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기에 더 좋은 시기는 한번도 없었다

[서평] <소규모 유기농을 위한 안내서>

등록 2018.01.31 08:40수정 2018.01.3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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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로 귀농하여 3천평의 농지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부부를 찾아간 적 있었다. 농사도 잘 모르고 판매는 어떻게 할지 방법을 몰라서 수년간 고생을 했다는 부부는 10년이 지나면서 안정적인 농사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하룻밤에 다 들을 수는 없었다.

농사 첫 해에 이상적인 농사라 생각했던 '자연농법'에 무작정 도전했다가 풀밭을 만들어 고생한 이야기와 농협공판장의 얼토당토 않는 수매가격에 화가 나서 농산물을 다시 싣고와 거름으로 밭에 뿌렸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시작부터 평탄치 않았던 농부는 자신의 현실에 맞는 농사계획을 만들고 중간유통을 거치지 않는 직거래 판매로 고객을 점차 늘려나갔다. 자연과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농사철학도 있었지만, 직거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거래이기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업을 선택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귀농농부들도 비슷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에게 맞는 농사와 판로를 만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가족중심의 소농(小農)으로 농지는 평균 2천~3천평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사를 짓고 있었다.

판로는 대부분 소비자와 택배로 직거래를 하거나 물류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지역에서는 생협이나 농협과도 거래를 했다. 또 다른 점은 고급자동차 가격을 웃도는 트랙터와 같은 비싼 농기계 뿐만 아니라, 비용부담이 적은 소비성 농자재의 구입도 꼭 필요한 것인지 따져보며 지출비용을 줄였다.

이들에게서 보고 들었던 경험과 사례들은 전업농부가 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농사는 여전히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많고, 여전히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하고 있다. 판로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때 가려운 곳을 긁어줄 비빌 언덕이라도 있으면 농사는 즐겁고 희망을 만들수 있다.

 소규모 유기농을 위한 안내서
소규모 유기농을 위한 안내서목수책방

무엇보다 행복하게 먹고살기


캐나다 퀘벡에 있는 '그렐리네트' 농장이 여러나라 농부들에게 관심이 되고 있다. 농장을 견학 온 농부들에게 생산과정과 판매방법을 소개하는 농부 주 장마르탱 포르티에의 농사철학과 농사이야기는 <소규모 유기농을 위한 안내서>로 출간되었다. 책은 7500m2(2300평)의 농장에서 다양한 채소들을 집약적으로 재배하고 판매하여 높은 수익을 올리는 과정에 대한 경험을 알려준다.

그는 모두가 잘 먹고 무엇보다 행복하게 먹고 살아야 한다면서, 대안적 삶의 방식을 찾아 다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농사를 권장하며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에 동의를 하면서도 농업현실을 봤을 때, 모든 것이 불확실한 농사에서 처음부터 돈이 되는 농사만 생각한다면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시간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게 내가 농부로 살면서 깨달은 생각이다.


 그렐리네트농장의 농부 주 장마르탱 포르티에
그렐리네트농장의 농부 주 장마르탱 포르티에사진출처_Creative Commons Wik

욕심없는 단순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면 처음부터 유기농업을 하는 것이 좋다. 이유는 관행농업에 비해서 지출되는 농자재비용과 노동력을 줄일 수 있고 수익도 높다. 그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책에서 잘 다루고 있으며, 어려움은 분명 생길테니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보통 농부가 매우 억척스러우며 1주일 내내 쉼 없이 일해도 어렵게 산다고 생각한다. 아마 현대적 농업의 덫에 빠진 관행농 농부 대부분이 겪는 현실에서 비롯된 이미지일 것이다. 사실 농부의 삶은 언제나 쉽지 않다. 날씨가 좋으나 나쁘나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한다. 풍년과 풍작은 늘 보장되지 않으며, 특히 고객 확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초기에는 용기와 열정까지 갖추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작은 것이 모이면 커진다

그렐리네트 농장의 농법과 판로는 나의 농장과 유사한 것들이 많다. 가족농중심의 소농(小農)에게 유기농업(인증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을 권장한 이유는 직거래 할 때, 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친환경농산물을 원하기 때문이다. 또한, 농사를 짓는 지역에 생협 또는 친환경학교급식센터가 있다면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다. 최근에는 도시농업이 부각되면서 외국처럼 지역농산물을 판매하는 농부장터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 금천구 화들장 로컬푸드는 소규모 유기농가에 도움이 된다
서울 금천구 화들장로컬푸드는 소규모 유기농가에 도움이 된다오창균

이와 같은 판로를 계획한다면 농사를 짓거나 귀농하려는 지역에 로컬푸드(Local Food)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수고로움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농산물꾸러미로 불리는 공동체지원농업(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된다.

나의 농장도 지역의 로컬푸드 시스템을 활용하며 어린이보육시설에도 농산물을 공급하고 농사체험도 한다. 퀘벡의 농부도 로컬푸드 시스템을 잘 활용하고 있으며, 이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텃밭에 쏟아 붓는 노동은 매주 우리가 생산한 채소를 먹는 가족들이 표하는 감사를 통해 보상 받는다" - 본문 중에서


그렐리네트농장은 처음부터 지금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 농장의 규모도 2500m2(750평)의 작은 텃밭에서 시작하여 10여 년의 노력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개선했다. 그간의 농사의 경험과 기록으로 만들어진 <소규모 유기농을 위한 안내서>는 소중한 가치들을 담고 있다. 거리상으로 보면 한참이나 떨어져 있고 지구반대편에 있을 것 같은 캐나다 퀘벡의 그렐리네트농장은 우리와 다른 농사도 아니며 농부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소규모 유기농을 위한 안내서 - 작지만 알차게 키우는

장-마르탱 포르티에 지음, 박나리 옮김,
목수책방, 2018


#유기농업 #그렐리네트농장 #농사 #로컬푸드 #소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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