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퀄리즘 말고 페미니즘

잃어버린 문제의식을 찾아서

등록 2018.03.13 10:34수정 2018.03.1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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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같으니까, 그거 말고 '이퀄리즘'을 하자고 외친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이퀄리즘은 다른 말로 하자면 '양성평등'이라는 것이다.

실은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페미니즘은 너무 폭력적이고, 여성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거 말고 모두가 평등한 '완전 평등주의!(a.k.a 이퀄리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마음에 지금 그 사람들이 그런 말과 생각을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렇지 않다. 외려 그때를 생각하면 나의 무지와 그로 인한 몰상식이 굉장히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니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양성평등이나 이퀄리즘이어선 안된다. 우리는 오직 '페미니즘'이어야 한다. 

이퀄리즘을 외치는 사람들의 마음은, 말 그대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자만 놓고 보자면 지극히 맞는 말이다.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도 바로 그 '모두의 절대적 평등'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그 '궁극적인 지향점'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어떻게' 그 평등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초등학교 때에 양성평등 글짓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여러번. 매해 개최되는 백일장의 주제는 늘 '양성평등'이었다. 대한민국 사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양성평등에 관심이 많았다(별로 그러진 않은 것 같지만, 일단 그랬다고 쳐보자).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15년 전인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여성을 타깃으로 한 혐오 범죄가 요즘 더 많아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범죄의 정량적 수치는 동일할 지라도, 이러한 '인식'이 바로 메갈리아와 페미니즘의 공로다). 사회가 그렇게 양성평등에 관심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성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가부장제를 답습한 우리 사회의 권력은 늘 남성들에게 있었고, 발언권도 늘 남성들에게 있어왔다. 그러한 남성들이 평등을 운운하니 당연히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던 것이다. 왜냐면 남자들은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결코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남성들은 줄곧 우리 사회가 굉장히 평등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기존의 양성평등 또는 이퀄리즘이라는 주장에는 가장 중요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다. 도대체 이퀄리즘은 무엇으로부터의 평등을 말하자는 것인가. 더불어 권력을 가진 자(남성) 역시 문제를 인식할 감수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현재 상태를 인식하지도, 그 인식의 감수성도 갖지 못한 이 상황은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퀄리즘 아래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변화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지금을 인식 못 하는데 뭐가 되겠는가. 이퀄리즘은 그저 허울과 타이틀만 좋아 보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나왔다. '양성평등'과는 다르게 '페미니즘' 운동은 명확한 문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오래된 우리의 역사에서 여성이 배제되어 왔고, 억압되어 왔고, 차별 받아왔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남성의 입장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명백히 밝혀나가는 것이다. 생리를 해보지도 않은 남자들이 어떻게 그 문제에 대해 운운할 것이며,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가며 매번 공포에 떨어본 적 없고, 화장실에서 몰카에 찍힐까 걱정해본 적 없는 남자들이 어떻게 그 문제에 대해 함부로 논하겠는가? 오직 이것은 당사자인 여성들에 의해 그 해결이 진행되어야 할 문제다. 그러니까 까놓고 말해서, 남자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들에 대해서 자꾸만 말하고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차별과 평등의 문제는 늘 그 구조적 약자에게, 이 구도에서는 '여성'에게 발언권이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바로 '여성의 입장에서 이퀄리즘'을 말하자는 것이다.

아마도 페미니즘을 반대하고 이퀄리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평등주의자라면, 당연히 평등을 보장받지 못했던 약자가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을 평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이 정말로 평등주의자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입을 막고 사회적 강자들끼리 평등을 외치고 운운하는 것은, 그저 강요된 침묵이고 폭력일 뿐이다.

많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페미니즘이 그만큼 폭력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여성들이 그만큼 심한 차별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결코 그것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그래도 이건 너무 폭력적이야"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지금 남성에게 권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마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여성에 대한 혐오가 있었다는 역사 마저 잊혀질 정도가 된다면, 그때는 정말 '모두의 평등을 위한 이퀄리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나와도 될지 모르겠다. 그때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현상을 해결하는 첫걸음으로써 정확한 문제 인식을 위해, 이퀄리즘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덧,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지양해야 함은, 그 말은 성을 이분법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정확한 문제 인식을 위해 페미니즘을 하되, 궁극적 지향점으로서의 이퀄리즘을 언급한다면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 표현하자)

#페미니즘 #이퀄리즘 #성평등 #양성평등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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