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유출이요? 태안 하면 '서핑 천국'이죠

[르포] 태안기름유출사고 10년... 자원봉사자의 손길로 살아난 태안 바다

등록 2017.12.07 11:03수정 2017.12.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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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기름범벅이던 만리포 해변이  새해얀 백사장으로 변했다.
검은 기름범벅이던 만리포 해변이 새해얀 백사장으로 변했다.신문웅

충남 태안반도를 검은 기름으로 뒤덮은 태안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오늘(7일)로 10년을 맞이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정말로 지난 10년 동안 태안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는 태안의 역사를 말할 때 태안기름유출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야 한다고 한다.

지난 2007년 12월 7일 폭풍주의보 발효에도 무리하게 항해하던 삼성중공업 크레인선단이 묘박지를 벗어나 정박하고 있던 허베이스피리트호를 들이받으면서 천혜의 자연 환경과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태안반도는 일순간에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지금도 10년 전 오늘을 생각하면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기억에 몸서리를 치는 군민들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안군민들은 10년 만에 예전의 아름다운 태안반도가 도로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정부의 지원도 가해기업의 지원도 아닌 오로지 태안반도를 살리고 태안군민을 돕겠다는 심정으로 전국에서 아니 해외에서까지 정성을 보내주고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으로 기름범벅이 된 돌을 닦아준 123만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다.

 깨끗해진 만리포 해수욕장
깨끗해진 만리포 해수욕장신문웅

10년 전 오늘 검은 기름의 직격탄을 맞아 태안기름유출사고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던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을 지난 3일 찾았다.

서핑 천국으로 변한 만리포 해변

이날 만리포해수욕장은 일요일을 맞아 겨울 바다의 낭만을 느끼기 위해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모래사장을 거닐고 바닷물을 따라 달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고운 모래사장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있는 중년 여성도 보였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단체 관광객들은 만리포 사랑비와 정서진 비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북서풍의 겨울 바람이 제법 불면서 높은 파도와 함께 서핑을 하는 젊은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검은 기름으로 가득했던 10년 전의 만리포 해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만리포 해변은 3년 전부터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더니 급기야 서핑 전문 카페가 생기고 주말이면 수백명의 동호인들이 몰리고 있다.

 서핑 천국으로 변한 만리포 해변
서핑 천국으로 변한 만리포 해변신문웅

이처럼 서핑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몰리자 태안군은 이곳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버금가는 새로운 서핑 천국을 만드는 '만리포니아' 만들기를 천명하고 나섰다. 겨울 바다의 정취를 느끼는 관광객들의 모습과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웃음 속에 이곳이 과연 '그' 만리포가 맞는가 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겨울 손님 맞을 준비하는 개목항

만리포 해변을 지나 천리포수목원을 거쳐 삼성중공업 크레인 선단과 유조선이 충돌한 해상이 보이는 개목항에 이르렀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기름은 제거되었지만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졌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나자 문을 닫았던 횟집들이 속속 다시 문을 열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밑반찬으로 줄 생선이 널려있는 개목항
손님들에게 밑반찬으로 줄 생선이 널려있는 개목항신문웅

한 횟집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 김장을 하고 있었다. 꽤 많은 양의 김장이었다. 왜 이리 김장을 많이 하느냐고 묻자 횟집 여사장은 "올 겨울과 봄에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아서요"라고 답했다.

또 항구에 드리워진 줄에는 손님들에게 밑반찬으로 내놓을 우럭, 물메기, 간자미 등 생선들이 겨울 바람에 비등비등 말라가고 있었다.

신노루 해변에서 굴을 까는 가재분씨를 만나다

개목항을 지나 충돌 사고 이후 가장 먼저 기름이 밀어닥친 신노루 해변에 도착했다. 정부가 기름피해지역을 위해 설치한 해상관광낚시공원과 오랜 노력 끝에 다시 굴 양식을 위해 세운 굴밭이 멀리 보였다.

 다시 양식 굴밭이 조성되고 있는 신노루해변
다시 양식 굴밭이 조성되고 있는 신노루해변신문웅

10년 전 검은 기름 범벅이던 갯바위 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얗게 자연산 굴들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었다. 태안해변길 태배길 구간을 걷는 관광객들은 굴을 까서 먹기도 했다. 수산물을 채취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걷던 기자는 그곳에서 태안기름유출사고 발생 후 무허가 굴 양식장은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소식에 음독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이영권 선생의 부인인 가재분씨를 만났다.

 연신 굴을 까고 있는 가재분씨
연신 굴을 까고 있는 가재분씨신문웅

 가재분씨에게 생명과도 같은 조세
가재분씨에게 생명과도 같은 조세신문웅

능숙한 솜씨로 조새를 이용해 바위 틈에서 굴을 까고 있던 가재분씨는 간조에 날씨도 좋아 모처럼 굴을 까러 왔다고 했다.

"참 사람들이 무섭죠. 여기 보이는 모든 돌이 검은 돌이었는데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씩 깨끗하게 만들어서 제가 지금 굴을 따고 있으니... 10년 전 태안기름사고만 아니었으면 2남 1녀 잘 키우고 손자 손녀 재롱도 보고 우리 굴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눈시울이 금세 붉어진다. 물때에 맞추어 하루 5kg 정도 굴을 작업하면 5만원 일당을 번다는 가씨는 그나마 날씨가 추워지면 이마저 나오지도 못한다고 한다.

"연합회에서 애아빠 관련해서 보상해 준다고 오라가라 하더니 이제는 아예 연락도 없네요. 다 필요 없으니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죠?"

가재분씨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굴까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가재분씨
굴까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가재분씨신문웅

"분명히 정부도 가해기업도 아닌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지금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가재분씨에게 기자는 그저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말 밖에 전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 모항항에는 삼성의 지역발전기금의 올바른 사용을 촉구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정말 도와주고 보살펴 주어야 할 피해민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태안기름유출사고 #만리포해수욕장 #신노루해변 #개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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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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