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표지
알에이치코리아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을 거라 추정되는 또 한 사람의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로 돌아와 보자. 이 책은 여섯 개의 단편 모음이다. 무려 네 개의 단편에 태평양 전쟁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듯한 말투다. 아래는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발소 주인은, 태평양 전쟁 당시 군입대를 위해 머리를 깎으러 온 사람을 회상한다.
거울 속에 보이던 그 남자의 긴장한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리는군요.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굳히고 있었는지, 그저 회한에 젖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요. (111쪽)
침략전쟁을 일으켜 놓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도를 가진 표현인지 알고 싶다. 게다가 'A 또는 B'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잘 보면, 'A 또는 그저 B'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는 생각이 있는 행동이고, '그저 회한에 젖어 있는' 것은 생각이 없는 행동이라는 표현이다. 문장력의 귀재인 저자가 '그저'라는 단어를 그저 썼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다른 단편에서도 태평양 전쟁에 대한 회고나 언급이 등장한다. '그 어려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숭고한 희생을 했지' 투의 회고다. 침략 전쟁의 가해자라는 의식은 그야말로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관인 것은 역시 '멀리서 온 편지'다. 이 단편은 태평양 전쟁이 주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은 뒷전이고 일만 중시하는 남편의 태도를 참다못한 주인공은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온다.
남편이 '당장이라도 갈게. 기다려줘. 미안해'라는 문자를 보내기를 기대했지만, 남편은 '일 끝내고 토요일쯤엔 집에 갈 수 있을 거야'라는 문자를 보낸다.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 주인공은 이혼까지 생각한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괴문자의 내용은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장렬히 죽어가면서도 아내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남편을 용서한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번이 마지막 소식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사나이의 본분이라 생각하면서도 당신과 아직 보지 못한 아이만 생각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라고 불리는 한이 있어도 살아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183-184쪽)
침략자의 적반하장격 태도도 물론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현재의 일본인, 즉 주인공의 태도다.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했는데, 이런 문제로 남편을 괴롭히지 말자'는 것이 주인공의 결론이다. 태평양 전쟁은 일본인들에게 여전히 '이루지 못한 대의'인 것이다.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소위 '정상국가화'에 따라 일본이 본격 무장에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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