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씨 내외와 바깥 사돈. 두 집안 어른들의 고된 노동 앞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MBN 화면캡처
귀농한 젊은 부부가 엄마와 함께 장을 만들어 판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한 방송국에서 취재를 해서 방송을 탔다. 유쾌한 그녀의 모습을 TV로 보니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그 후로 한 달쯤, 다른 방송에서 영숙씨의 생활을 다큐로 찍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방송이 되는 날, 가족 단톡방에 방송을 보라는 톡이 왔고 나도 시청했다. 그 전에도 즐겁게 시청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보던 나는 방송이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이 다큐는 방송시간이 길다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영숙씨의 적나라한 삶이 담겨있었다.
철원 된장을 만드는 집에는 영숙씨 내외, 아들 내외와 어린 딸. 그리고 바깥 사돈이 같이 살고 있다. 집과 공장은 붙어있고 문 하나만 열면 바깥이라 집 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생활한다.
맨손으로 살아보겠다고 일을 시작한 자식들을 돕기 위해 바깥 사돈까지 와서 장 만드는 일을 돕고 있었다. 안사돈은 지방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며느리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 주말에만 철원에 온다. 실질적으로 부엌일을 할 사람은 영숙씨 뿐이다.
철원의 기온은 영하 20도. 영숙씨는 새벽 3시면 일어나 80kg 콩을 씻어 가마솥에 삶고 맨손으로 시래기를 씻어 국을 끓이고 새벽밥을 지어 식구들 먹이고, 치우고, 어린 손녀딸을 등에 업고 청소를 한다. 시퍼런 손은 퉁퉁 부어있고 안으로 굽어서 쫙 펴지지도 않는다.
말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점잖은 바깥 사돈 또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새벽부터 앞마당에 수북한 눈을 쓸고, 나무를 해오고,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고 밤이면 공장 한 켠의 초라한 숙직실에서 고단한 몸을 누인다.
영숙씨의 남편 그리고 아들 역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지만 영숙씨의 노동에 비할 수는 없다. 장을 만들고 식구들 끼니뿐 아니라 새참까지 챙기느라 영숙씨는 몸도 마음도 쫒기고 있었다.
두 집안 어른들의 고된 노동 앞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부모를 고생 시킨다며 아들을 질책할 수도 없다. 아픈 몸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서울 토박이인 그가 그곳까지 가서 그 일을 하기 까지 그 또한 얼마나 부대꼈을지...
고모가 편안하고 행복했으면화면에 비치는 영숙씨의 얼굴은 주름이 깊고 기미가 가득하고 시름이 꽉 차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영숙씨의 충혈된 눈동자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바깥 사돈의 칠순을 맞아 그를 집에 보내기 미안한 영숙씨는 그 집안 식구들까지 불러 그 곳에서 잔치를 치렀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고기를 삶고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렸을 때 안사돈과 그 쪽 집안 자식들이 도착했다. 안사돈의 얼굴에는 광이 났다. 철원에서 칠순잔치를 한다고, 그것도 촬영 한다고 하니 예의상이라도 치장을 했으리라.
우아한 머리 스탈에 화려한 메이크업. 환한 미소. 우리 영숙씨는 앞치마와 일체가 되어 재투성이 신데렐라처럼 옆에 앉아있었다. 다들 선한 사람들이고 누구의 잘못도 없는데 고개가 떨궈졌다.
방송이 끝나고 그녀에게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들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한참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고모 사랑 합니다' 문자로 대신했다.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끝까지 보는 게 고통이더라."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만 끄덕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오빠한테 전화가 왔다.
"휴... 속이 상해서 혼났다. TV에 나온다 하기에 된장이 맛있다고 홍보 영상이라도 나올 줄 알았더니." 피가 물보다 진하긴 한가 보다. 다들 다른 사람은 안 보이고 영숙씨의 고된 노동에 아파하고 있으니.
며칠 후, 명절날 용돈을 조금 보내고 안부 전화를 했다. 배우를 했어도 손색이 없었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숙씨는 쓸데없이 돈을 부쳤다고 난리다. 좀 한가해지면 반찬을 해다 주겠다고 하신다. 이번에는 내가 바람처럼 사라질 차례다.
"저 바빠서 집에 없어요. 제가 한가해지면 갈게요." 방문할 날을 잡자고 할까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고모, 저도 이제 나이 오십 다 되어가요. 이제 제가 맛있는 것 만들어 드릴게요. 저는 고모가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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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 칠순상까지 직접... 영숙씨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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