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감염인인 내가 보건복지부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

혐오조장 언론 제재하고 에이즈 인식개선사업 등 확대해야

등록 2017.11.29 14:39수정 2017.11.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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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또한 2017년은 세계 에이즈의 날 제정 30주년 이다. HIV감염인 당사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HIV/AIDS활동가네트워크에서는 에이즈의 날 맞이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HIV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HIV에 감염된 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특정 질병이나 증상이 보이는 에이즈로 이어질 수 있다-편집자 주). 회의 중에 에이즈의 날을 맞아 복지부와 면담을 한번 제안해보자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복지부장관을 만난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HIV가 한국에서 처음 발견되고 32년이 지났다. 예나 지금이나 인식이 좋지 못한 질병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HIV/AIDS자체가 너무나도 다양하고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이슈가 없는데 '어떤 이슈를 말할 필요가 있겠다'보다 '어떤 이슈가 비교적 덜 급한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씁쓸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한계를 고려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를 이야기 해보고 싶다.

첫째, HIV/AIDS혐오를 조장하는 언론을 제재해야 한다

2017년에는 유독 많이 HIV/AIDS 관련한 혐오기사가 쏟아졌다. 용인 에이즈 여중생 성매매 이슈부터, 부산 에이즈여성 성매매 이슈까지 HIV감염됐을 사람에 대한 추적을 운운하거나 HIV감염사실 확인 이후 잠적한 사람을 들먹이는 것은 막연한 HIV/AIDS의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정확하거나 최신의 HIV/AIDS정보 보다는 공포감을 심어주는 기사, 동성애, 데이팅 어플을 반대하는 등 무언가에 반대를 하기 위한 HIV/AIDS의 혐오인식을 이용한 기사, 소나무재선충과 꿀벌의 낭충봉아부패병의 경각심을 알리기 위한 이유로 '에이즈'를 악용하는 기사. 그렇다면 '에이즈'라는 단어에서 쉽게 떠오를 수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어떤 문제를 불러올까?

정말 간단하게 보자면 기존에 HIV에 감염된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병에 대해 의도적으로 안 좋게 묘사하는 글을 보면서 어느 누가 좋아할까? HIV감염인으로서 악의적으로 쓰여지는 기사에 질병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댓글들을 보자면 정말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HIV감염사실을 막 알아서 HIV와 관련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든가, 막연한 두려움에 떨면서 HIV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런 기사를 접한다면 스스로 그런 악의적 정보에 대해 반박할 정보나 논리가 없기 때문에 더 상처받게 된다. HIV에 감염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온 세상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데 어찌 쉽게 자신의 HIV감염 사실을 밝히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HIV/AIDS관련 기사제목으로 만든 워드클라우드 [환자는 왜 범죄자가 되었는가? - 조현병과 에이즈기사로 본 언론보도의 인권침해] 자료집, 건강세상네트워크 주최 토론회, 2017.11.22, 국가인권위원회.
HIV/AIDS관련 기사제목으로 만든 워드클라우드[환자는 왜 범죄자가 되었는가? - 조현병과 에이즈기사로 본 언론보도의 인권침해] 자료집, 건강세상네트워크 주최 토론회, 2017.11.22, 국가인권위원회.타리(나영정)

이는 곧 HIV검사에 대한 접근성과 초기 HIV 감염인의 치료 접근성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HIV치료는 HIV감염인의 체내 바이러스의 수를 줄이고 이는 곧 HIV전염력을 낮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HIV감염인의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가 국가의 HIV예방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자신의 HIV감염사실을 모르는 HIV감염인이 자신의 HIV감염사실을 확인하고 적절한 치료를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HIV감염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부담스러울뿐더러 HIV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염사실을 병원에 알려야 하는데 이마저 부담스럽다면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한 장벽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HIV감염인이 치료에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은 곧 사회적으로 HIV예방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전파력과 파급력이 크고 시청자가 쉽게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 보다 신중하게 기사를 작성할 수 있도록 법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의 언론은 주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쉽게 혐오와 편견, 차별을 조장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둘째. 에이즈 인식개선사업을 대대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HIV/AIDS예방교육에 감염인 인권 관련 내용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강당에 몰아넣고 진행하는 등 질 낮은 교육을 탈피하고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교육방침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을 직접적으로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인 만큼 정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부분임에도 대부분의 교육이 민간단체에 맡겨진다.

고착화된 HIV/AIDS인식을 해소 할 수 있는 각종 캠페인에 더 신경 쓰고 확대해야 한다. 길거리캠페인과 좀 더 진취적인 공익광고, HIV/AIDS관련 행사를 정부가 마련해서 진행해야 한다.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날에 맞춰 정부의 예산을 받아 에이즈퇴치연맹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매년 진행을 하는지, 진행을 한다면 어디에서 하는지, 시민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때문에 시민들이 12월 1일이 에이즈의 날인지도 모른다. 세계에이즈의날은 관계자들이 즐거우라고 지정한 날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HIV/AIDS에 대한 예방을 논하고 HIV감염인과 AIDS환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날이 돼야한다. 해외에 가까운 일본에만 가도 세계에이즈의날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에이즈위크(AIDS Week)를 개최한다.

올해는 나카노 구청에 대형 레드리본 현수막을 걸었다. 세계에이즈의날에 미국의 백악관에서는 매년 거대한 레드리본을 달고 시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한국 정부는 그 어떤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에이즈의날 마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어느 누가 HIV/AIDS에 관심을 갖고 문제인식을 가질까?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감염인 의료차별 진료거부 문제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의료차별과 진료거부문제는 HIV감염인과 AIDS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당장 건강하게 살 수 있어야 함에도, 전파력이 약한 질병임에도 HIV/AIDS는 늘 거부의 대상이다.

노인요양병원협회의 입원반대로 인해 AIDS환자들이 갈 수 있는 장기요양병원은 거의 없다.  이 병원 저 병원 전전긍긍하며 몇 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옮겨 다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의료법을 개정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정말 그 어떤 AIDS환자도 제대로 된 요양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없다.

괜찮지 않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데 정부는 그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는다. 얼마 전에 발생한 국립재활원에서 HIV감염인이 진료거부를 당한 문제만 봐도 그렇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마저 HIV감염인을 차별하는데 그 어떤 민간병원이 HIV감염인을 제대로 치료하고 돌봐 주려고 할까? 진료거부에 있어서 더 강경한 입장과 정책을 펼쳐야 한다.

국립재활원 HIV감염인 재활거부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기자회견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국립재활원 HIV감염인 재활거부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기자회견
국립재활원 HIV감염인 재활거부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기자회견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국립재활원 HIV감염인 재활거부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기자회견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마지막으로 정부에서 진행하는 HIV/AIDS관련 정책에 HIV감염인의 목소리를 반드시 포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HIV감염인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HIV/AIDS정책은 속빈 강정이다. HIV/AIDS감염인의 요구와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HIV감염인들이 정부의 탁상공론에 방치되고 고통 받으면서 살아야하는 것인가?

언제까지 HIV/AIDS이슈는 음지에만 숨어있어야 하고 세상에 온갖 혐오로만 이용돼야 하는 것인가? 현재 한국의 HIV감염인들은 한국정부의 실패한 HIV/AIDS예방정책의 산물들이다. 매년 신규HIV감염인의 수는 늘지만 HIV감염인에 대한 대책부터 HIV예방대책까지 성과 없는 정책들만 펼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조건, 그것이야말로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제발 실질적인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
#에이즈 #AIDS #HIV #박능후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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