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가 얼마예요?" 들켜버렸네

[같지만 다른 중국 생활 관찰기] 북경에서 마주친 조선족들과의 일화

등록 2018.02.02 10:43수정 2018.02.0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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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예전엔 '메이드 인 차이나' '짝퉁'이라는 단어가 많이 생각났겠지만, 최근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차기 최고 강대국 후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이런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다소 거창하고, 앞으로 1학기 동안 북경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즐거운 에피소드와 성장하는 중국 속 사람들의 사는 모습,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각자 가진 사회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얼른 안 돌아오니!"


위의 문장을 그냥 글자로만 봤을 때는 평범한 말로 보일지 모르지만, 북경에서 조선족 축구팀과 경기 도중 한 아저씨가 같은 팀원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조금 다르게 음성 지원되기 시작한다. 최근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영화<범죄도시>의 장첸(윤계상 분)의 말투와 굉장히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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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중국 체인 음식점 와이포지아의 대표적인 음식들 ⓒ 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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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생활의 활력소였던 축구 동아리

처음엔 기왕 외국에 온 거, 전 세계인들이 있는 축구 동아리에 들어가서 더욱 많은 교류를 하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백인과 흑인 친구들 사이에서 2번 정도 공을 차본 결과, 며칠 안으로 내 뼈가 남아나질 않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거침없는 태클과 밑도 끝도 없이 들어오는 몸싸움은 운동에 목숨을 걸었나 하는 의심이 생겼다. 새삼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가 존경스러웠다.

북경에는 워낙 많은 한국인이 있기 때문에 여러 커뮤니티가 있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아리가 존재한다. 봉사 동아리, 축구 동아리 등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다양한 팀을 결성해 외로운 타지 생활에 서로 조금이라도 의지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속해 있는 북경대학교 축구 동아리에 들어갔다. 덕분에 북경대 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입구에서 검문하는 북경대에서 마음껏 볼을 찰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 진행되었던 리그가 가장 흥미로웠다. 한국인 5팀에 조선족 7팀 정도로 구성된 리그는 북경의 '프리미어리그'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팀원들이 사력을 다해 뛰었고, 높은 긴장감을 유지했다. 가끔은 거친 몸싸움과 이해할 수 없는 판정 등으로 인해 싸움이 붙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특히 조선족 팀은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아저씨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한국 조기 축구에서 아저씨들이 경기 중 화를 자주 내시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나왔다. 경기를 안 하겠다고 조끼를 집어 던지는 아저씨부터, 심한 욕설을 퍼붓는 아저씨까지 세상 어디를 가든 남자들의 승부 근성과 운동 중 다혈질은 빠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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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던 한국 음식점의 김치 볶음밥 ⓒ 신준호


들켜버렸네

북경에 있다 보면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운영하시는 한국 음식점 업체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때로는 음식점에서 한국말로 투덜거리다가도 혹시 알아듣는 사람일까 봐 주인장 인상을 한번 쓰윽 살펴보게 된다.

그 중 북경 유학생들이 애용하는 한국 음식 배달 업체가 있다.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늘 한국인이 주문을 받고 한국말로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하며 늘 자신이 한국인임을 어필하시기 때문에 "아 여기는 한국인 사장님이신가보다"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어느 날, 핸드폰으로 주문을 하는 내게 주인아주머니가 "전화번호가 얼마예요?"라고 질문해왔다. 한국인이라면 "전화번호가 뭐예요?"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국어에서 전화번호를 물어볼 때, 가격을 물어볼 때와 마찬가지로 '얼마'를 뜻하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게 아주머니의 한국인 어필은 한순간에 막을 내렸다.

조선족이건 한국인이건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줄곧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했을 아줌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최대한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친근함을 주기 위한 아주머니의 '비즈니스 전략'이었을 것이다. 나의 유학 생활이 끝날 때까지 그 집은 나의 단골 음식점이었고 아직도 그 집의 순두부찌개를 잊을 수 없다.
#조선족 #범죄도시 #북경 #교환학생 #북경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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