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부모님이 나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이끌지 않았기에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신나리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기차 안, 그러니까 드디어 엄마의 길고 긴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주제는 '엄친아', 엄마가 부러워하는 남의 집 자식들.
"김 교장네 아들이 7급 공무원 되었다고 하더라. 며느리도 선생 며느리를 그렇게 찾더니 선 몇 번 보더니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맞았는데 그렇게 예뻐 죽겠다네. 권 선생 딸이 아버지에게 그렇게 고맙다고. 교사 되라고 해서 다시 공부해서 됐는데 그렇게 좋다고." 엄마는 공무원이나 교사가 된 남의 집 자식들을 가장 부러워한다. 왜냐. 엄마 자식들은 못 했으니까. 아빠는 초등학교 교사로 36년을 재직하셨고 인맥의 대부분은 교사들로, 자녀들도 최소한 한 명은 교사가 되었다. 부모가 교사로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면, 부모의 삶을 존경한다면, 자식도 교사가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엄마의 지당한 논리였다.
무난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엔 교사만 한 직업이 없다고 부모님은 말하곤 하셨다. 개성과 자유의 물결이 춤추던 1990년대, '평범하게 살라'는 말은 나에게 고루하게 들렸다. 사범대나 교대를 가라, 교직 이수를 하라는 부모님의 요구를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제멋대로 사는 자식, 엄마는 이를 두고 자식 교육 '실패'라고 명명하셨고 '자식 자랑할 게 없다'고 한숨 쉬셨다. 내가 회사 그만두고 집에 '눌러앉은 후'로는 더 심해졌다. 교사가 되었으면 이럴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며.
"엄마 이제 와서 소용없는 이야기를 왜 자꾸 해?""네가 사는 모습이 딱해서 그렇지!""선생은 뭐 편한 줄 알아. 온종일 애들 가르치고 집에 와서 혼자 살림 다 해.""그럼 좋은 거지 뭐가 문제인데? 애 키우면서 그만한 직업이 어디 있어."나는 불만이다. 엄마는 왜 남들의 시선, 남들이 좋다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실까. 엄마는 '결혼 안 해도 돼, 애는 안 낳아도 돼'라거나 '네가 뭘 하든 믿는다' 혹은 '네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걱정하거나 지나간 일 되씹으며 후회하셨다.
엄마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한 선택과 결과에 약간의 후회가 있긴 해도 엄마가 잘못 가르쳐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똑같이 키웠지만 너무도 다른 남동생이 그렇듯 말이다.
난 내 인생을 스스로 정해 왔다고 생각하고 결과를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고 부모에 대한 원망 역시 추호도 없다. 부모님이 나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이끌지 않았기에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남의 집 자식들이 공무원 되고 선생 되는 게 그렇게 부러워?" "그래 부럽다." 엄마는 왜 그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창밖을 내다봤다. 피렌체로 가는 기차 안, 우리는 마주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시간을 더 보냈다.
여행에서 다녀와 읽은 책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쓰여 있었다.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으로 비춰 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거울이 아니고, 엄마 눈에 결점으로 보이는 것들도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엄마가 계속 그렇게 나한테서 기적을 바라는 한 나는 절대 그것에 맞출 수가 없어요." - <멀고도 가까운>(리베카 솔닛)
엄마와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