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일본측이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하자 울릉군수가 요령만 피우고 명쾌하게 대답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긴 오쿠하라 헤끼운의 일기
오문수
"일본이 독도 침탈을 시도할 때 울릉군수가 태만해 이를 막지 못했다는 문헌이 발견됐습니다"김문길 교수의 얘기다. 부산외국어대학 명예교수인 김문길 교수는 일본 국립교토대학과 고베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후 20여 년간 일본에서 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있다.
김문길 교수는 다케시마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던 박물관 관장으로부터 상당한 금액을 들여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다음은 울릉도와 독도 조사단으로 왔던 학술담당 오쿠하라 헤끼운(奧原碧雲)의 죽도 <조사일정>이란 일기에 나온 사료이다.
일본외무성은 1905년2월12일에 독도는 죽도로하고 시마네현청 오끼섬주의 소관으로 한다는 공시를 했다. 러일전쟁(1905년)이 끝나고 시마네현 간부들과 오끼섬 간니시부장(神西)과 오끼섬 어부들 45명이 신영토를 조사하기 위해 독도와 울릉도 조사에 나섰다.
조사단은 외무성 공시가 났던 1년 후인 1906년 3월22일 시마네현 마츠에를 출발해 26일 독도에 왔다. 전공분야에 따라 분담된 업무를 조사할 때 간니시 부장팀은 울릉군수 심흥택을 만나기 위해 울릉군청을 방문했다. 오쿠하라 헤끼운의 일기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