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노모가 건네는 용돈 6천원을 받았습니다

"니 주는 재미로 장사하는 건데"... 어머니가 이렇게 계속 건강하셨으면

등록 2017.12.18 14:46수정 2017.12.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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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알람은 오전 5시 30분에 맞춰져 있다. 장사를 하시는 어머니의 콩나물시루를 시장까지 날라다 주기 위해서다. 기운이 많이 떨어지셨어도 장사를 놓지 못 하는 어머님을 위해서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효도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이면 이불 속에서 나오기 싫어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난다. 최근까지는 오토바이에다 콩나물시루를 싣고 시장까지 날라다 주었다. 자동차가 시장 안으로 들어가기 불편해서다. 그리고 어머니는 빈 수레를 의지하여 시장까지 걸어가시고, 또 다 판 빈 콩나물시루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져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요즘은 오토바이 대신 자동차에 콩나물시루와 수레를 싣고 어머니를 차에 태워 시장까지 간다. 그리고는 시장 입구에서 어머니의 좌판까지 수레에다 콩나물시루를 실어 나른다. 오늘 아침도 다른 날처럼 어머니가 나에게 6천 원을 주신다.

"니 돈 없제, 이거로 담배도 사고 커피도 사마셔라."
"아이다, 엄마 돈 있다. 안 받아도 된다."
"내가 돈 벌어 뭐 하겠노? 니 주는 재미로 장사하는 건데."
"엄마,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추위에 떨면서 어렵게 장사를 해 번 돈을 아들에게 쥐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은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마음이다. 이런 생활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조금은 우울해지기도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곧 재개발이 되면 이사를 해야 한다. 이사할 때까지만 장사를 하시게 할 생각이다. 어머니 연세가 86살. 이제껏 살아 계시기만 해도 다행인 연세다. 그런데 장사까지 할 정도로 건강하시니 참으로 감사하다.


연로하신 분을 장사를 하게 한다고 욕을 하는 사람보다는 일을 놓게 되면 병이 오니 도와드리면서 장사를 하게 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더 많다.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고 싶어 하시니 어머니 의사를 따르는 것이 효도라 생각하여 무리 되지 않는 선에서 하시게 한다.

우리 집은 2층 주택이다. 어머니는 일층에, 우리 부부는 이층에 산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도 같은 공간이 아니니 고부간의 갈등은 거의 없다. 간혹 아내와 어머니가 티격태격할 경우가 있는데, 그 원인은 어머니가 집안을 지저분하게 해 놓으실 때이다.


아내는 깔끔한 편이라 지저분한 것을 보지 못 하는 성격으로 청소라도 하려고 하면, 어머니는 당신께서 해놓으신 것을 옮기면 불편하다면서 못 하게 하신다. 그러면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만약 같은 공간에 살았다면 이 문제가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었을 거다. 하지만 거주하는 공간이 다르고 아내도 일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그런 소란은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늘 아침 콩나물시루를 시장까지 가져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작은형이 와 있다.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작은형은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집으로 와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후 회사로 향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휴일인 날은 어머니가 거주하시는 일층을 간단하게 청소를 한다. 작은형은 절대 어머니가 싫어하시는 청소는 하지 않는다. 옷가지를 걸고 설거지를 한 후 바닥을 한 번 쓱 빗자루로 쓸어 담을 뿐이다. 그것을 우리끼리는 "복산동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대충한다는 의미이다.

언젠가 작은형은 나에게 이사를 가게 되면 텃밭이 있는 주택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내 생각을 물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텃밭이 있고 어머니와 나는 그 텃밭에 계절마다 여러 종류의 채소를 심는다.

상추와 방울토마토, 가지, 겨울초, 양파 등등. 형은 어머니가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이사를 가서 장사는 못 하시더라도, 소일거리는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형이 말하기 전에 이미 내가 생각하고 있는 터였으므로, 그러겠노라고 말하니 형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혼자되신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었다. 한 번씩 어머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뭐 하러, 지금도 마이 살았다."
"요즈음은 백 살까지 사는 게 유행이라 카더라."
"그때까지 살아가 뭐 하노?"
"그래도 엄마가 오래 사는 기, 나한텐 복이다."
"그래, 오래 사꾸마."
"엄마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뭐가?"
"다른 사람들은 자식들 앞세우는 사람도 많은데, 엄마는 아들 3형제가 다 잘 살고 있다 아이가."
"그래, 그건 맞다."

나도 어머니처럼 그렇게 늙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돈은 그렇게 많지 않을지언정 자식들 앞세우지 않고 서로 아껴주면서. 이런 게 행복이다.
#CYYOU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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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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