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이라고 '외국인 흉내'라니... 철 지난 농담은 이제 그만

외국인의 생김새를 희화화하는 농담은 그만둘 때도 됐다

등록 2018.04.01 17:38수정 2018.04.0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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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신입생 때 일이다. 당시 학과 학생회에 들어가 있었는데, 과 OT와 여러 행사를 기획하는데에 참여했었다. 특히 OT 계획서에는 레크리에이션이 들어가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뭣 모르던 신입생 당시에는 다들 재밌고 유익한 의견 하나 얹는 데에만 집중했더랬다.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분장을 시킬지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현장에서는 여장이건 외국인 분장이건 좌중을 웃길 수 있는 방식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지만 그 실체가 또렷하지 않아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지인들과 이후에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면 자기네 학교에서도 외국인 분장이나 여장을 관성적으로 해왔다고 한다.

철 지난 농담을 하는 사람들 

돌아보면 인권 문제와 여성주의 의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전인 2015년 초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 해 휴학을 하고 나서는 관련 행사에서 많은 강압적인 문화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발주와 분장이 대표적이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걸 없애는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게 차별적이고 폭력적이며 여러 사회적 약자를 희화화하는데에 일조한다는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감돌면 점차 변하곤 한다. 다행히 내가 속한 곳은 이런 의견 수렴이 잘 되는 곳이었던 덕에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적으로도 외국인 흉내내기와 여장이 문제가 있다는 데에 합의가 될 것 같으면서도 '그게 왜 문제냐'라고 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놀라곤 한다. 아직도 이런 '철 지난' 농담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들 말이다.

 샘 해밍턴이 황현희의 흑인 분장을 비판했다.
샘 해밍턴이 황현희의 흑인 분장을 비판했다.샘 해밍턴 페이스북 갈무리

 황현희가 샘 해밍턴의 지적에 반박을 했다.
황현희가 샘 해밍턴의 지적에 반박을 했다.황현희 페이스북 갈무리

작년 4월 개그맨 황현희가 논란의 중심에 오른 적이 있었다. SBS <웃찾사>에서 흑인 분장을 한 것이 문제가 된 것.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특히 방송인 샘 해밍턴의 지적이 주목받았다. 내용 자체보다는 나는 황현희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황현희는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비하로 몰아가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영구 맹구는 자폐아 비하고 시커먼스도 흑인비하냐'라는 말을 한다. 그의 글을 보고 이 문제가 아직도 사회적 합의가 잘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영구와 맹구의 모자라 보이는 제스쳐와 말, 시커먼스의 흑인 분장도 문제라는 지적이 이제야 생겨나는 와중에 이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아직도 인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이제는 외국인 흉내를 내거나 그들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개그소재 삼는 일은 그만둬야지 않을까. 대학가에서도 이것이 문제시 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배워가면 된다.


외국인 흉내를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것 자체가 문제

 외국인 행세를 성공적으로(?) 하면 영화를 할인해주겠다는 CGV 만우절 이벤트.
외국인 행세를 성공적으로(?) 하면 영화를 할인해주겠다는 CGV 만우절 이벤트.CGV

그런 와중에 CGV의 만우절 이벤트를 보고 또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외국어 한 마디로 직원을 속이면 할인을 해주겠다는. 그러면서 광고 위에는 흑인이 있다. 이것이 올바른 방식의 유희인가 하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CGV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분장, 행동 등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긴 했다. 하지만 애초에 외국인 행세를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하는 전제를 위해서라면 어눌한 한국어를 일부러 구사하거나 흑인 분장을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기는 힘들다. 그것이 즐거움을 위해서라는 것부터가 문제가 아닐까 한다.

누군가는 이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모두가 즐겁기 위해서는 유창한 영어 문장을 읊는 것 보다는 한국말 잘 못하는 외국인을 따라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여지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외국인 행세를 '농담거리'로 소비했던 사회가 점차 바뀌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바뀌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더 떠들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들이 엄청난 잘못을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런 비판이 이제야 나오는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일 뿐.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외국인 ##분장 ##희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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