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실천문학사
조천 사람 앉은자리에 검질도 안 난다기에
내심 각오하고 있었는데 웬걸
폐가 내치지 않고 깃든 일 높이 사
푸성귀 등속 문고리에 걸어놓곤
행여 들킬세라 어기적어기적 내빼는
속 깊고 귀 먼 유지 할망 (텃세/36∼37쪽)
"우리 모두 시를 써요"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제는 흙이 된 어느 어르신이 남긴 책에 붙은 이름인데, 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어야 시를 쓸 노릇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즐겁게 시를 쓸 수 있고 시를 쓸 노릇이며 시를 써서 생각을 키우고 하루를 빛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을 받아서 조금 더 헤아려 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누구나 시를 쓸 만하지 싶어요.
학교를 오래 다녔든 학교 문턱을 못 밟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을 써냈듯 책을 쓴 적 없든 대단하지 않아요. 이른바 등단을 안 했더라도 누구나 시를 쓸 만합니다. 잔치마당에서 저마다 시를 한 줄씩 써서 돌아가면서 읊을 수 있어요. 새해를 맞이하면서 온식구가 저마다 시를 하나씩 써서 돌아가면서 읽을 수 있어요.
봄에는 봄맞이노래처럼 시를 써서 나눌 만합니다. 여름에는 여름맞이노래를, 가을에는 가을맞이노래를 시로 쓸 수 있어요. 겨울을 떠나 보낼 적에는 겨울배웅노래로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몸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암록색 해조류인 몸말예요
남쪽 어느 섬에서는 그것으로 국을 끓이는데요
모자반이라는 멀쩡한 명칭을 놔두고 왜 몸이라 하는지
사람 먹는 음식에 하필이면 몸을 갖다 붙였는지
먹어보면 절로 알아진다는데요 (몸국/68쪽)
노래하는 마음으로 삶을 돌아볼 줄 안다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된다고 여깁니다. 꿈꾸는 마음으로 살림을 가꿀 줄 안다면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되어 어깨동무를 한다고 여깁니다.
모자반을 모자반이라 해도 좋고, '몸'이라 해도 좋겠지요. 누구는 '몸'보다는 '맘'이라는 소리로 모자반을 가리킬 수 있어요. 몸이랑 맘 사이인 '뫔'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몸도 맘(마음)도 함께 헤아린다는 뜻으로 '뫔'을 쓰면서 몸국을 모자반국을 뫔국을 따뜻하며 넉넉히 나눌 수 있습니다.
잊었는지 모르겠다만
나도 너 그렇게 키웠다 (벼락지/75쪽)
어버이가 시인으로 살기에 아이가 시인으로 산다면, 이제 늘그막 길을 걷는 시인네 어머님도 시인으로 살겠지요. 시인네 어머님은 어느 날 문득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잊었는지 모르겠다만 / 나도 너 그렇게 키웠다"면서, 저잣거리나 길거리에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림을 꾸리고 키우셨다지요.
굵고 짧은 한 마디인데, 이 말마디도 삶노래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싯말 한 줄입니다. 삶을 노래하여 하루를 되새기는 포근한 싯말 한 가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