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 거닐며 아이유를 떠올리다

[같지만 다른 중국 생활 관찰기] 북경의 광활한 유적... 수많은 평범한 '이름들'

등록 2018.01.25 08:36수정 2018.01.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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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예전엔 '메이드 인 차이나' '짝퉁'이라는 단어가 많이 생각났겠지만, 최근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차기 최고 강대국 후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이런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다소 거창하고, 앞으로 1학기 동안 북경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즐거운 에피소드와 성장하는 중국 속 사람들의 사는 모습,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각자 가진 사회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아이유 <이름에게> 속 가사-
2017년 12월 2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멜론뮤직어워드'에서 가장 주목받은 무대는 가수 아이유의 <이름에게> 무대였다. 2절이 시작함과 동시에 수많은 무명가수와 일반인들의 이름이 스크린을 채우며 합창이 울려 퍼졌고,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찬가는 대중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북경의 유명 관광지, 이화원과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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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규모의 연꽃과 인공 호수를 보여주는 이화원 ⓒ 신준호


북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절대 빼놓지 않는 관광지 두 곳이 있다. 청나라 서태후가 가장 사랑하는 별장이었던, 드넓은 호수와 연꽃이 우거진 이화원. 그리고 북방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하지만 도무지 인간이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길이의 세계 7대 불가사의 만리장성.

나 역시도 북경에 도착하고 쉬는 날 가장 먼저 여행 갔던 곳이 '이화원'이었다. 높은 성 위에서 연꽃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호수를 보고 있으니, 자신의 소유로 이화원을 즐겼을 서태후가 굉장히 부러웠다. 심지어 이런 경치를 보며 살았으면 나 같아도 '이백'과 '두보'의 시처럼 아름다운 시조가 나왔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바글거리는 중국인 사이에서 홀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한적한 곳을 찾아 벤치에 앉았다. 그 순간 벤치 옆에 있는 이화원에 대한 설명 표지판을 읽는 도중 기함을 했다. 멀쩡한 체력을 가진 20대 남성인 나도 절반을 채 못 걷고 벤치를 찾아 앉게 만든 이 광활한 호수가 '인공호수'였던 것이다.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물은 어디서 끌어 온 걸까", "땅을 다 파버린 걸까" 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연꽃과 호수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화원의 호수는 미스테리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만리장성을 보는 순간 이화원의 규모는 '새 발의 피'라는 걸 깨달았다. 만리장성은 너무 길어 사람이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몇 군데만이 하루 돌기 좋은 여행 스팟으로 발달했다.

나도 북경에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만리장성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즐겼지만, 그 경치를 보는 순간 위압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말도 안 되는 높이와 경사를 가진 산꼭대기에 지어진 만리장성. 산의 지형에 맞춰 마치 뱀처럼 꾸불꾸불 펼쳐진 만리장성은 보는 것만으로 큰 황홀감을 선사했다.

기억해야 할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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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호수를 보여주는 이화원 ⓒ 신준호


하지만 이화원과 만리장성을 보면서 내 마음을 채우는 건 단지 황홀감과 아름다움이라는 행복한 감정만은 아니었다. 먼 옛날 이 위대한 유적지들을 건설하면서 다양한 이유로 사라졌을 많은 "이름"들이 내 눈에 아른거렸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부모였을 노동자들이 열악한 만리장성 건설 환경 속에서 추락, 동사 등 수많은 이유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화원의 거대한 인공 호수 또한 누군가의 희생이 없었다면 도저히 건설이 불가능한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중국에서는 부당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이 집단 자살한 '폭스콘 사태'나 사천성 대지진 때 부실 공사한 건물이 무너져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음에도 제대로 된 성명 발표가 이뤄지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전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걸 목격할 수 있다. 때문에 이화원과 만리장성을 보면서 평소 좋아하던 곡인 아이유의 <이름에게>가 생각났고 음악 재생을 했다.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사이로
조용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노래',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만큼 듣는 순간 주인공이 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아이유의 이 곡은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먼 옛날 조용히 잊혀졌을 누군가의 이름들마저 위로하는 노래로 내 마음에 와닿았다.

북경을 살면서 국가가 가진 특성상 많은 사람을 응집시켜 어떤 일을 계획하기 좋은 중국의 강점을 목격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중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묵묵하면서도 열심히 살아갈 사람들과 그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갈 이름들을 마음 한쪽에 늘 간직하고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북경 #교환학생 #이화원 #만리장성 #이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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