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가'만 찾는 시어머니, 이런데 결혼을 하라고요?

['며느라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②] 비혼여성이 본 며느라기

등록 2018.01.28 16:08수정 2018.07.3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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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성이 '시월드'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웹툰 <며느라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주인공 민사린이 시댁에서 부당한 일을 겪으며 끙끙 앓을 때마다 수많은 여성이 함께 울고 웃던 지난 8개월. <며느라기>가 우리에게 남긴 변화와 과제가 무엇인지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주말 운동을 하고 집에 가던 길, 저 멀리 같은 동 어르신이 보였다. 되도록 빨리 인사하고 지나가자 마음먹었는데, 이미 늦었다. 어르신이 먼저 움직였다.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등을 한 대 치며 말한다.

"왜 시집은 안 가고."


20년을 같은 아파트에 살며 알고 지내던 어르신이다. 그런 분이 지나가며 던진 말 한마디가 뭐 대수냐 싶다가도 이내 빈정이 상했다.

'어르신 아들도 결혼 안 했잖아요...'

하마터면 어르신과 함께 사는 50대 아들 이야기를 꺼낼 뻔했다. 속으로만 삭였다.

언제부터인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무서워졌다. 무방비 상태에서 아는 얼굴들이 묻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배달 가던 동네 치킨집 사장님도 묻고 아래층 아주머니도 묻고 가끔 경비아저씨도 묻는다. '결혼 안 했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크게 써 붙이고 다닐까 생각도 했다.

저렇게 결혼을 하라고 하니 그렇게들 좋은가 싶다가도 이내 갸우뚱한다. 결혼한 친구들은 늘 말했다. "안 해도 상관없지만, 할 거면 되도록 늦게 하라"고. "오늘 결혼해도 빠른 건 아니다"라는 내 말에는 "그래도 더 늦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두 손을 꼭 잡고 '제발 너라도 이 길에 들어서지 말라'는 듯이.


시댁은 다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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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 <며느라기> 작가 수신지


기혼인 친구들은 결혼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예를 들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비슷한 이야기들이었다. 남편과의 생활은 대부분 만족해했다. '남의 편'이 남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하루를 속삭이고 서로의 어려움을 나눠지며 삶을 부대끼는 게 썩 나쁘지 않다고 했다. 망망대해에 배 한 척을 띄우고 한 팀이 돼 노를 젓는 거라고 했다.

주변 친구들이 겪은 불편하고 불쾌한 일의 원인은 대부분 '시댁'이었다. 한 친구의 시어머니는 왕복 5시간 거리에서 매달 올라와 며칠을 지내다 갔다. 젖도 떼지 못한 아이를 들쳐 매고 시어머니 밥상을 차려야 했다. 다른 친구에게는 시댁에서 설거지하는 남편 뒤에 와 헛기침을 하며 못마땅함을 드러내는 시아버지가 있다.

남편과 시댁에 갈 때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와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시누이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심란하다. 물론 수십만 원의 장보기 비용은 남편 몫이었다. 시댁 여행을 마음대로 계획하고는 일정을 비워두라고 통보하는 도련님 때문에 끙끙거리는 모습도 봤다.

길어야 5년, 짧으면 2년 내외의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비슷했다. 시어머니들은 어디에서 배우기라도 한 듯 '남은 음식 우리끼리(시어머니와 며느리) 먹어 치우자'는 말을 했고, 당신의 아들은 피곤할 테니 쉬라고 했으며, 부엌으로 쉴 새 없이 '새아가'를 찾았다.

그게 며느라기였구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좋지도 않은데 웃고 있어."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똑 부러지는 사람을 꼽자면 첫머리에 들 친구였다. 정색하며 조곤조곤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물건을 교환·환불해야 할 때도 똑 부러지게 요구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환불특공대'라 불렸다. 심지어 웃음도 많지 않아 무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애였다.

그런 친구가 시댁에만 가면 방실방실 웃는다며 자신을 답답해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웃으며 "예, 어머니", "네 아버님"하게 된다는 거였다. 시댁 식구 앞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말이 되게 따르고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조심하고 상냥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착한 며느리. 시댁 집 문을 여는 순간부터 저절로 '착한 며느리' 정체성이 장착된다는 친구가 낯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웹툰 <며느라기>가 나왔을 때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답을 찾았다는 거였다. 한 친구만 그런 게 아니었다. 며느리로 사는 친구들은 놀라워하며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 집에 CCTV를 달아놓고 그렸나 놀라워했고, 원래 다들 이러고 사느냐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고 애쓰며 사랑받으려 했던 '며느라기'의 실체를 알아 속 시원해했다.

덕분에 며느라기를 정독했다. 겪은 적 없으면서도 장면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았다. 댓글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만화에 달린 댓글은 한풀이와 충고가 가득했다. 주인공인 '며느리' 사린과 그의 남편인 구영이 연애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민사린, 도망쳐'라는 댓글이 많았다. 다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구영이는 작은아버지와 술 한 잔 하고, 사린이 내내 전을 부치던 제삿날 풍경에는 차마 옮길 수 없는 욕이 많이 달렸다. 결혼 1년 차에 몇 시간 전을 부쳤는데 '차린 거 없다'는 말을 들어 혼자 울었다는 댓글을 쓴 사람도 있었다.

나라고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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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며느라기> 한 장면 ⓒ <며느라기> 작가 수신지


며느라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린은 단호했다. 결혼식 주례의 "며느라기를 받아들이겠습니까"라는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양손에 들고 있던 부케가 툭 떨어졌다. 시댁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필요 없다는 걸 깨달은 사린은 결혼생활을 끝냈을까? 아니면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단호박 며느리로 탈바꿈했을까?

무엇이든 쉽지 않을 것이다. 이혼도, '단호박' 며느리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조신하고 사랑스런 며느리 역할을 맡기는 가부장 사회에서 혼자만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까. 현실에서는 며느라기를 거부하는 며느리와 며느라기를 강요하는 시댁이 차근차근 전쟁을 치러나가겠지.

시댁의 이런저런 답답함을 전하는 신혼 친구들에게 충고랍시고 몇 마디 건넨 적이 있다. 그럴 땐 싹싹하게 답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친구들은 "너는 그게 되나 봐라"라며 코웃음을 쳤다. 슬슬 알아가고 있다.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결혼 십 년을 훌쩍 넘긴 회사의 '며느리'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애써가며 잘 할 필요 없다."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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