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이 숙부에게 왕권을 빼앗긴 결정적 이유

[사극으로 역사읽기] TV조선 드라마 <대군-사랑을 그리다>

등록 2018.03.31 13:52수정 2018.03.3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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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사랑을 그리다>. ⓒ TV조선


단종 임금을 둘러싼 비극이 묘사되는 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에는 현재까지 크게 두 가지 불안 요인이 표출되고 있다. 하나는 단종의 숙부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대립 구도다. <대군>에서는 두 사람이 각각 진양대군(주상욱 분)과 은성대군(윤시윤 분)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또 하나는 병약한 문종을 뒤이을 후계자가 너무 어리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두 숙부는 너무 건장하다. 특히 수양대군은 지나치게 야심적이다. 이 때문에 '어린 후계자가 숙부들한테 치이지 않을까?' 하는 게 대비 심씨(양미경 분)와 중전 김씨(레인보우 오승아 분)의 염려다.

드라마에서는 병약한 문종이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왕실 불안감이 한층  고조된다. 세종의 부인이자 문종의 어머니인 대비 심씨와, 문종의 부인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김씨는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사나운 수양대군보다 유순한 안평대군을 지지한다. 어린 후계자가 성장할 때까지 안평대군이 왕권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게 두 여성의 바람이다.

어머니가 일찍 죽은 단종

문종한테는 실제로는 왕후가 없었다. 단종의 어머니 권씨는 1441년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눈을 감았다. 이때 권씨는 세자빈이었다. 권씨가 왕후로 추존된 것은 남편 문종이 왕이 된 1450년이다. 그래서 임금 자리에 있을 당시의 문종한테는 실제로는 왕후가 없었다.

<대군>에서는 대비 심씨와 중전 김씨의 초조감을 자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당시의 실제 상황은 물론이고 왕조국가의 시스템과도 근본적으로 불일치한다. 구체적인 스토리 전개는 작가의 소관이지만, 드라마가 자주 보여주는 그 같은 초조감은 왕조국가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배치된다.

왕조국가의 권력 승계는 오늘날의 개인기업처럼 이루어졌다. 개인기업 사장이 어린 후계자를 남기고 죽었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이 곧바로 회사를 탐낼 수는 없다. 사장의 어머니나 아내가 후계자를 보호하면서 회사를 경영할 능력이 있다면, 후계자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늑대'들이 달려들지는 않는다. 후계자가 성장할 때가지 사장 어머니나 아내가 회사를 지키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왕조국가에서 똑같이 나타났다. 왕정체제에서는 섭정 제도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섭정이 수렴청정으로 불렀다. 어린 왕이 즉위하면, 선왕의 어머니나 아내가 대비(혹은 왕대비·대왕대비) 자격으로 통치권을 행사했다. 이런 대비는 왕이 성장할 때가지 왕과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했다. 대비 스스로 수렴청정을 종료하지 않는 한, 어린 왕이 임의로 통치권을 회수할 수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수렴청정을 할 때보다 성인 남성 군주가 통치할 때가 훨씬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여성이 통치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는 아들 예종을 대신해 1년간, 손자 성종을 대신해 7년간 수렴청정했다.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도 아들 명종을 대신해 8년간 했다. 이들은 무난하게 국정을 운영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잃지도 않았다.

통치권은 어차피 왕실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왕실 어른이 왕을 보호하면서 통치권을 지킬 수만 있다면, 왕의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는 대통령 유고 시에 국무총리를 찾지만, 왕조시대에는 왕의 할머니나 어머니를 찾았다. 왕조시대에는 그게 상식이었다. 그래서 대비가 어린 왕을 대신하는 게 그렇게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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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나 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된 창경궁 통명전. 명종의 부인으로 명종 사후에 왕대비가 된 인순왕후 심씨가 여기서 세상을 떠났다. ⓒ 김종성


이 같은 여성의 섭정 혹은 수렴청정은 모성 본능을 통치권 방어에 활용하는 제도였다. 어린아이가 도로나 야생 초원에서 위험에 빠졌을 때, 아이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건장한 남자보다는 아이의 엄마다. 어린 왕의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국정을 맡기는 제도는 이런 모성애를 활용하는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이가 조금도 불안해 보이지 않듯이, 대비의 수렴청정을 받는 어린 임금도 그렇게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단종의 왕권이 불안했던 최대 요인은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1452년 즉위 당시, 단종은 만 11세였다.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왕들의 경우에는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왕자들은 갓난아이 때부터 특수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래들보다 정신연령이 훨씬 높았다.

세조의 손자인 성종도 만12세에 등극했다. 중종의 아들인 명종은 만11세 때 등극했다. 정조의 아들인 순조는 만10세 때 했다. 이들은 어렸지만 쿠데타를 당하지 않았다. 순조 경우에는 왕실 외척들의 간섭 때문에 왕권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왕위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고종도 만12세에 왕이 됐다.

이런 예들에서 드러나듯이, 즉위 당시 단종의 나이인 만 11세는 왕으로서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이 정도 나이에 등극한 왕들은 수없이 많다. 대업을 이룬 군주들도 적지 않다.

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기원전 246년 즉위 당시 만13세였다. 러시아를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차르(황제)로서 푸틴 대통령의 열렬한 숭배를 받는 표트르 1세는 1672년 즉위 당시 만10세였다. 이처럼, 군주의 나이 10대 초반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단종이 만11세인 것도 마찬가지였다.

수양대군이 조카를 얕본 이유

그렇기 때문에 단종이 어렸다는 사실이 숙부한테 왕권을 빼앗긴 이유를 모두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어린 것도 어느 정도는 이유가 됐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수렴청정을 해줄 왕실 어른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단종을 지켜줄 모성이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수양대군이 조카를 얕볼 수 있었다.

드라마 <대군>에서는 단종의 할머니인 심씨가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손자 단종이 즉위할 당시는 물론이고 아들 문종이 즉위할 당시에도 심씨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심씨는 남편 세종이 왕으로 있을 때인 1446년 세상을 떠났다. <대군>에서는 심씨가 세종보다 더 오래 산다는 설정을 만들어놓았지만, 실제는 달랐다.

<대군> 속 심씨는 손자가 숙부들한테 휘둘리지 않을까 염려한다. 하지만, 만약 심씨가 단종시대에도 살아 있었다면,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별로 없었을 수도 있다. 자기가 수렴청정을 해주면, 손자의 왕권이 안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의 단종 곁에는 그런 할머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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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사랑을 그리다> 인물관계도. 드라마에서 대비 심씨는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TV조선


단종한테는 수렴청정을 해줄 어머니도 없었다. 친엄마는 출산 직후 운명을 달리했다. 만약 문종이 새장가를 들어 단종한테 계모가 생겼다면, 계모가 수렴청정을 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종한테는 그런 계모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단종의 입지가 불안해졌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세력을 모아 쿠데타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록 있는 명장 김종서가 단종을 보호하기는 했지만, 당시 사람들한테는 대왕대비나 대비가 보호해주는 모습이 훨씬 더 안정적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쪽으로 세력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단종이 왕권을 빼앗긴 것은 나이가 어려서만은 아니었다. 할머니(母)도 없고 어머니(母)도 없는 모모(母母)의 부재가 본질이었다. 김만준의 명곡 <모모>에 "모모는 철부지 ······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라는 가사가 있다. 이 모모와는 다르지만, 실제의 단종한테 '모모'가 둘 다 있었다면, 철부지로 취급되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방랑하거나 외로울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대군-사랑을 그리다 #수렴청정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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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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