싫은가 보다..."

[현장]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합동추모식, 안산·서울에서 장례식 엄수

등록 2017.11.18 13:40수정 2017.11.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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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다섯 명은 결국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차라리 천형이라고 믿고 싶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오는 18일부터 사흘간 마지막 세월호 장례식이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는 긴급 기획을 편성해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이들에게 조그마한 용기를 주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후원(좋은 기사 원고료)은 전액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전달됩니다. (후원하기) http://omn.kr/olvf [편집자말]
'시신 없는' 입관식... 오열하는 아빠 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학생의 아버지 남경원씨(맨오른쪽)와 가족들이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며 오열하고 있다.
'시신 없는' 입관식... 오열하는 아빠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학생의 아버지 남경원씨(맨오른쪽)와 가족들이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며 오열하고 있다. 남소연

세월호 떠나는 미수습자 운구행렬 세월호 미수습자 운구행렬이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마친 후 세월호 선체를 지나 서울과 안산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세월호 떠나는 미수습자 운구행렬세월호 미수습자 운구행렬이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마친 후 세월호 선체를 지나 서울과 안산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남소연

"우리 아들… 가기 싫은가 보다."

18일 오전 7시, 세월호가 거치돼 있는 목포신항의 미수습자 가족 컨테이너 숙소. 남현철군의 아빠 남경원씨가 당뇨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부터 불던 바람은 해가 뜨자 더 거세졌고, 컨테이너 숙소의 문은 연신 덜컹거렸다.

세월호 참사 후 1313일. 이날은 미수습자 가족들의 '세월호 마지막 장례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은 '시신 없는 장례식'의 주인공이 돼 버렸다.

이날 오전 8시 30분, 원래는 세월호 선체 앞에서 추모식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든 세찬 바람으로 야외에서 추모식을 치르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목포신항 관계자들도 "이런 바람은 처음이다"며 혀를 내둘렀다. 오전 9시에는 "전남북지역 풍랑경보"를 알리는 행정안전부의 긴급재난문자가 울리기도 했다.

무서울 정도로 부는 바람은 "우리 아들… 가기 싫은가 보다"라는 현철 아빠의 말처럼 미수습자 가족들의 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는 호주머니 깊이 손을 찔러 넣은 채 혼잣말을 반복했다.

"여보, 더 찾아달라는 거예요?"

시신 없는 관, 가족들의 오열


'시신 없는' 입관식... 아빠에게 부치는 편지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딸이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며 아버지에게 부치는 편지를 관에 넣고 있다.
'시신 없는' 입관식... 아빠에게 부치는 편지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딸이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며 아버지에게 부치는 편지를 관에 넣고 있다. 남소연

양승진 선생님, 딸이 보내는 편지 받아주실거죠?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딸이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며 아버지에게 쓴 편지. 봉투 겉면에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최고의 아버지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양승진 선생님, 딸이 보내는 편지 받아주실거죠?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딸이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며 아버지에게 쓴 편지. 봉투 겉면에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최고의 아버지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남소연

이날 오전 8시 30분, 세월호 선체 앞에 마련된 안치실에서 입관식이 엄수됐다. 안치실에는 다섯 개의 관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임시 텐트가 바람에 흩날리며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먼저 양승진 교사. 관이 열렸다. 시신 대신 담겨 있는 유품 위로 국화, 장미, 안개꽃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딸 지혜씨와 아들 지웅씨는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꽃 위에 살포시 얹었다. 딸의 편지봉투에 적힌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최고의 아버지입니다"라고 쓴 문구. 결국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여보, 아이들과 함께 편히 계세요…"

아들 찾지 못한 아빠는 결국... 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학생의 아버지 남경원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마친뒤 오열하고 있다.
아들 찾지 못한 아빠는 결국...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학생의 아버지 남경원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마친뒤 오열하고 있다. 남소연

그리고 남현철군. 아빠와 엄마는 쉽사리 관에 다가서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아냈다. 겨우 다가선 아이의 관. 부모는 흐르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3년 7개월 인고의 세월을 보낸 아빠의 입에서 터진 외침.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가 끝까지 못 지켜줘서…"

'시신 없는' 장례식... 무너진 엄마아빠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부모인 박정순, 김선화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 추모식에서 아들의 영정 앞에 헌화한 뒤 오열하며 쓰러지고 있다.
'시신 없는' 장례식... 무너진 엄마아빠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부모인 박정순, 김선화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 추모식에서 아들의 영정 앞에 헌화한 뒤 오열하며 쓰러지고 있다. 남소연

아들 영정 앞세운 엄마아빠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부모인 박정순, 김선화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한 뒤 아들 영정을 앞세우고 오열하고 있다.
아들 영정 앞세운 엄마아빠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부모인 박정순, 김선화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한 뒤 아들 영정을 앞세우고 오열하고 있다. 남소연

아들 못찾고 떠나는 부모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부모인 박정순, 김선화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한 뒤 아들 영정을 앞세우고 오열하고 있다.
아들 못찾고 떠나는 부모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부모인 박정순, 김선화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한 뒤 아들 영정을 앞세우고 오열하고 있다. 남소연

이어 박영인군. 아빠는 "사랑한다"는 말을,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토해냈다.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 엄마를 영인군의 형이 부축했다. 우는 엄마의 등을 토닥이는 첫째 아들. 그의 꽉 깨문 어금니가 붉은 눈시울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막았다.

마지막으로 권재근씨와 권혁규군. 권씨의 남매들과 어린 딸이 두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딸은 권씨 가족 중 유일하게 세월호에서 살아남았다. 참사 당시 6살이었던 딸은 이제 9살이 됐다. 딸은 고모의 손을 꼭 잡은 채, 바람을 막기 위해 입은 점퍼의 모자에 얼굴을 푹 묻었다.

권씨 누나들의 오열이 계속됐다. 참사 후 내내 진도, 목포를 지키며 좀처럼 감정표현을 하지 않던 형 권오복씨도 손에 든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

"오빠! 왜 이렇게 빨리 갔어!"
"혁규야! 이 어린 것이... 좋은 곳으로 가서 잘 살아라."

상복 입기엔 너무 어린 아홉살 세월호 미수습자 권재근씨의 딸(9세))이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 추모식에 상복을 입고 참석해 남은 가족들의 품에 안겨 있다.
상복 입기엔 너무 어린 아홉살세월호 미수습자 권재근씨의 딸(9세))이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 추모식에 상복을 입고 참석해 남은 가족들의 품에 안겨 있다. 남소연

'시신 없는' 합동 추모식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부모 박정순, 김선화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 추모식에서 아들의 영정 앞에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시신 없는' 합동 추모식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부모 박정순, 김선화씨가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 추모식에서 아들의 영정 앞에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남소연

김영춘 장관 "희생자, 국민 가슴 속에서 떠난 것 아냐"

가족들은 리무진에 '시신 없는 관'을 싣고 세월호를 한 바퀴 선회한 뒤, 추모식장(목포신항만 사옥 옆 2층 강당)으로 이동했다.

추모식장에 도착한 가족들은 미수습자 영정 앞에서 또다시 오열했다. 양승진 교사의 노모는 국화 한 송이를 아들의 영정 앞에 놓은 뒤 자리를 뜨지 못한 채 흐느꼈다. 남현철·박영인군의 부모는 영정 앞에 엎드린 채 소리 내어 울었다. 연신 엄마의 등을 쓸어내리던 영인군의 형도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권재근씨의 누나와 여동생도 "재근아! 혁규야! 왜 이렇게 못 나오고 있냐!", "우리 조카, 이 어린 조카… 니들이 뭔 죄가 있어서 못 나오냐고!"라며 목놓아 울었다. 그제야 상황이 인식됐는지, 권씨의 어린 딸도 고모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 눈물을 흘렸다.

추모식에는 먼저 자식을 떠나보낸 4.16가족협의회의 단원고 세월호 유족 20여 명이 참석하기도 했다. 신호성군의 엄마 정부자씨와 김유민양의 아빠 김영오씨가 유족을 대표해 미수습자 5명에게 꽃을 올렸다. 이어 천주교, 원불교, 불교, 기독교 순으로 4대 종단의 의식이 진행됐다.

정치권 인사들도 미수습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식장을 찾았다. 김영춘·이주영 해양수산부 현·전직 장관과 김금옥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박지원·천정배 국민의당 의원, 심상정·윤소하 정의당 의원, 제종길 안산시장, 박홍률 목포시장, 이동진 진도군수 등이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했다.

목포신항 떠나는 세월호 미수습자 운구행렬 세월호 미수습자 운구행렬이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 추모식을 마치고 서울과 안산으로 향하자,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목례로 배웅하고 있다.
목포신항 떠나는 세월호 미수습자 운구행렬세월호 미수습자 운구행렬이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 추모식을 마치고 서울과 안산으로 향하자,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목례로 배웅하고 있다. 남소연

김영춘 장관은 추모식을 마친 뒤 <오마이뉴스>와 만나 "오늘 합동 추모식을 했습니다만 (미수습자와 가족들이) 물리적으로 이 공간을 떠나는 것이지, 국민들 가슴 속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뒷마무리와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떠난 분들을 영결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24일 국회 표결을 앞두고 있는 2기 세월호 특조위 법안(사회적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관련해 "특별법이 통과돼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기틀을 만드는 데 사회가 다 같이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라며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라고 촉구했다.

추모식을 마친 가족들은 안산 제일장례식장(양승진·남현철·박영인)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권재근·권혁규)으로 이동해 장례를 치른다. 발인은 20일 오전 6시 엄수된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을 위한 긴급캠페인(http://omn.kr/olvf)을 벌이고 있다.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식 #장례식 #목포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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