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첫날,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안경호 페이스북
1951년 1월, 눈 쌓인 설화산이 피로 얼룩졌다.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아기, 힘없는 부녀자와 노인 일가족이 몰살을 당했다. 시신을 수습할 식솔도, 제사를 지내줄 가족도, 모두 같은 날 죽었다. 해가 뜨면 이분들께 깨끗한 술을 올리고 밝은 곳으로 모실 것이다.
이제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무고한 죽음이기에 임종이 더 필요했을 그분들. 그 신원을 찾아 기억하자.
한 삽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흙바람 부는 이곳은 그래도 살만합니다.
[2일째/ 2월 23일] "호미 한 자루만 놀려도 나올 수 있었는데…."음봉면, 배방면, 온양읍에서 끌려온 사람들.
방앗간에 갇힌 채 며칠을 굶고 산발이 되어, 짚단 한 지게 고쳐 매고 총부리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밟는다. 이윽고 사람 키 높이 폐광에 다다라 산골짝을 울리는 요란한 총소리.
아기 업은 애미, 지게꾼 애비,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솔가지 부러지듯 무릎들이 꺾인다.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 지고 온 짚단에 묻히고 신음마저 화염에 가려진다. 동무들과 뛰놀던 뒷산, 올려다 보는 것도 두렵다. 머리 커서 가 본 뒷산 발걸음을 떼일 수 없다. 호미 한 자루만 놀려도 나올 수 있었는데….
[3일째/ 2월 24일] 나야 알 수 없지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총부리들이 장전하고 차마 고개를 숙이라 할 때, 입 근육이 달라붙고 침도 마른 때
피부와 혈관 근육도 육탈 과정을 거치며 더 과묵해진 걸까.
마사토와 진흙에 겨우 엉켜, 머리와 다리 구분 없이 함부로 구겨질 줄
나야 알 수 없지
나야 알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