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일대강리도 지명
김선흥
먼저 옛 카이로(현재 이집트 수도)로 여행을 떠납니다. 강리도 당시의 카이로 모습은 어땠을까요? 여실히 그려 놓은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븐 바투타(모로코 1304~1368)의 여행기입니다. 이 시기는 강리도가 모본으로 삼았던 원라나의 지도가 편찬되었던 때와 대체로 일치합니다. 때문에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와 강리도는 같은 시대의 증언이자 초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실로 여행가의 '지존'이라할 만합니다. 무려 30년 동안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륙을 떠돌았으니까요.
"애초 성지 순례와 이슬람 문명 탐구를 목적으로 시작한 여행은 점차 그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탐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하여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장장 10만km에 이르는 여정을 답파한 그는 귀향 후 이를 불후의 기록으로 남겼다." - <이븐바투타의여행기> 역자 정수일
"나는 드디어 카이로시에 도착하였다. 카이로는 아 나라의 어머니 도시이며 넓고도 풍부한 땅의 정화(精華)이다. 수 없이 많은 건물,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도 장려한 경색을 지닌 이 곳은 모든 사람들의 안주처(安住處)다.
유식자와 무식자, 엄숙한 자와 쾌활한 자, 지혜로운 자와 멍청한 자들이 혼거하고 있다. 이곳은 문자 그대로 사람들로 물결친다. (중략) 고색창연하면서도 넘치는 젊음으로 항상 새롭다. 이 도시의 운명을 지배하는 별자리는 결코 행운의 성좌를 벗어나지 않는다. (중략) 낙타로 물을 파는 물장수가 1만 2천 명이고, 관개수 물장수는 무려 3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관민용 선박 3만 6천 척이 나이강을 따라 위로는 상이집트로, 아래로는 딤야트로 오르내리며…" -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이븐 바투타가 발을 들였던 1326년 당시 카이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합니다.
600년 전 지도에 적힌 '밀사(密思)'이제 카이로의 이름을 강리도에서 찾아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함께 지명 탐험에 머리를 맞대 봅니다. 답 자체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탐사를 즐겨 보도록 합니다.
"카이로는 아랍어로 '까히라'(al-Qahirah)라고 하는데, 그것은 '제압자' '승리자'라는 뜻이다." - 정수일 번역 <이븐바투타의여행기>
'까히라' 혹은 '카이라'와 발음이 유사한 한자 지명을 위 지도 붉은 네모 안에서 찾으면 됩니다. 물론 중국어 발음이어야 하지만 우리 발음도 근사성이 있습니다.
ㅋ/ㄲ 자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일단 좌절합니다. 이상하네! 천하의 카이로를 천하의 강리도가 수록하지 않았다? 혹시 옛날에는 카이로를 아랍 사람들이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까?
정수일 번역본 <이븐바투타의 여행기>를 좀 꼼꼼히 읽어 봅니다. 이런 시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맹세컨대 눈 밝은 이에겐 미스르(이집트)의 미스르(카이로)는 이승의 낙원이어니
그 어린이들은 선동선녀이고, 그 샘물과 화원은 천당이며, 그 나일강은 선하(仙河)여라."
여기에서 우리는 카이로와 이집트가 모두 '미스르(Misr)'로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도시의 위세는 Misr라는 명칭 자체에 반영되어 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이집트인을 지칭하는 Mizraim의 어근에서 유래되었다. 미스르는 지금도 카이로의 아랍어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아가 오늘날 이집트의 국명을 아랍어, 히브리어, 투르크어, 우르두어, 힌두어로 미스르(Misr)라 부른다. 이것은 마치 옛날 한 때 멤피스가 이집트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혼용되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출처 : nytimes.com/books/first/r/rodenbeck-cairo.html)
12세기 이슬람 지도에서도 Misr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아래). 큰 건축물은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