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타 킨테의 '뿌리'는 이제 튼튼해졌을까

[언젠가 너에게] 드라마 '뿌리'를 보다가

등록 2017.11.21 05:17수정 2017.11.21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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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뿌리> 표지.
소설 <뿌리> 표지. 열린책들

얼마 전에 아빠는 <뿌리>라는 오래된 소설을 극으로 만든 미국 드라마를 보았단다. 아빠가 딱 너희만 할 때도 이미 한 번 드라마로 만들어 졌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참 열심히 보시던 기억이 나. 그 때 아빠도 따라서 보려고 노력했었는데, 그 때만 해도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라는 방송이 9시면 나오던 때라서 보지 못하고 잠이 들곤 했었지.


하지만, 당시 드라마는 꽤 유명세를 타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보면 무조건 '쿤타 킨테'라는 <뿌리>의 주인공 이름으로 부르던 기억이 나는 구나. 어른이 되어서 본 <뿌리>는 슬프고도 인상 깊은 미국 역사의 다른 면이었어. 평화롭게 자신들의 땅에서 살던 오모로 킨테의 아들 쿤타 킨테가 강제로 미국에 끌려와서 노예가 되면서 겪는 일이야.

그는 전사로서의 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끊임없이 탈출하려 했지. 사랑에 빠져서 딸을 낳게 되지만, 그녀에게도 자신의 전사 정신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주려고 애를 쓴단다. 비극적이게도 그 딸은 글을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팔려 가게 되고, 백인 주인의 혼혈아이를 낳게 된단다.

그렇게 대를 거듭하면서 아프리칸 미국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보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들이 많단다. 아빠처럼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후손들이 모진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들에 아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뿌리를 쓴 소설가는 자신들의 선조가 전사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흑인이란 노예로 태어난 자가 아니라, 당당한 역사와 전통을 지난 자이고, 그들이 백인들의 이기심과 폭력에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거지.

뿌리 아유타야의 부서진 폐허에서 만난 
뿌리와 부처상
뿌리아유타야의 부서진 폐허에서 만난 뿌리와 부처상 허영진

그래 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크게는 인종에서 작게는 나라, 민족이 그 뿌리가 될 수 있을 지도 몰라. 사실, 민족이라는 표현은 근대에 생겼다고 해. 하지만, 개념 이전에도 자신과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것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서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를 거듭하며 만들어진 자신과 닮은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을 테지.

언젠가 아빠가 너희와 함께 할아버지 고향의 읍내 시장에 데려갔던 기억이 나니? 사실, 아빠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아버지 고향의 시장에 가 본적은 몇 번 없었거든. 근데, 그때, 그날 따라 사람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내 아버지를 닮아 있다고 느꼈는지 모르겠어. 아직 할아버지를 보낸 슬픔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다른 지역의 사람들 보다는 내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고, 사람들 표현에 따르면 나는 아버지를 닮았으니 나도 그들과 같은 뿌리에서 온 자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지리적 문화적으로 함께 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외국에 여행을 가서 지내보면 우리와 물과 음식이 달라서 며칠 머물러 보면 머리결과 피부가 달라지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 반대로 우리 나라에 오래 머무른 서양 백인들을 보면 원래 그들의 피부나 머리 느낌보다는 우리 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곤 하지.

서로에게 뿌리라는 것은 더 넓은 범위 일수도 아니면 더 작은 범위일 수도 있겠지만, 아빠는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처럼, 지리적 문화적 활동의 범위 내에서 만들어온 사람의 가치관과 육체의 성장이 한 인간도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며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쿤타 킨테는 자신의 뿌리인 감비아와 전사로서의 신분, 그리고 가족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미국에서 낳은 자신의 딸에게도 그 정신을 물려 주려고 애를 쓴단다. 그리고 그 딸인, 키지도 아버지의 정신을 아들 조지에게 주려고 하지. 하지만, 노예로서의 그들의 삶이 너무 많은 것을 제약했고, 현실에 부딪치면서 많은 것이 변하게 되지. 하지만, 쿤타 킨테가 물려 주려고 했던 그 마음은 표현의 방법은 비록 달라졌을지라도 계속 자손에게 물려져 가며 그들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이어져 있는지를 이야기 한단다. 그렇게 본다면 자신의 가족이 가장 큰 뿌리가 되겠지.

글로벌에 기반을 둔 외국계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아빠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정체성과 뿌리를 지닌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단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2명이 있어. 한 명은 호주에 이민한 한국인의 아이로서 소위 말하는 1.5세의 정서를 가지고 성장한 분인데, 매우 멋진 여성으로 성장해서 젊은 나이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분이었지.

처음에 아빠는 그분이 한국인의 혈통을 지닌 줄 몰랐어. 이름에서 연상할 수 없었고, 외모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느낌은 아니었거든. 하지만, 그녀와 좀 더 알게 되고 어색해진 그녀의 한국말을 오랜만에 들으며 같이 맥주를 마시게 된 날 우리는 좀 더 다른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 어린 시절, 낯선 곳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성장하게 된 과정들을 조금씩 들을 수 있었고, 아빠는 감탄을 하게 되었단다. 그녀가 내게 한국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냐? 고 물었어. 아빠는 과연 무어라고 대답을 했을까? 조금 후에 말해 줄게.

또 한 명은 유대인의 피가 섞인 유럽 사내였지. 어린 친구였는데, 패기와 열정으로 거기에 더해 자기는 인식하지 못하는 서구 우월주의를 한 구석에 노골적으로 장착한 채, 프로젝트에서 열변을 토해내곤 했었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분명 배울 점도 많았고, 아빠가 그의 나이에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했단다. 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물론, 하나의 문화권에서 암묵적인 룰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도 해. 틀을 고수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그 틀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벗어나는 것에 대한 욕망도 있지만, 변화에 대한 불편함도 느끼는 게 사실이거든.

그 친구에게 한국인 여자 친구가 생겼어. 그가 행복해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나는 구나. 전혀 한국적인 사고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유학을 해서 서구식 사고를 지녀서 무척 마음에 든다는 말을 하더구나. 갑자기 잘 모르는 그 친구의 여자친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어. 

횡성 가는 길  풍수원성당
횡성 가는 길 풍수원성당허영진

적자생존이라고도 하고, 진화라고도 하지만 분명한 건 사람도 식물처럼 자신이 자라는 환경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는 것 같아. 어린 시절을 보낸 거리, 부모의 사고 방식, 먹었던 음식 모든 것이 천천히 자신이라는 뿌리를 내리게 되는 거지. 쿤타 킨테처럼 타의로 거대한 변화를 겪었을 때는 자신의 뿌리가 확연히 다르다는 게 구분이 되겠지만, 대부분 삶이 그렇게 까지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그제서야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되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앞에 그 여자분이 던진 한국에서 사는 아빠에 삶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떻게 했을까?

"삶에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부모와 그들이 사는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건 나의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내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그 땅에서 태어나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과정에서 소중한 친구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내 아이도 가지게 되었다. 때로는 힘든 일도 있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적인 문제도 존재하지만, 선택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으려 하고, 내가 행복하게 느끼는 것들을 소중히 하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었지. 그건 진심이기도 해. 그저 마시는 공기를 바꾼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바뀌지는 않거든. 뿌리라는 건 생각보다 더 깊어서 막상 이를 부정하고 환경을 바꾸면 금세 자신의 정체성과 닮은 사람들과 그 환경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해. (물론 사람에 따라 아닌 사람도 있긴 하겠지)

한 아프리칸의 뿌리가 새로운 토양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길어졌어. 수많은 쿤타 킨테의 뿌리는 이제 미국 땅에서 좀 더 튼튼해졌을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수많은 아시안들의 뿌리들은 얼마나 단단해졌을까? 그저 앉은 자리에 내린 뿌리를 지켜보기만 하는 건 맞는 걸까?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드라마였어. 언젠가 너와 함께 다시 보고 싶구나.
덧붙이는 글 http://electricjin.blog.me/ 개인 블로그에도 등재 예정입니다.
#뿌리 #쿤타킨테 #정체성 #뿌리를내린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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