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우니까 연탄화덕에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고, 뜨거운 물을 끓여 잡수십니다.
전갑남
언 몸을 녹이기 위해 피운 연탄 화덕에는 주전자 물이 끓어오릅니다. 어떤 할머니는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드시고 계십니다.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온 물건을 구경합니다. 여러 가지 많은 것을 골고루 가져오셨습니다. 시금치와 같은 푸성귀도 있지만, 대부분 마른 것들입니다. 건고추를 비롯한 콩, 팥, 조, 수수 등 잡곡에다 집에서 정성들여 말린 무말랭이, 시래기도 있습니다. 강화도 속노랑고구마와 참기름, 들기름병도 보입니다.
할머니들 점심을 먹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도시락 드시는 모습에서 학창시절에는 어머니가, 직장에 다닐 때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던 생각이 났습니다. 친구들 여럿이 모여서 도시락 까먹는 재미는 여간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싸준 꽁보리밥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머니 정성이 담긴 반찬은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김치를 꼭 짜서 담고, 단골반찬인 단무지와 무장아찌를 한쪽에 넣었습니다. 어쩌다 멸치볶음과 계란찜은 최고의 도시락 반찬이었습니다.
아내도 나와 아들 딸 도시락 세 개를 쌀 때, 싫은 내색하지 않고 맛나게 싸줬습니다. 나중 학교 급식이 제공됐을 때 도시락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후딱 그릇을 비우신 할머니 한 분께 내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많이 파셨어요?""잘 팔리지 않아! 추워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질 않잖아!""그럼 쉬시지?""쉬면 뭐해? 몸 움직이는 게 나아. 날 찾는 사람도 더러 있으니까!""난 곰피나 좀 살까 했는데, 없네요!""쇠미역? 우린 그런 것 없어! 저기 마트에나 있을라나?""그럼, 할머니, 이 시금치는 얼마에요?""이거 몽땅 3000원만 내! 데쳐 나물 무치든가 된장국 끓이면 좋아!"나는 할머니가 가져온 시금치를 모두 샀습니다. 수월찮은 양입니다. 싼 거래를 한 것 같습니다.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도 내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우리 잡곡도 좀 사지? 다 내가 농사지은 거야. 서리태, 팥, 밥에 놓아먹으면 맛있어!""할머니, 저희도 농사짓는 걸요. 팔아드리면 좋은데, 죄송해요.""하는 수 없지! 그럼 무시래기라도!"무시래기도 집에 말려놨다는 말을 하니 할머니는 실망스러워 하는 눈빛입니다. 물건을 사드리지 못해 공연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할머니들은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스스로 용돈이나 벌어 쓸 요량으로 장사를 하신다고 합니다. 몸 움직일 때까지는 일을 하고, 그래야 건강하다는 할머니들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