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카툰] 정조가 찜한 인재, 최홍만보다 컸던 허일

[史(사)람 이야기 25화] "붓을 버리고 칼을 잡게 하라"

등록 2018.01.26 21:02수정 2018.01.2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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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25화: 조선의 최홍만, 2미터 거인 허일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25화: 조선의 최홍만, 2미터 거인 허일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25화: 조선의 최홍만, 2미터 거인 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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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발탁한 거인 유생, 허일은 누구?

정조 임금이 제술시험을 관장하기 위해 성균관을 방문했을 때, 이제껏 보지 못한 거대한 체구의 유생을 발견했다. 채제공에게 그 일에 대해 하문하니, 제공은 허일에 대해 소상히 아뢰었다. 같은 남인계열이라 허일의 집안과 배경까지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일성록 정조 14년(1790년) 10월 8일자 기사


상(정조)이 채제공에게 묻기를,

"앞서 성균관 유생에게 제술 시험을 보일 때 다른 사람보다 체격이 월등하게 장대한 사람이 있기에 그 이름을 물어보려다가 물어보지 못하였다."

하니, 채제공이 아뢰기를,

"그는 필시 영남 유생 허일(許馹)일 것입니다. 신이 그 이름을 듣고 불러보니 그는 곧 허목(許穆)의 방계손이었는데, 그 체구의 장대함이 지금 세상에서는 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매일 먹는 것이 겨우 두어 되밖에 안 되므로 배를 채워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글을 잘하므로 붓을 놓으려 하지 않을 것 같으나 그 체구와 여력이 실로 무예를 권장할 만합니다."

하고, 병조 판서 김문순(金文淳)은 아뢰기를,

"이 사람은 이주국(李柱國)보다 1척이나 더 큽니다. 10년 전에 석저구(石杵臼)란 이름을 가진 자가 있어 키가 매우 컸는데, 그래도 오히려 허일에게는 미치지 못합니다."

하였다. 이에 훈련 대장 서유대(徐有大)에게 무예를 권장시키도록 명하였다.

인재를 좋아했던 정조는 장대한 체구를 지닌 허일을 무관으로 쓰기로 결정한다. 일성록 속의 허일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다시 이어진다.


일성록 정조 14년(1790년) 10월 8일자 허일 기사


상이 병조 판서 김문순(金文淳)에게 이르기를,

"영남 유생 허일(許馹)이 신장이 매우 크고 문벌이 권무(勸武)에 적합하기 때문에 훈장(訓將:훈련대장)으로 하여금 전령(傳令)하여 홍화문 밖에 대령하게 하였으니, 경들로 하여금 보게 하려는 것이다."

하니, 김문순이 아뢰기를,

"신은 장신 이주국(李柱國)에게서 허일의 신장이 자신보다 1자(尺)가 크다고 들었습니다.금번 능행(陵行) 때 남녀노소가 모두 허일을 큰 볼거리로 여겨 가는 곳마다 에워쌌다고 합니다.

그러자 허일은 그 요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하여 후미진 곳으로 물러나 앉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가 툭툭 차서 일어나게 하여 크게 지쳤다고 합니다."하였다.

허일에게 앞으로 나아오라고 명하고 선전관으로 하여금 키를 재게 하니 주척(周尺)으로 10자(2m 20cm)였다. 내가 이르기를,

"이와 같은 신장은 옛날에도 드물었다. 경들은 혹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니, 김문순이 아뢰기를,

"10여 년 전에 서강(西江)에 사는 석저구(石杵臼)라는 사람이 유명했는데, 신장이 매우 컸으나 지금 허일과 비교하면 미치지 못할 듯합니다."하여, 내가 나이가 몇인지 물었다.

허일이 대답하기를,

"22세입니다."

하여, 입고 있는 철릭(貼裏)은 누구에게 빌렸는지 묻자, 김문순이 아뢰기를,

"포교 중에 신장이 가장 큰 자에게 빌려 입었고 아랫단 가장자리를 풀었는데도 오히려 짧아서 겨우 무릎만 가렸습니다. 가죽신도 가장 큰 것을 빌렸는데도 좁아서 뒷솔기를 터서 신었다고 합니다."하여, 내가 이르기를,

"팔의 힘도 남들과 다를 것이다."

하니, 김문순이 아뢰기를,

"사람들이 손톱으로 팔을 찔러도 손톱이 들어가지 않고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하였다.

중금(中禁:임금의 심부름꾼)을 손바닥 위에 세우게 하니 허일이 그를 쉽게 들어 올렸다. 이어서 훈련대장 서유대에게 궁시(弓矢)를 지급하여 사예(射藝)를 익히게 하고 아침, 저녁거리를 제공하라고 명하였다.

정조는 허일을 권무군관으로 발탁했다. 허일의 아버지가 어떤 노인이 준구(駿駒: 뛰어난 망아지) 한 필을 주면서 잘 키우라고 한 태몽을 꿨다는 일화를 들은 정조는 허일에게 승(乘)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1792년에 허승이 응사(應射)에서 입격하자, 정조 임금은 1장(丈) 높이의 말을 주었다고 한다. 의령 출신 허승은 1798년(정조 20년) 식년시 무과 29위에 급제한 이후 거제부사, 공주영장, 창성방어사를 역임했다.

의령출신 허승은 1798년(정조 20년) 식년시 무과 29위에 급제한 이후 거제부사, 공주영장, 창성방어사를 역임했다.

 사진설명: 1811년 통신사 사절단을 수행하여 대마도로 건너간 허일의 모습. 출처: 조선인물정사조선인어향응지절(朝鮮人物正?朝鮮人御饗?之節) 소장처: 국립동경박물관
사진설명: 1811년 통신사 사절단을 수행하여 대마도로 건너간 허일의 모습. 출처: 조선인물정사조선인어향응지절(朝鮮人物正?朝鮮人御饗?之節) 소장처: 국립동경박물관국립동경박물관

1811년 일본 통신사(정사 김이교,부사 이면구)를 따라 대마도로 건너간 허승은 당시 왜인들에게 큰 인상을 준다.

마쓰자키 코도(松崎慊堂)의 필담창수집 <접선음어(接鮮瘖語)>에도 그의 이름이 나오는데, 군관 중 대단히 장대한 자(軍官中有一員極魁梧者)가 누구인지 묻는 데 그가 바로 허승이었다.


문무를 겸비한 능력에 비해 외직만을 전전하며 크게 쓰임을 받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인재였다.

[지난편 보기]: [역사카툰] 24화: 세조의 심복으로 승승장구했던 '까막눈' 재상 민발


[제공: 카툰공작소 케이비리포트]
덧붙이는 글 (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글/그림: 장수찬 작가, 감수 및 편집: 김정학 PD) 본 카툰은 카툰공작소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에서 제공합니다. 출판 문의 및 정치/대중문화 카툰작가 지원하기 [ kbr@kbrepor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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