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개, 이렇게 찾는 법도 있어요

[젊음, 세상을 바꾸다①] 비영리 스타트업 동물개체인식연구소

등록 2018.01.02 10:29수정 2018.01.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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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이디어로 성공(이윤 창출)을 꿈꾸는 스타트업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윤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바꿔보려는 스타트업은 흔치 않다. 우리는 이들을 '비영리 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오마이뉴스>가 2018년 새해를 맞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해보려는 '젊은' 비영리 스타트업들을 만나봤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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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스타트업 ‘동물개체인식연구소’ 직원들이 개체 식별을 위해 반려견의 비문(코무늬)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 동물개체인식연구소


666만 마리.

한국펫사료협회가 지난 8월 18, 19일 실시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추정한 우리나라 반려견의 숫자다. 이중 매년 1% 정도인 6만3000여 마리가 주인을 잃거나 길에 버려진다고 한다.

20세기에는 지금의 '반려견' 대신 '애완견'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였다. 개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가까이에 두고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동물에서, 가족 같은 존재로 격상된 것이다. '또 하나의 가족'인 개를 찾으려는 인간의 기술력도 함께 발전했다.

잃어버린 반려견을 쉽게 찾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2014년부터 동물등록제(3개월령 이상 개)를 실시하고 있는데, 현재는 크게 세 가지 등록 방법(내장형 전자칩, 외장형 전자태그, 인식표)이 있다. 그러나 외장형은 잃어버리거나 외부 충격에 파손될 위험이 있고, 내장형은 칩이 개의 혈관을 타고 몸속을 돌아다니는 부작용이 있다. 최근에는 개에게 GPS 추적장치를 부착한 뒤 통신사 망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위치를 확인하는 서비스도 나왔는데, 월 이용료를 내고 배터리를 주기적으로 충전해야 해 번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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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등록의 세 가지 방법 ⓒ 동물개체인식연구소


비영리스타트업 '동물개체인식연구소'(http://blog.naver.com/backhomedog)는 비문(鼻紋)이라는 전혀 새로운 방식에 주목했다. 동물개체인식연구소는 서울시 NPO지원센터가 지난해 개최한 비영리스타트업 쇼케이스에 초청된 5개 팀 중의 하나다.

사람마다 다른 지문처럼 동물마다 다른 코주름 무늬에 착안

사람마다 손가락 끝에 있는 지문이 다른 것처럼 동물의 코주름 무늬가 각기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비문을 개체 식별에 이용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이다. 개 주인이 개의 비문을 촬영해 서버에 등록하면, 이 개를 잃어버리게 되더라도 보호소에서 습득하면 개의 비문 정보를 확인해 개 주인에게 문자로 통보하는 방식이다.


비문 인식은 '유실견 찾기' 외 다른 목적에도 활용될 수 있다. 보험업계는 반려견 의료보험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병원을 찾은 개와 보험이 적용된 개의 일치 여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금까지는 개의 겉모습만 보고 눈대중으로 식별했지만, 비문 인식 기술을 활용하면 해당 개의 보험 가입 여부를 보다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게 된다. 비문 인식은 광견병이나 브루셀라증을 앓고 있는 개체를 추적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그러나 비문 인식이 보편화되지 못한 데에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다. 손끝에 잉크만 묻히면 채취가 용이한 지문 날인과 달리 개의 비문을 얻는 작업은 쉽지가 않다.

동물개체인식연구소 대표를 맡고있는 이민정씨는 지금까지 개 217마리를 대상으로 비문을 촬영하는 실험을 해서 94.9%의 인식률을 얻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처음에는 지문 인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프로세스가 전혀 달랐다. 지문은 몇 가지 일정한 패턴으로 수렴되는데, 비문은 그런 식으로 분류할 만한 표준이 없었다.

비문을 촬영할 때 개들은 사람이 촬영하기 좋은 각도로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가 쫓아다니면 초점이 안 맞는 문제가 생긴다. 개 코가 촉촉하면 빛이 반사돼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의 다리들을 전부 고정하고 얼굴에 깔때기를 씌워 촬영하는 사례도 있지만,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고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개의 비문 사진을 얻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동물개체인식연구소는 비문 채취의 보완책으로 개의 인중(코와 윗입술 사이에 오목하게 골이 진 곳) 특징을 추출해서 상호 비교하는 방식을 특허 출원했다. 연구 성과가 더 쌓이면 안면인식알고리즘을 발전시켜서 촬영시 무조건 초점이 맞는 앱도 개발하려고 한다.

초등생 시절 '개 안락사' 트라우마 씻으려고 연구

동물개체인식연구소의 시도는 반려견에 대한 창업자의 애정과 전공(컴퓨터 비전)이 만난 사례다.

이민정 대표는 초등학생 시절 길 잃은 개가 잔인한 방식으로 안락사되는 것을 목격한 것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됐다. 그는 동물에게 특유의 비문이 있다는 사실을 학술지를 통해 알게 된 뒤 이를 전공(컴퓨터 비전)과 잘 접목시키면 유실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특허로 출원한 연구 성과물을 상업화하지 않고 비영리 스타트업으로 키워나가려는 데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 치유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가 깔려있는 셈이다.

"대학원에 다니다보니 공대생들이 숫자에만 매달려서 논문을 쓰게 되더라. 그러나 연구자가  지향해야 할 점은 그 기술을 쓰는 사람, 그리고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드는 기술, 서비스는 결국 생명을 보호하고 이어나가게 하기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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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개체인식연구소의 직원들. 왼쪽부터 이민정 대표, 김지혜씨, 이정현씨. ⓒ 동물개체인식연구소


이 대표를 포함해서 직원 3명이 전부인 소규모 스타트업이지만, 올해 1월에는 투자 요건을 맞춰서 법인을 설립해 보겠다는 꿈도 있다.

비문 인식을 동물보호관리 시스템의 표준으로 만들려는 데에는 우리나라 반려견 문화에서 한번쯤 짚어야 할 '뼈아픈 진실'도 담겨 있다.

"매년 주인 잃은 개가 6만 마리 넘게 나오는데, 이중에는 부주의로 잃어버리는 개들도 있지만 주인이 싫증나서 버려지는 개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의 비문을 일단 등록하게 되면 개를 일부러 버려도 주인을 찾기가 그만큼 쉬워진다. 그때쯤 되면 코를 망가뜨린 후에야 버려야 하니까 사람들이 개를 버리는 비율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동물개체인식연구소 #반려견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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