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북극곰
겨울 빗소리를 듣는 아침에 아이들이 마루문에 코를 박고 바깥을 내다보다가 슬그머니 비옷을 챙깁니다. 이 겨울에 비옷을 입고 비를 맞으며 비놀이를 하고 싶은 눈치입니다.
"그러렴. 네가 놀고 싶은 대로 놀면 돼."
한겨울에 제법 세차게 퍼붓는 비인데, 겨울비가 차지는 않습니다. 저희 보금자리가 있는 전남 고흥은 이 겨울에도 무척 포근하거든요. 그래도 쉰 해쯤 앞서는, 또는 일흔 해쯤 앞서는 한겨울에 도랑이며 논이 꽁꽁 얼어 얼음을 지치며 놀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메는 나를 낳고 "또 딸이네."
윗목에 밀어 두고 울었다나마저 너를 미워하면세상이 너를 미워하겠지질긴 숨 붙어 있는 핏덩이 같은나를 안아 들고 또 울었다하늘에서는 흰 눈송이가하얀 이불솜처럼지붕을 감싸던 날이었다 (어쩌다 세상에 와서/안기임)논이 얼어 얼음을 지치며 놀았다는 아스라한 예전 고흥을 떠올리면서, 곡성 시골자락에서 살아가는 할머니가 쓴 시하고 그린 그림을 엮은 그림책을 폅니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북극곰, 2017)인데요.
전남 곡성 서봉마을에서 흙이며 시를 짓는 할머니들이 있다고 해요. 이 시골마을에는 길작은도서관이 있고, 이곳 도서관지기는 할머니한테 한글을 가르쳐 주면서 <시집살이 詩집살이>라는 할머니 시집을 엮기도 했답니다.
시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를 펴면, 할머니가 투박하면서 수수하게 빚은 그림에다가 살가우면서 애틋하게 쓴 시가 어우러집니다.
딸로 태어난 아픔이나 슬픔을 달래는 옛날 어머니 이야기,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서는 꾸지람만 듣지만 이를 늘 감싸던 할머니 이야기, 어린 아이들을 고루 아끼던 어버이 이야기, 어느새 어버이 자리에 서면서 새로 아이들을 낳아 돌보던 무렵 이야기, 어릴 적에는 할머니한테서 사랑을 받다가 이제는 할머니 자리에 서서 할아버지 없는 쓸쓸함이나 먼 데서 사는 아이들을 그리는 이야기가 잔잔히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