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명단 카페 레되마고를 자주 찾았던 10명의 대표적인 문인 이름.
강재인
명단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되마고의 별명은 '문학카페'였다. 사실 되마고의 단골손님 가운데는 이들 외에도 우리에게 <마지막 수업>(La Dernière Classe)으로 기억되는 알퐁스 도데,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로 친숙한 생텍쥐페리, <이방인>(L'Étranger)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알베르 카뮈 등 수많은 작가들이 있었던 것으로 다른 자료들은 전한다.
팸플릿을 갖다준 웨이터는 지나가다 우리 테이블에 다시 들러 물어보았다.
"에뜨 부 자포네(일본인이세요)?"
"농, 누 솜므 코레안(아니, 한국인인데요)."
아빠가 대답하시자 웨이터는 국적을 물어본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로는 팸플릿 명단에 있는 많은 문인들 가운데 일본인이 관심을 자주 표명하는 작가가 헤밍웨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헤밍웨이가 즐겨 앉던 테이블이 어디냐고 묻는 일본인이 많다면서 어깨를 으쓱 올리고 손바닥을 뒤집어 보였다.
프랑스에 와서 프랑스 작가가 아닌 미국 작가에 관심을 표명하다니 어이가 없다는 뜻인 듯했다. 사실 그 점은 아빠도 마찬가지셨다.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격인 헤밍웨이의 족적을 찾아 이곳 카페로 발길을 돌리셨던 게 아닌가? 하지만 아빠는 리딩글래스를 끼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계셨다.
"아, 여기 있네."
반색을 하시기에 내가 물었다.
"뭐가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말이야."
나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던 실존주의 철학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르트르가 말했다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재미있는 말은 기억난다. 인생은 출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뜻이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부부 아니었어요?"
아빠는 커피 잔을 기울이며 빙긋 웃으셨다.
20세기 대표적 지성이었던 두 사람에 대해 무언가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는 눈치였다. 이럴 땐 들어 드려야지.
"어려서부터 수재였던 보부아르가 소르본느대학을 졸업한 것은 1928년이다. 여성으로서 소르본느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것은 프랑스 역사상 아홉 번째라고 한다. 그 시절 여성이 높은 교육을 받은 사례는 프랑스에서도 많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 뒤 보부아르는 아그레가시옹(agrégation)을 준비하기 위해 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에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아그레가시옹이 뭐예요?"
"교수자격 시험인데, 이걸 통과하면 고등학교(lycées)뿐 아니라 대학(collèges)에서 교편 잡는 것이 가능해. 1766년부터 실시되기 시작한 이 제도는 당초 문학·문법·과학의 3개 분야였으나 그후 철학·역사지리·수학·물리 등이 추가되었고 최근에는 경제학이나 기술 분야까지 영역이 넓어졌지. 프랑스 공무원 시험 가운데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어려운 시험으로 알려져 있어."
"보부아르가 본 건 무슨 과목이었어요?"
"철학. 당시 합격정원은 20명인데, 시험 준비생으로 고등사범학교 청강생으로 다니는 동안 보부아르는 그곳 학생이면서 훗날의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 훗날의 작가인 폴 니장, 훗날의 철학교수인 르네 마외 등을 만났더군. 1929년, 수재들만 합격한다는 이 시험에서 보부아르는 21세의 어린 나이로 합격했지. 그것도 2등으로."
"1등은 누구였어요?"
"누구였다고 생각해?"
"혹 사르트르?"
"맞아."

▲사르트르 프랑스 교수 자격시험인 아그레가시옹에 1등으로 합격한 학생시대의 사르트르 사진.
wiki commons
아빠는 신이 나신 눈치였다. 당대의 수재였던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되는 것 같아 나 역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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