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당시 규모를 짐작케하는 비조사 안내문
최오균
대문을 들어서자 본당 입구 안내소 여직원이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비조사 안내문을 건네준다. A4 용지 한 장을 빼꼭히 채운 비조사 안내문에는 백제인의 기술과 자재로 비조사가 건축되었다는 내역이 소상하게 적혀 있다. 현 일본인 주지 야마모토 호우준의 명의로 되어있는 안내문에는 백제인들이 비조사를 건축했다는 내용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오늘 먼 한국에서 이곳 아스카데라 절(비조사)을 참배하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스카데라 절은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인 서기 588년(일본 제32대 스슝천황 원년)에 대신 소가노 우마코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찰로 일본 최고(最古)의 사찰입니다. … 일본 최초의 절의 건립을 위해서 고구려의 설계를 받아들여 백제에서 파견된 승려와 전문기술자들의 지도와 협력에 의해 서기 596년에 훌륭한 절이 완성되어 훗날 일본 불교문화형성의 원점, 그리고 아스카 수도를 세우는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551~626)는 당시 숭불파 리더로 백제계 후손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숭불파인 소가(蘇我)씨와 배불파인 모노노베(物部)가 격심하게 다툰 결과 587년 진보적 성향을 가진 소가씨가 승리하여 국가에서 정식으로 불교를 인정받게 되었다.
절대적인 정권을 잡은 소가노 우마코는 백제의 장인들을 받아들여 588년부터 대대적인 불사에 착수해 8년 만에 비조사를 완공하였다. 비조사를 건축하는데 백제로부터 건축, 토목, 기와 기술자는 물론이고 화공까지 십여 명의 기술자가 파견되었다고 일본서기는 전하고 있다.
백제의 장인들에 의하여 596년에 완성된 비조사는 일본 최초의 절로 일본 불교문화형성의 원점이 되고 있다. 아스카촌에 비조사를 건축한 이후 일본인들은 백제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지방에 호코지(法興寺), 겐코지(元興寺) 등 대형 사찰을 대거 짓기 시작하여 일본에 불교사찰 건축 붐이 일어났다고 한다.
건축 당시 비조사는 중앙에 탑을 중심으로 동, 서, 북 3방향에 금당(金堂)이 서 있고, 그 바깥쪽으로 회랑을 두른 백제식 가람형식이었는데, 궁궐보다 더 컸다고 한다. 그러나 비조사는 1196년 대화재로 가람건물들이 소실되어 본존불만이 가건물 안에 보존되어 오다가 1956~1957년 발굴조사에 의해 본래의 가람배치가 밝혀지게 되었다.
백제의 말안장 기술자가 완성한 비조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