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사랑을 그리다>.
TV조선
단종 임금을 둘러싼 비극이 묘사되는 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에는 현재까지 크게 두 가지 불안 요인이 표출되고 있다. 하나는 단종의 숙부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대립 구도다. <대군>에서는 두 사람이 각각 진양대군(주상욱 분)과 은성대군(윤시윤 분)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또 하나는 병약한 문종을 뒤이을 후계자가 너무 어리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두 숙부는 너무 건장하다. 특히 수양대군은 지나치게 야심적이다. 이 때문에 '어린 후계자가 숙부들한테 치이지 않을까?' 하는 게 대비 심씨(양미경 분)와 중전 김씨(레인보우 오승아 분)의 염려다.
드라마에서는 병약한 문종이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왕실 불안감이 한층 고조된다. 세종의 부인이자 문종의 어머니인 대비 심씨와, 문종의 부인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김씨는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사나운 수양대군보다 유순한 안평대군을 지지한다. 어린 후계자가 성장할 때까지 안평대군이 왕권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게 두 여성의 바람이다.
어머니가 일찍 죽은 단종 문종한테는 실제로는 왕후가 없었다. 단종의 어머니 권씨는 1441년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눈을 감았다. 이때 권씨는 세자빈이었다. 권씨가 왕후로 추존된 것은 남편 문종이 왕이 된 1450년이다. 그래서 임금 자리에 있을 당시의 문종한테는 실제로는 왕후가 없었다.
<대군>에서는 대비 심씨와 중전 김씨의 초조감을 자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당시의 실제 상황은 물론이고 왕조국가의 시스템과도 근본적으로 불일치한다. 구체적인 스토리 전개는 작가의 소관이지만, 드라마가 자주 보여주는 그 같은 초조감은 왕조국가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배치된다.
왕조국가의 권력 승계는 오늘날의 개인기업처럼 이루어졌다. 개인기업 사장이 어린 후계자를 남기고 죽었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이 곧바로 회사를 탐낼 수는 없다. 사장의 어머니나 아내가 후계자를 보호하면서 회사를 경영할 능력이 있다면, 후계자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늑대'들이 달려들지는 않는다. 후계자가 성장할 때가지 사장 어머니나 아내가 회사를 지키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왕조국가에서 똑같이 나타났다. 왕정체제에서는 섭정 제도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섭정이 수렴청정으로 불렀다. 어린 왕이 즉위하면, 선왕의 어머니나 아내가 대비(혹은 왕대비·대왕대비) 자격으로 통치권을 행사했다. 이런 대비는 왕이 성장할 때가지 왕과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했다. 대비 스스로 수렴청정을 종료하지 않는 한, 어린 왕이 임의로 통치권을 회수할 수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수렴청정을 할 때보다 성인 남성 군주가 통치할 때가 훨씬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여성이 통치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는 아들 예종을 대신해 1년간, 손자 성종을 대신해 7년간 수렴청정했다.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도 아들 명종을 대신해 8년간 했다. 이들은 무난하게 국정을 운영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잃지도 않았다.
통치권은 어차피 왕실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왕실 어른이 왕을 보호하면서 통치권을 지킬 수만 있다면, 왕의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는 대통령 유고 시에 국무총리를 찾지만, 왕조시대에는 왕의 할머니나 어머니를 찾았다. 왕조시대에는 그게 상식이었다. 그래서 대비가 어린 왕을 대신하는 게 그렇게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