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들의 구제책 마련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희훈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사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 열흘이 넘었지만 강제수사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민변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사법농단으로 표현될 수 없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사건이 벌어졌지만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각계 의견을 들어 형사상 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힌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해 "아직도 고발을 하느니 마느니, 문건을 공개하느니 마느니 판사 의견을 들어 결정하겠다고 한다"라면서 "모든 문건을 공개하고 진상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국민이 사법부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승현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긴 한숨으로 말문을 열었다. 조 교수는 "어처구니가 없고 억장이 무너진다"라면서 "법학을 공부해 법관이 되겠다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답답하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모든 법학과 교수들 마음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진상을 밝히는 일은 사법부에만 맡길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모인 법률가들은 '근본적인 개혁'만이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선 이번 사태를 "헌법 그 자체를 부정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는 "대법원장이 조직 안정을 위해 좌고우면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민 신뢰를 얻고, 그를 바탕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바로 세울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 교수는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는 한편 사건 관련자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 사람 또는 그를 중심으로 한 고위 법관의 농단이 아니다"라면서 "그에 협조한 수많은 법관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지금도 법대 위에 앉아서 국민의 잘잘못을 따지고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이제는 사법부가 권력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면서 "재판과 사법이 사유화되지 않도록 국민이 감시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법관들, 뒷짐지고 방관하지 말라"