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실종자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엘레나 파르판(Aura Elena Farfan)과 함께엘레나 파르판은 1984년 그의 동생이 경찰에 납치된 후 실종됐고, 이를 계기로 1980년대부터 실종자협의회를 구성해 현재까지 과거사청산에 복무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사진들이 현재까지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들의 모습이다. (2012년 2월)
노용석
과테말라내전의역사
과테말라는 중미의 작은 국가로, 전체 인구(약 1400만) 중 50% 정도가 자신들의 문화적 근원을 마야문명에서 찾고 있다. 대다수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과테말라도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된 19세기 이후 유나이티드 푸르트(United Fruit Company) 회사가 들어와 거대한 바나나 농장을 설립하면서 '바나나 공화국'이라 불렸던 제국주의의 배후지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마야 원주민을 비롯한 대다수의 과테말라의 국민들은 제국주의의 착취에 의한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러한 와중에 1944년부터 등장한 아레발로(Juan José Arévalo)와 아르벤스(Jacobo Arbenz Guzmán)와 같은 혁신적 대통령들은 자국의 수탈구조를 개선하고자 일련의 개혁정치를 실시했다. 이 중 특히 1951년에 당선된 아르벤스 대통령은 유나이티드 푸르트 보유지를 비롯해 착취구조의 근원들을 다수 국유화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1954년 미국이 과테말라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무산됐다.
결국, 1960년 미국에 기반을 둔 정부군과 이에 반대하는 무장게릴라 세력 간의 내전이 발발했고, 36년간 계속된 과테말라 내전은 1996년에 이르러서야 평화협상 타결로 종결됐다. 하지만 이 기간 약 20만 명 이상의 마야 원주민들이 학살되거나 실종됐고, 과테말라 군대에 의해 440개 이상의 마을이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학살의구조과테말라 내전 기간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의 구조는 놀라우리만큼 한국의 그것과 유사하다. 두 내전 모두 냉전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무고한 민간인들이 '공산주의'로 대변되는 무장 게릴라 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신념으로부터 발생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 내전에서 가장 극심했던 민간인 학살은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자행됐다. 이 시기 대통령이었던 리오스몬트(Efrain Rios Montt)는 고원지대에 거주하던 마야 원주민들을 게릴라 동조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근간을 뿌리 뽑기 위해 'Victoria 82'와 'Operación Sofia'와 같은 '초토화 군사작전'을 벌였다.
당시 과테말라의 무장게릴라 세력인 'URNG'(Unidad Revolucionaria Nacional Guatemalteca,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는 주로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마야 원주민들과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과테말라 군부는 게릴라 세력을 소탕한다는 핑계로 고산지대에 거주하던 마야 원주민을 대거 학살했다. 과테말라 내전 당시 발생한 마야 원주민 학살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중 대표적인 사건에 대해 기술해 보고자 한다. 바하베라빠스(Baja Verapaz) 주 라비날(Rabinal)의 플란데산체스(Plan de Sánchez) 마을은 전통적인 아치(Achí) 마야 원주민 거주지였다.
1982년 7월 18일 약 백여 명의 과테말라 정규군과 시민자위대 등이 중무장을 한 채 마을로 들어와 대략 268명의 마야 원주민을 단 하루 만에 학살했다. 이날 정부군의 학살로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사망했고, 젊은 여성의 대부분은 사살 직전 강간을 당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유족과 과테말라 시민사회 단체는 플란데산체스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그 이후 유해 발굴과 범죄의 책임을 묻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시작됐다.
결국, 과테말라 법정은 2012년 3월 21일, 플란데산체스 학살 사건의 주요 책임자인 군인 5명에게 각각 77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원주민 학살 외에도 내전 기간 과테말라에서는 학생과 노조지도자, 시민사회운동가 등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납치 및 감금이 계속됐고, 아직까지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행방불명자들도 상당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