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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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에서 여성 배우들이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폭로할 때만 해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한국 사회는 남성의 성범죄와 성폭력 문화에 관대한 경향이 있고, 피해자가 용기를 내도 비난이나 편견, 무고 등 2차 가해가 만연한 편이다.
하지만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로 한국 사회에도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처음엔 문화·예술·연예계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타 분야까지 확산됐고, 이제 한국 사회의 핵심 권력인 정치권에서도 침묵을 강요당했던 약자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87년 체제 이후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단기간에 발전시켜 왔지만, 여성인권 분야는 그 진보가 더뎠다. 이것은 좌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혐오'와 '비하'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최후의 식민지'로 남길 거부하자, 권력을 독점해온 남성들이 은연중에 반감과 거부감을 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 지적하고 있듯, 최근 벌어지는 미투 운동을 단순히 '성별 갈등'으로 치부하는 건 문제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호소는 "가해자가 힘을 가진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다" "거절하면 꿈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했다" "업계에 나쁜 소문을 퍼뜨려 매장시킬까 봐 말하지 못했다" 등 서로 엇비슷하다. 이렇게 권력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며 억압해온 것이 우리 사회 성폭력의 본질이다. 약자 혐오 혹은 비하에 여성의 몸에 대한 '도구화'가 맞물려 폭력적 권력이 작동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미투 운동은 주로 사회 유명인사의 성범죄 사건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형사 처벌 이전에 비판과 자숙이라는 '사회적' 단죄를 받았다. 하지만 직장·조직 등에서 이름 없는 갑이 휘두르는 권력에서 비롯된 성범죄는 사죄와 재발 방지가 쉽지 않다. 직장에서 성폭력을 호소하고 문제 제기하는 행위는 인사상의 불이익은 물론 종종 직장을 잃을 각오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시 권력의 성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저질러졌고, 반복돼왔다. 가해자를 처벌하고자 하는 정의가 오랫동안 지체됐고, 피해자들은 혼자서 감수하고 아파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오랫동안 고통과 상처, 분노, 불안을 겪는다.
늘 대면하는 권력관계에서 성폭력을 당할 수도 있지만, 길을 걷다가도, 전철 안에서도,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도 성폭력을 당할 수 있는 것이 여성들이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은 늘 그런 불안과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현재의 미투 운동이 단순히 가해자 매장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거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더 이상 권력자들이 힘을 앞세워 약자의 성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할 수 없다는 것을 공동체의 합의로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법과 제도로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약자에게도 당연히 침범할 수 없는 존엄성과 인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래서 부당한 권력 관계의 작동을 멈추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미투 운동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현재 봇물을 이루는 여성들의 폭로를 그저 지켜 볼 것이 아니라 남성들은 함께 동참하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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