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아유타야의 부서진 폐허에서 만난
뿌리와 부처상
허영진
그래 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크게는 인종에서 작게는 나라, 민족이 그 뿌리가 될 수 있을 지도 몰라. 사실, 민족이라는 표현은 근대에 생겼다고 해. 하지만, 개념 이전에도 자신과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것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서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를 거듭하며 만들어진 자신과 닮은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을 테지.
언젠가 아빠가 너희와 함께 할아버지 고향의 읍내 시장에 데려갔던 기억이 나니? 사실, 아빠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아버지 고향의 시장에 가 본적은 몇 번 없었거든. 근데, 그때, 그날 따라 사람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내 아버지를 닮아 있다고 느꼈는지 모르겠어. 아직 할아버지를 보낸 슬픔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다른 지역의 사람들 보다는 내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고, 사람들 표현에 따르면 나는 아버지를 닮았으니 나도 그들과 같은 뿌리에서 온 자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지리적 문화적으로 함께 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외국에 여행을 가서 지내보면 우리와 물과 음식이 달라서 며칠 머물러 보면 머리결과 피부가 달라지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 반대로 우리 나라에 오래 머무른 서양 백인들을 보면 원래 그들의 피부나 머리 느낌보다는 우리 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곤 하지.
서로에게 뿌리라는 것은 더 넓은 범위 일수도 아니면 더 작은 범위일 수도 있겠지만, 아빠는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처럼, 지리적 문화적 활동의 범위 내에서 만들어온 사람의 가치관과 육체의 성장이 한 인간도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며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쿤타 킨테는 자신의 뿌리인 감비아와 전사로서의 신분, 그리고 가족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미국에서 낳은 자신의 딸에게도 그 정신을 물려 주려고 애를 쓴단다. 그리고 그 딸인, 키지도 아버지의 정신을 아들 조지에게 주려고 하지. 하지만, 노예로서의 그들의 삶이 너무 많은 것을 제약했고, 현실에 부딪치면서 많은 것이 변하게 되지. 하지만, 쿤타 킨테가 물려 주려고 했던 그 마음은 표현의 방법은 비록 달라졌을지라도 계속 자손에게 물려져 가며 그들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이어져 있는지를 이야기 한단다. 그렇게 본다면 자신의 가족이 가장 큰 뿌리가 되겠지.
글로벌에 기반을 둔 외국계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아빠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정체성과 뿌리를 지닌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단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2명이 있어. 한 명은 호주에 이민한 한국인의 아이로서 소위 말하는 1.5세의 정서를 가지고 성장한 분인데, 매우 멋진 여성으로 성장해서 젊은 나이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분이었지.
처음에 아빠는 그분이 한국인의 혈통을 지닌 줄 몰랐어. 이름에서 연상할 수 없었고, 외모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느낌은 아니었거든. 하지만, 그녀와 좀 더 알게 되고 어색해진 그녀의 한국말을 오랜만에 들으며 같이 맥주를 마시게 된 날 우리는 좀 더 다른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 어린 시절, 낯선 곳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성장하게 된 과정들을 조금씩 들을 수 있었고, 아빠는 감탄을 하게 되었단다. 그녀가 내게 한국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냐? 고 물었어. 아빠는 과연 무어라고 대답을 했을까? 조금 후에 말해 줄게.
또 한 명은 유대인의 피가 섞인 유럽 사내였지. 어린 친구였는데, 패기와 열정으로 거기에 더해 자기는 인식하지 못하는 서구 우월주의를 한 구석에 노골적으로 장착한 채, 프로젝트에서 열변을 토해내곤 했었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분명 배울 점도 많았고, 아빠가 그의 나이에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했단다. 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물론, 하나의 문화권에서 암묵적인 룰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도 해. 틀을 고수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그 틀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벗어나는 것에 대한 욕망도 있지만, 변화에 대한 불편함도 느끼는 게 사실이거든.
그 친구에게 한국인 여자 친구가 생겼어. 그가 행복해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나는 구나. 전혀 한국적인 사고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유학을 해서 서구식 사고를 지녀서 무척 마음에 든다는 말을 하더구나. 갑자기 잘 모르는 그 친구의 여자친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