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듣보' 도시, 600년 전 조상들은 어떻게 알았지?

[지도와 인간사 7] 강리도에서 이집트 현대 지리를 배우다니

등록 2018.02.01 11:19수정 2018.03.1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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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지명 탐험을 이어갈 참입니다. 그 전에 잠깐 책 한 권을 구경하겠습니다.

아래 책은 커피 테이블 정도로 큽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지도를 소장하고 있다는 미국 의회도서관이 비그라 빈센트와 공저로 2007년 펴낸 명저 <지도학(CARTOGRAPHIA)>.


여기에 1402년 조선에서 제작된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매우 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600여 년전 우리 조상들이 붓으로 비단 바탕에 그린 세계지도의 모습이지요.

<CARTOGRAPHIA> 1402 강리도 수록
1402 강리도 수록김선흥

강리도 가장 우수한 지도라 평가
강리도가장 우수한 지도라 평가김선흥

가장 놀라운 것은 지도 맨 아래에 적혀 있는 짧은 문장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나온 지도 중에 이 1402년 한국지도에 필적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걸까요? 이런 의문을 떠올려 보면서 지명 탐험 여행에 나섭니다.

고지도 보는 법


지명 탐험에서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위치의 정확성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라는 점입니다. 비교적 정확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적 위치가 뒤바뀐 경우도 있고, 엉뚱한 곳에 기재된 경우도 있으며, 공간적 제약으로 제 위치에서 밀려난 경우도 있습니다.

그 옛날 인공위성은커녕 망원경도 없던 시절에 하늘 저 너머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에 경이감을 느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래 지도를 봅니다.

지중해에 그려진 파고다는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파로스 등대입니다. 사상 최초의 등대로서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

붉은 네모 테두리가 오늘의 탐사지역입니다(알렉산드리아 지명에 대해서는 이전에 이미 설명했으므로 여기에서는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이집트 일대 강리도 지명
이집트 일대강리도 지명김선흥

먼저 옛 카이로(현재 이집트 수도)로 여행을 떠납니다. 강리도 당시의 카이로 모습은 어땠을까요? 여실히 그려 놓은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븐 바투타(모로코 1304~1368)의 여행기입니다. 이 시기는 강리도가 모본으로 삼았던 원라나의 지도가 편찬되었던 때와 대체로 일치합니다. 때문에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와 강리도는 같은 시대의 증언이자 초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실로 여행가의 '지존'이라할 만합니다. 무려 30년 동안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륙을 떠돌았으니까요.

"애초 성지 순례와 이슬람 문명 탐구를 목적으로 시작한 여행은 점차 그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탐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하여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장장 10만km에 이르는 여정을 답파한 그는 귀향 후 이를 불후의 기록으로 남겼다." - <이븐바투타의여행기> 역자 정수일

"나는 드디어 카이로시에 도착하였다. 카이로는 아 나라의 어머니 도시이며 넓고도 풍부한 땅의 정화(精華)이다. 수 없이 많은 건물,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도 장려한 경색을 지닌 이 곳은 모든 사람들의 안주처(安住處)다.

유식자와 무식자, 엄숙한 자와 쾌활한 자, 지혜로운 자와 멍청한 자들이 혼거하고 있다. 이곳은 문자 그대로 사람들로 물결친다. (중략) 고색창연하면서도 넘치는 젊음으로 항상 새롭다. 이 도시의 운명을 지배하는 별자리는 결코 행운의 성좌를 벗어나지 않는다. (중략) 낙타로 물을 파는 물장수가 1만 2천 명이고, 관개수 물장수는 무려 3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관민용 선박 3만 6천 척이 나이강을 따라 위로는 상이집트로, 아래로는 딤야트로 오르내리며…" -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이븐 바투타가 발을 들였던 1326년 당시 카이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합니다.

600년 전 지도에 적힌 '밀사(密思)'

이제 카이로의 이름을 강리도에서 찾아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함께 지명 탐험에 머리를 맞대 봅니다. 답 자체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탐사를 즐겨 보도록 합니다.   

"카이로는 아랍어로 '까히라'(al-Qahirah)라고 하는데, 그것은 '제압자' '승리자'라는 뜻이다." - 정수일 번역 <이븐바투타의여행기>

'까히라' 혹은 '카이라'와 발음이 유사한 한자 지명을 위 지도 붉은 네모 안에서 찾으면 됩니다. 물론 중국어 발음이어야 하지만 우리 발음도 근사성이 있습니다.

ㅋ/ㄲ 자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일단 좌절합니다. 이상하네! 천하의 카이로를 천하의 강리도가 수록하지 않았다? 혹시 옛날에는 카이로를 아랍 사람들이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까?

정수일 번역본 <이븐바투타의 여행기>를 좀 꼼꼼히 읽어 봅니다. 이런 시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맹세컨대 눈 밝은 이에겐 미스르(이집트)의 미스르(카이로)는 이승의 낙원이어니
그 어린이들은 선동선녀이고, 그 샘물과 화원은 천당이며, 그 나일강은 선하(仙河)여라."

여기에서 우리는 카이로와 이집트가 모두 '미스르(Misr)'로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도시의 위세는 Misr라는 명칭 자체에 반영되어 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이집트인을 지칭하는 Mizraim의 어근에서 유래되었다. 미스르는 지금도 카이로의 아랍어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아가 오늘날 이집트의 국명을 아랍어, 히브리어, 투르크어, 우르두어, 힌두어로 미스르(Misr)라 부른다. 이것은 마치 옛날 한 때 멤피스가 이집트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혼용되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출처 : nytimes.com/books/first/r/rodenbeck-cairo.html)

12세기 이슬람 지도에서도 Misr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아래). 큰 건축물은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12세기 알 이드리시 지도 지중해와 이집트, 북쪽이 위
12세기 알 이드리시 지도지중해와 이집트, 북쪽이 위위키 피디아

12세기 알 이드리시 지도 지중해와 이집트, 남쪽이 위
12세기 알 이드리시 지도지중해와 이집트, 남쪽이 위위키 피디아

그렇다면 '미스르'가 강리도에 과연 기재되어 있을까요? 미스르/미쓰/미스/미슬 등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 지명을 찾아 봅니다.

密思(밀사)! 중국어 발음으로 '미쓰'. 바로 Misr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스기야마의 설명(<대지의 초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密思(밀사)는 Misr을 나타내고 있다. 본래는 군영도시를 의미했지만, 이집트의 거점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면서, Misr라 하면 이집트를 뜻하게 되었다. 강리도에서는 도시로서의 Misr가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카이로 지명 탐험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이집트 사람이나 아랍인들은 이집트라 부르지 않고 미스르(Misr)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그네(필자)는 이런 지리 상식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강리도 지명 탐험을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거지요. 15세기 우리 조상들이 남긴 지도를 통해 현대 지리 상식을 공부하게 돠디니... 묘한 느낌이 듭니다.

멤피스에 담긴 의미

다음은 기원전 3천년 전에 세워졌다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를 찾아 봅니다.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20km 위치.

위 강리도에서 密思(카이로) 바로 오른 쪽 蠻涌(만용)을 주목해 봅니다. 위치를 살펴보면 아주 미세하지만 카이로보다 약간 아래에 기재해 놓았습니다. 마치 카이로의 남쪽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카자흐스탄 학자 눌란(Nurlan)의 설명을 들어 봅니다.

"Misr 곁에 나오는 Manyong(蠻涌, 만용)은 아마도 멤피스를 가리킬 것이다. 아랍인들은 Manfu 또는 Manuf라 부른다. yong(涌)은 pu(浦)의 오기인 듯하다. 12세기의 유명한 알 이드리시 지리서나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서는 Menf라 불렸다. 강리도 혼묘지(本妙寺)본이나 센리대(千里大) 본에는 蠻甫(만푸, Manfu)로 기재되어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카이로(密思) 바로 위,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오른 쪽의 외자 布(푸)에 주목해 봅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알렉산드리아의 동쪽, 카이로의 북쪽에 Fuwa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布(포)와 지리적 위치나 발음의 유사성으로 보아 같은 장소로 보입니다.

"布(Pu)는 Fua 또는 Fuwwah로 북 이집트 소재의 타운이다." - 눌란

이집트 푸아 이집트 푸아
이집트 푸아이집트 푸아구글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도시인데 왜 강리도에까지 기록되어 있을까? 아니면 옛날에는 유명했었나? 포(布)는 포목을 뜻하는 것이니 혹시 이곳이 직물의 명산지로 유명했을까?

하여튼 좀 더 알아 보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도 안 나옵니다. 그래도 계속 헤집고 다니며 찾아 봅니다.

15세기에 이곳을 여행한 어느 프랑스인이 남긴 여행기(불문)를 만납니다.

"우리가 만난 첫 번째 도시의 이름은 Fua이다. 매우 큰 도시로서 명산품들이 그득하다. 이 도시는 로제타 섬 맞은 편에 있다. 하룻밤을 푸아에 머물면서 선상에서 식사를 했다. 도시의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보기 위해 몰려 들었다. 우리 같은 사람을 보는 건 그들에게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는 푸아 강변에 정박한 채 선상에서 하룻밤을 잤다." - Frederic Bauden 1420년 여행기에 수록, 이형은 역


"지역적으로나 국제적으로 Fuwa는 양탄자와 킬림(Kilim) 카페트의 주산지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105km 떨어져 있으며 나일강 유역 로제타의 동쪽 강안에 위치한다. 1990년대에 많은 기념물이 수리되었다. 도시의 역사 유적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 Muhamad Abdel Aziz

이집트 작은 도시까지 기록한 조상들

킬림(kilim)은 페르시아어 gelim에서 유래되었는데 '거칠게 펼친다'라는 뜻으로 그 어원은 몽골어로(추정) 알려져 있습니다.

킬림 카펫 푸아 명산
킬림 카펫푸아 명산위키피디아

여기에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푸아'가 카페트 등의 직물 명산지로 유명했다는 것. 중국어 '布(포)'로 옮길 때 이 점을 반영한 것이 분명합니다.

중국인들은 외래어를 표기할 때 그 발음과 뜻을 절묘하게 융합하는 재치를 보이곤 합니다.

이를테면, Coca Cola는 '可口可樂(커우커커러)'. 한자 뜻은 '입에 맞아 참 즐겁다' 그런 뉘앙스입니다. Benz는 '奔驰(펀츠)'.  달릴 분(奔), 질주할 치(驰). 비슷한 발음에 성능, 특징까지 반영되어 더 잘 팔렸다는 조사도 있다 합니다(홍익대 김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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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우리의 강리도에 카펫 명산지 Fua/Fuwa의 발음과 카펫 명산품을 융합한 포(布)가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이 희한할 따름입니다(이 글 연재 중에 발견한 사실입니다). 강리도는 알면 알수록 놀랍고 신기합니다.

이런 의문이 자주 떠오릅니다. 우리는 왜 그동안 이 지도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었는가. 일찍이 일본의 소장 학자 미야 노리코(교토대)는 이 지도 하나에 대하여 단행본(일문 <몽골제국이 낳은 세계지도>)을 냈고,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Lake Norman Highschool)에서는 이를 역사 탐구 과제로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의 인식과 관심은 왜 큰 차이가 있는가?

우리의 문화재라면 누구보다 우리가 앞서 연구하고 애써 해외에 홍보하는 것이 통례인데 왜 강리도 만큼은 예외인가? 우리가 지적 태만에 빠져 있고 세계사적 맥락을 잃어버린 탓이라는 조지형 교수(이화여대)의 개탄은 무슨 뜻인가?

지리학자 오상학 교수(제주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강리도>가 조선의 대표적인 세계적인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학술적 조명은 미흡하다. 특히 국내 학자의 연구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미미하다. 이는 네 종의 필사본 지도가 전부 일본에 소장되어 있어서 지도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은 점에 기인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그보다는 <강리도>가 지니는 세계사적 의의를 탐색하는 작업이 어렵다는 점이 더 큰 요인인 것 같다. - 오상학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최근 담론과 지도의 재평가', <국토지리학회 제 50권 1호>(2016) 118쪽

좀 거창하고 무거운 단어지만, 세계사적 맥락, 세계사적 의의에 어두워 우리가 이 지도의 가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는 지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다음 번에는 이에 대하여 약간 살펴 본 다음, 시간이 남으면 지명 탐험을 이어갑니다.
#강리도 #고지도 #이집트 명소 #카이로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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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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